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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빈 Mar 18. 2023

사람을 '듣는' 독서실 생존일기

아직까진, 그래도 살만하다

나에게 2021년은 '독서실'로 기억된다. 1년 동안 독서실에서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치열하게 몰입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한창 많이 나오고 있던 때라 독서실 이용을 고민하긴 했지만, 당시엔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하게 필요했고 공공도서관은 시설이용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사실상 독서실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대신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개방된 곳보다 한정된 사람만 드나들 수 있는 1인실로 자리를 정했다. 


독서실의 1인실은 사람들이 오는 시간도 다 다르고, 문이 달린 개인 방으로 나눠져 있기 때문에 내 옆방에 누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독서실에서는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듣게" 된다. 1인실 방안에 있으면 옆자리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 얼굴은 볼 수 없지만 모든 미세한 움직임이 소리 또는 향기로 인식된다. 이른바 청각과 후각만이 지배하는 공간인 것이다. 상대방을 지각하는 유일한 수단인 청각과 후각은 시각보다는 확실히 더 민감하고 깊게 파고들었다.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나고 1인실 안의 지형지물에 익숙해지자, 옆 방 사람이 몇 번째 서랍에서 책을 꺼내고 있는지, 점심 메뉴로 뭘 먹었는지 소리와 향기만으로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살아온 배경이 다른 익명의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다 보니 향이나 소리에 민감한 정도도 다 달랐다. 어떤 사람은 조그만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고 무향에 가까운 핸드크림 향기에도 머리가 아프기도 한 반면, 어떤 사람은 큰 소리에도 별로 놀라지 않으며 향기에도 둔감했다. 이렇게 다양한 민감도를 가진 사람이 모였으니 불만사항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독서실 내에서 대화는 금지였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럴 땐 1인실 출입문 유리창에 같은 공간을 쓰는 사람들에게 부탁이나 요청사항을 포스트잇에 적어서 붙여놓는 게 이곳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한 마디로, 출입문 유리창이 1인실을 쓰는 사람들에겐 게시판 같은 공간으로 사용된 것이다.


처음엔 한 두 개씩 포스트잇이 붙어졌다가 금방 떼어졌다. 그런데 어느 특정 기간에 포스트잇이 동시다발적으로 많이 붙었다. '볼펜 딸깍 소리 주의해 달라', '향 있는 핸드크림 쓰지 말아 달라', '문 쾅쾅 닫으면 집중력 흐트러지니까 조용히 닫아달라', '책장 넘기는 소리 거슬리니까 조심히 넘겨달라', '슬리퍼 끌지 말아 달라', '한숨소리가 너무 커서 집중이 안 된다' 등 대부분 작은 소리나 향기에 대한 자제를 바라는 내용들이었다.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때 학교 독서실을 이용해 본 적은 있지만, 사설 독서실 이용은 처음인 터라 이런 포스트잇이 붙는 게 낯설고 충격으로 다가왔다. 괜히 이 포스트잇에 적힌 내용들이 전부 나에게 하는 말 같고 어깨를 쿡쿡 찌르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마음이 영 불편했다. 조심해서 한다고 하는데 일어서다가 의도치 않게 어딘가에 부딪혀서 작은 소리라도 나면 화들짝 놀라면서 죄인이 된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샤프를 책상 위에 내려놓을 때도 슬로모션으로 소리 내지 않고 놔두게 되고, 책장을 넘길 때도 한 장을 두 손으로 잡고 조심조심 넘기게 되었다. 그런데 설상가상 시간이 갈수록 1개였던 포스트잇이 3개, 5개, 7개로 포자가 번식하듯 점점 늘어났다. 나중에는 독서실을 들어설 때 멀리서 보이는 포스트잇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안 좋아졌다. 끝없는 요청사항과 불만에 질식할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이 2주 정도 지속되었을 때 오늘은 또 어떤 포스트잇이 붙어있을까,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독서실을 가게 되는 나를 발견했다. 안 그래도 좁은 공간에서 오랫동안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한데 엉뚱한 데 감정소모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도저히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위기를 반전시킬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향과 소리에 민감해 스트레스를 받아서 포스트잇을 붙인 사람도, 그런 포스트잇을 보고 미안함과 불편함을 느끼고 있을 사람도 모두가 상처받지 않고 화합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의 글을! 힘내자는 의미로 작은 바구니에 초콜릿도 담아 바닥에 놔두기로 했다.


처음엔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결국 "글은 담백하고 따뜻하게"로 결론이 났다. 이런저런 말을 붙여봤자 글만 늘어지고 진정성은 떨어질 테니 꼭 전달하고 싶은 핵심만 담고자 노력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쓰는 편지라니, 수신인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을 때보다 첫 운을 떼는데 더 오래 고민이 되었고 약간은 두근거리기도 했다. 분명히 짧게 쓰려했는데 쓰다 보니 꽤 장문의 편지글을 쓰게 되었고, 떨리는 마음으로 유리문 게시판에 붙였다. 그리곤 도망치듯 독서실에서 나왔다.



(포스트잇 전문)


안녕하세요, 요즘 포스트잇이 많이 붙는 걸 보고 쓰게 되었습니다.

이제 공부를 시작하신 분도, 오랜 기간 공부를 해오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혼자 이 방 안에서 시간을 버텨낸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자연히 청각, 후각 등의 감각이 예민해지는 것 같고요.

그래도 얼굴은 잘 모르지만 많은 분들이 최대한 소리 내지 않고 배려하시려는 게 느껴져서 감사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감각이 좀 더 민감한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 서로 조금씩만 더 배려하고, 또 조금씩은 이해하면서 신뢰를 바탕으로 독서실 생활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공부하느라 지칠 때가 많은데 독서실 오는 것 자체가 모두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서 짧은 글 끄적여보아요.

마음건강, 몸건강 모두 잘 챙기시고 원하는 바, 다 이루시길 바랄게요:)

밑에 있는 바구니에서 초콜릿 하나씩 드시면서

당충전 하시고 오늘 하루도 파이팅입니다!


(본 포스트잇은 6/24에 수거하겠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새로운 포스트잇이 내 편지글 옆으로 붙기 시작한 것이다. '고맙습니다'라는 작은 쪽지에서 시작된 메모가 점점 커지더니 '이 글을 읽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면서 함께 파이팅 해요', '힘내세요!' 등의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포스트잇들이 생겨났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인지라 당황스러웠고, '댓글'이 달릴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고 의도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소담하게 붙어있는 포스트잇들을 보면서 어리벙벙했다. 초콜릿을 담아놓은 상자도 비어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가지각색의 과자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초콜릿 잘 먹었다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하지 않는가. 글을 쓰기까지 많이 망설이기도 했지만 그런 내 마음을 알아주듯 이렇게 마음 써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나 잘했구나, 하며 스스로를 토닥일 수 있었다. 물론, 그 이후로 불만이나 요청사항을 담은 포스트잇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힘을 뺀 소박한 글이 역설적이게도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다는 것을 이번 독서실 사건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익명성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데 익명성에 기댄 따뜻함도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받은 다정함은 그 온도가 상당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이때를 생각하면 보일러를 땐 것 마냥 마음이 후끈 달아오른다.


일주일 후에 포스트잇과 바구니를 수거하면서, 출입문 유리창에 추가로 포스트잇을 붙이고 잠깐 바라본 다음,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따뜻한 마음을 꼭 그러안은 채 숨길 수 없는 미소를 만면에 띠며 가볍게 독서실 문을 나섰다.


(추가 포스트잇 전문)

빈 바구니를 수거하러 왔는데 포스트잇과 간식과 여러분의 마음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수거하게 되었네요. 너무 감사합니다. 오히려 제가 더 큰 응원받아가요:) 앞으로도 계속 독서실에 오는 길은 상쾌하게, 돌아가는 길은 뿌듯함으로 가득하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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