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에게 스마트폰이 갖는 의미는 상상 그 이상.
스마트폰, 먹통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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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의 일이다. 2년 만에 친구들을 만나러 서울에 갔다. 1박 2일 일정으로, 첫째날 저녁에 친구들을 보고 둘째날에는 혼자서 5대 궁궐을 여유롭게 돌아보고 내려갈 계획이었다. 저녁에 여의도에서 친구들을 만나 1차, 2차까지 가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그동안 쌓인 이야기들을 하느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가 이어졌다. 언제 만나도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잘 만나고 숙소로 돌아와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폰이 고장 나 있었다. 전원이 켜졌다 꺼졌다 하면서 무한재부팅만 반복했다. 전원버튼을 길게 눌러도 보고 충전도 다시 해봤지만 어떠한 시도도 말을 듣지 않았다. 꽤 오래 쓴 폰이라 갑자기 꺼져도 이상할 건 없었지만 타지에서, 그것도 하필이면 혼자 있을 때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머리가 백지장처럼 하얘지며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지만 애써 침착한 척, 잠깐 있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 나갈 준비를 하면서 기다렸다. 그러나 내 바람과는 달리 폰을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완전히 먹통이 됐다.
폰을 쓸 수 없게 되자 제일 걱정이 됐던 건 가족들과의 연락이었다. 안 그래도 내가 혼자 서울에 다녀오겠다니까 떠나기 며칠 전부터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보듯 걱정하셨던 부모님인데, 아침에 연락이 안 되면 무슨 일이 있나 걱정할 것 같았다. 하지만 숙소에서는 전화를 빌리기가 어려웠다. 내가 있었던 숙소는 일반적인 호텔이 아니라 공유주택(co-livinghouse)이어서 직원이 프런트에 상시거주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창덕궁 후원 관람 현장 예매를 하려고 숙소를 일찍 나서다 보니 복도와 1층 로비에는 전화를 빌릴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행히 서울 지리는 대학교를 다니며 4년을 살았기 때문에 웬만큼 알아서 폰 없이도 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일단 창덕궁 쪽으로 가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폰을 빌려 연락을 하자'라고 방향을 정했다. 하지만 숙소가 있던 동대문 근처는 외국인들이 많아서 전화를 빌리기가 애매했고, 지하철역 안에서는 지하라 통화가 끊기기에 지상으로 나가서 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창덕궁이 있는 안국역에 도착했고 밖으로 나오자 어마어마한 나들이 인파가 거리를 가득 매우고 있었다. '와,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누구든 한 명은 빌려주겠지'라며 호기로운 마음을 가졌는데, 그땐 몰랐다. 이게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게 긴장되긴 했지만 최대한 공손하고 정중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처음 두 명은 미안하다는 듯이 웃으면서 그냥 지나갔고, 한 명은 발걸음을 늦추지 않고 들은 체도 하지 않고는 쌩- 지나갔다. '어라? 뭔가 내 생각과는 다른데..?' 하는 쎄한 느낌은 이때부터였다.
그다음은 50대 여성분이었는데 우리 엄마와 비슷한 나이대에 포근한 인상이라 좀 더 마음이 편했다. 여전히 전원이 왔다 갔다 하는 가련한 내 폰을 들어 보이며 부탁을 하자, "어머, 난 폰이 없는데, 어쩌지?"라고 했다. 그런데 이건 단순히 거절의 의미가 아니었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놀리듯이 말하는 투가 고스란히 느껴졌는데, 아마도 나를 사기꾼으로 생각하고 참교육(?) 뭐 그런 비슷한 걸 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했다. 직장인 같아 보였는데 어딘가에 폰을 놔두고 왔다도 아니고 폰이 아예 없다고 하는 게 의아하긴 했지만, "아, 그러세요."라고 물러나려고 하는데 이제는 그쪽에서 계속 말을 붙여오기 시작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뭔가 다른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나에게 화풀이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점점 시비를 거는 투로 다가오길래 얼른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탁한 사람이 제일 기억에 남는데, 내가 "폰이 고장 나서 전원이 안 켜져서 그런데 전화 한 통만 빌릴 수 있을까요?"라고 말을 걸자, 경멸의 눈빛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더니 '뭐야, 이 사기꾼은?'이라는 표정으로 쏘아보고는 어깨를 밀치고 지나갔다. 순간 너무 당황스러워서 온몸이 얼어붙었다. 살면서 그런 눈빛과 태도를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총 5명에게 부탁했는데 5번 거절당했다. 물론 사람들이 폰을 빌려주지 않는 이유도, 차가운 반응들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워낙 보이스피싱에 사기가 극성을 부리는 사회분위기에 폰을 가져가서 불법앱을 깔거나 돈이 다 빠져나가게 하는 이상한 짓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을 테니까. 이해는 하는데, 정말 이해는 하는데... 막상 직접 현실을 마주하니 서러웠다. 폰이 없으면 뭐 하나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이 조그만 기계가 내 기분을, 내 생존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게. 차라리 사회현상을 취재하는 다큐PD였다면 옳다구나, 하면서 이런 결과물을 신나게 취재했을 것 같은데 그때 나는 다큐PD도 뭣도 아니었다. 그저 고장난 폰을 들고 타지에 홀로 선 외로운 사람일 뿐이었다.
공중전화 부스가 있길래 콜렉트콜로 전화를 걸었는데 02로 가서 그런지 아무도 안 받았다. 엄마 3번, 아빠 3번, 오빠 3번씩 걸었는데 아무도 받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나도 02로 온 전화는 안 받는데...
허탈한 마음으로 털레털레 걸어 나오는데 울컥했다. 그 순간, 아무도 없는 낯선 별에 떨어진 것 같았다. 서울에 사는 친구들은 있지만 난 그들의 번호를 모른다. 클라우드에 저장돼 있는 수많은 번호들은 스마트폰과 함께 잠들어버렸기 때문에. 가족들은 저 멀리 떨어져 있고 심지어 연락조차 할 수가 없다. 우주를 떠도는 먼지 한 톨이 된 것처럼 내 존재가 작아 보였다. 한없이 외롭고 짙은 단절감이 느껴졌다.
그때 깨달았다. 현대인에게 스마트폰은 상상 그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폰이 없으니 할 수 없는 게 너무나도 많았다. 반대로 뒤집으면, 폰으로 모든 걸 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뜻도, 완전한 '스마트폰 의존 세상'이 되었다는 뜻도 될 것이다. 한편으론,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사회가 된 것 같아 헛헛한 마음이 들었다. 대학교를 다닐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점점 더 사막의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삭막한 세상이 되어가는 듯했다.
창덕궁 카페 사장님 앞에서 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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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라 사람이 많아서 전화 한 통 정도는 쉽게 빌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불특정다수가 모인 장소에서는 '왜 굳이 나에게?'라는 심리가 작동하고 그게 방어기제가 되어 더 강력한 거부가 일어난다는 것과 멀끔한 옷차림이 되려 사기꾼으로 의심을 산다는 걸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충무로나 혜화처럼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또래가 있는 대학가로 가야 하나 고민을 잠시 했는데, 그러면 창덕궁 후원 관람을 포기해야 했다. 이상하게 그러긴 죽어도(?) 싫어서 못 먹어도 일단 창덕궁으로 고(go)했다. 하지만 이땐 이미 내 멘탈이 탈탈 털린 직후라 어떠한 기대도 계획도 없었다. 그냥, 가보는 거였다. 햇살은 눈부셨고 주변엔 다들 가족이나 연인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평소에 혼자서도 전시회나 영화를 잘 보러 다녀서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이 순간만큼은 그들이 부러웠다. 나도 가족 있는데, 나도 저렇게 손잡고 다닐 친구 있는데...
다행히 창덕궁 후원 관람 표가 아직 남아있어서 한 장을 예매할 수 있었다. 무인기계로 표를 뽑고 돌아서려는데 창덕궁종합관람지원센터 안에 작은 카페가 하나 있었다. 아침이라 손님 없이 한가한 분위기 속에서 60대 초중반의 깔끔한 인상의 남자 사장님이 오픈준비를 하고 계셨는데 '공공기관, 그래, 저곳이라면 나를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어렴풋한 사고의 흐름이 이어졌다. 카페까지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건지 뭔진 모르겠지만 홀린 듯이 카페로 다가갔다.
"저 혹시... 전화 한 통만 쓸 수 있을까요?"
숱한 거절을 당하고 와서 그런지 내 목소리는 한껏 풀이 죽어 있었다. 카페 사장님은 음료 주문이 아니라 전화 한 통 주문(?)을 넣는 갑작스러운 손님의 방문에 잠시 고민하시더니 계산대에 놓여있던 유선전화기를 건네주셨다. 몇 번이나 감사인사를 드리고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걸었다. 우선 엄마에게. 신호가 한 번, 두 번, 세 번. 그 이상을 넘어갔을 때 이미 결단이 섰다. 아, 엄마는 안 되겠다.
마음은 초조했지만 차분하게 전화를 끊고 다음 스텝을 밟았다. 다음은 아빠에게. 번호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눌렀다. 살면서 수백 번 눌러온 번호들인데도 이날은 왜 이리 떨리던지. 신호가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째 신호음 소리가 반쯤 들리다가 끊어지면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경계심과 호기심이 동시에 어린 목소리. 경계심은 02로 시작된 번호에, 호기심은 혹시나 서울에 가 있는 딸인가, 하는 마음에 그랬을 테지.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너무나도 익숙한 아빠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도 모르게 후두둑,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졌다. 이윽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쏟아졌다. 울먹이면서 겨우 "아빠, 나야."를 말하곤 수화기를 붙잡고 엉엉 우는데 앞에 서있던 카페 사장님의 당황하는 실루엣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용솟음쳐 올라오는 복잡다단한 감정에 마음의 빗장이 풀린 것처럼 눈물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동안 말을 못 할 정도로 울자 가족들은 돌아가면서 나를 달랜다고 난리법석이었다. 은근 감성파인 아빠는 지금이라도 당장 차를 끌고 서울로 갈 수 있다며 아무 문제없다고 나를 달랬고, 완전 이성파인 오빠는 내가 소매치기라도 당해서 폰이고 카드고 다 잃어버린 건지 어떤 상황인 건지 정확하게 말해보라며 나를 차분하게 이끌었고, 위기에 강한 하이브리드파 엄마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사용하는 조련사처럼 나를 다정하게 달래다가 따끔하게 현실직시를 하게 했다가 돌아오는 차편 문제까지 짚었다.
카페 사장님은 일부러 가게 안쪽에 있는 작업대로 자리를 피해 주셨고, 덕분에 편하게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가족들의 음성에 차차 마음이 진정되었고, 아침부터 저 바닥까지 떨어진 멘탈과 이성을 서서히 찾고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별일도 아닌 해프닝이었다. 폰이 먹통이 되는 처음 있는 일에 놀랐고, 주위에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보니 허둥댔고, 해결방법을 악수에 두고 제풀에 상처받았고, 결국 주말 아침을 평화롭게 보내고 있던 가족들을 놀라게 한 것이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전화를 빌리는 건 내가 생각해도 너무 순진한 방법이었던 것 같긴 하다. 인정! 다만, 서울을 떠나기 전에 방법을 찾았다. 아주 간단하고도 깔—끔한 방법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자본주의의 방법으로 접근하는 게 제일 심플했다.
우선, 카페에 가서 음료를 한 잔 주문한다. 진동벨이 울려 음료를 가지러 갔을 때 직원분께 폰을 들어 보이며 "전원이 나가서 그런데 전화 한 통만 쓸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 그럼 두말하지 않고 빌려준다. 궁궐을 다 둘러보고 집으로 가는 길, 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던 카페에서의 일이다. 차가운 자몽에이드를 빨대로 빨아올리며 생각했다. '역시 자본주의 사회인가...' 씁쓸한 자몽의 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하지만 또 창덕궁 카페 사장님을 떠올리면 아직까지는 그래도 살만한 세상인가, 싶어서 조금은 용기 내보고 싶은, 향긋함으로 기억되는 서울여행의 끝맛이었다.
p.s. 경황이 없어 카페 사장님께 제대로 감사인사를 못 드렸는데 다음에 창덕궁을 다시 가게 된다면 꼭 감사인사를 드려야겠다. 느닷없이 수화기를 붙잡고 엉엉 울던 손님에게 따스한 친절을 베풀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고. 덕분에 서울여행을 망치지 않고 잘 구경하고는 집에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