2018년 봄날, 카페에서 대학교 2학년들의 대화
2023년 2월 23일, 한국의 출산율이 0.78명으로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했다는 기사가 일제히 신문 1면을 장식했다. 2021년 0.81명보다 0.03명 줄어든 기록으로, 부부 100쌍(200명)에 자녀 수가 78명밖에 안 된다는 뜻으로, 200명이던 부모 세대 인구가 자녀 세대에는 거의 3분의 1로 줄어드는 것이다.
2013년부터 10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를 기록 중인데, OECD 38국 중 합계출산율 0명대는 한국뿐이다. OECD 평균(2020년 기준 1.6명)의 절반에 그치며 고령화로 ‘잃어버린 30년’을 헤매고 있는 일본(1.33명)보다도 낮은 수치다. 한국 제외 나머지 37국은 모두 1명 이상으로, 2020년 합계출산율이 처음으로 0.8명대에 진입했는데, 2년 만에 0.7명대로 불명예 ‘신기록’을 또 세운 것이다.
세계에서도 처음 있는 일로, 인구 쇼크 수준이라며 지대한 걱정과 우려를 표명하는 논조가 각 신문사마다 흘러넘쳤다. 저출산은 생산 인구 및 성장률 하락과 직결되기에, 이런 추세가 장기화하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소멸될 수도 있다는 가혹한 경고도 함께.
이 기사를 보니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던 봄날, 학교 앞 카페에서 여동기들과 이야기 나누던 그 순간이.
2018년 4월. 당시 대학교 2학년이었던 우리는, 대학교 앞 작은 카페에서 수업과 수업 사이에 남는 1시간 남짓의 공간시간을 이용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를 포함해 같은 과 여학우 5명에서 학교생활, 과제, 중간고사, 연애 등 이런저런 주제를 건너뛰며 유영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결혼 생각은 있는지, 아이를 낳는다면 몇 명을 낳고 싶은지에 대해서 각자 생각을 말했는데, 나를 제외한 4명의 친구들은 결혼을 하더라도 아예 낳지 않거나 낳더라도 한 명 정도만 낳을 것 같다고 했다. 4명을 낳고 싶다고 말한 나에게 제일 먼저 날아온 질문은, "학원비는 어쩌려고?"였다.
대한민국은 모든 게 '돈'으로 환산이 된다. 기저귀값이 얼마, 분유가 얼마, 학원비가 얼마. 학교에 가서는 몇 등, 몇 등급으로 쾅쾅 도장이 찍힌다. 그 등급이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짓는다고 생각하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고. 그러니 학원비는 아이를 낳는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 고려할 필요도 없는 디폴트값이기에 친구들이 나에게 저런 질문을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동기들은 나에게 하나같이 너무 현실성이 없다는 선고를 내리며 '정신 차려'라는 노골적인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대학교 동기들의 말을 듣다 보니 고등학교 때 한 친구가 생각이 났다. 늘 음울한 썩소를 달고 다니던 친구였는데, 이 친구는 자신이 유치원 때부터 이때까지 받은 사교육비를 10원 단위까지 세고 다녔다. 고3 막마지가 되었을 땐 이 친구 입에서 1억이 넘어가는 액수가 툭툭 튀어나왔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한 이 친구는 부모님이 자신에게 가정의 모든 자산을 올인했다는 사실에 늘 부담감과 함께 은근한 자랑스러움 또한 느끼는 것 같았는데, 이 친구는 지금 아이에 대한 생각이 있을까? 궁금했다.
사범대에서 교육학에 대해 배우며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걸 토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의 강도가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이후 교육을 통해서나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기존에 굳어진 생각을 바꿀 가능성은 급격하게 떨어진다. 너무나 단단하게 굳어져 어떤 외부충격에 의해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히 뿌리 박힌 '신념'이 되는 것이다.
모두 알고 있듯이 젊은 세대 중에 학원을 다니지 않은 사람을 찾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같다. 그나마 학원 다녔으니까 이 정도라도 됐지, 안 다녔으면 내 인생은 저 밑바닥에 있었을 거라고 말하는 친구도 많았다. 이걸 다시 말하면, 학원을 다녔던 사람은 자신의 아이도 반드시 학원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할 확률이 높으며 보내지 않으면 상대적 박탈감과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교육문제만 보더라도, 자신에게 들어간 학원비를 10원 단위까지 외우고 있는 학생들이 커서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왜?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녀 학원비를 벌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야 할 참혹한 자신의 미래가 빤히 그려지니까. 자식 뒷바라지 하느라 뼈 빠지게 고생하며 살았던 부모들의 삶은 젊은 세대가 따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다시 돌아가서, 20대 중반이 된 지금 나에게 같은 질문을 묻는다면? 글쎄, 희망사항일 수는 있겠지만 분명한 건, 환경오염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부의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현 세상을 볼 때, 대학생 때처럼 쉽게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