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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빈 Sep 08. 2023

큰일났다, 엄마가 카페를 너무 좋아한다

오늘도 엄마와 카페를 갑니다

며칠 전 일정표를 확인했다. 최근 며칠 사이에 엄마와 꽤나 많은 카페를 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전에도 카페에 가서 얘기하고 책 읽고 각자 개인작업하는 걸 좋아했지만, 내가 운전을 시작하고부터는 빈도수가 월등히 늘어났다. 특히, 엄마와 둘이서 도시근교나 대중교통을 타고는 갈 수 없는 카페를 많이 가게 됐는데 제일 멀었던 곳은 편도 1시간 반이 걸리는 카페였다.


내가 먼저 카페를 가자고 할 때도 있지만 주로 엄마가 가자고 해서 가게 되는 경우가 8할 이상이었다. 미리 계획을 잡고 갔던 게 아니라 엄마가 가고 싶다고 할 때마다 간 거라, 이렇게 많이 간 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새삼스러웠다. 일주일 동안 정말 많이 갔을 때는 내리 4일을 카페로 출근했고, 평균적으론 한 달에 10~12회 정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카페를 방문했다. 물론 누군가에겐 일주일에 두세 번이 많지 않은 빈도수일 수 있다. 하지만 업무상 미팅이나 모임으로 간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온전히 개인적인 휴식 및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카페에 간 횟수를 셌을 때 이렇다면 결코 적은 빈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카페에 자주 가게 된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운전을 하게 된 것도 있지만 우리집이 선택지가 많은 최적의 위치에 자리한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 내가 사는 곳은 산도 바다도 호수도 차로 20~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여러 뷰를 앞에 둔 카페들을 선택할 수 있고 거의 주 단위로 새로 오픈하는 카페들은 우리의 선택지를 더욱 넓힌다. 그러다 보니 지루할 틈 없이 카페를 계속해서 갈 수 있다. 초록초록한 숲 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눈을 푸르게 하고 싶다면 산에 있는 카페를, 탁 트인 수평선 앞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멍 때리고 싶다면 바닷가에 있는 카페로, 물안개 피는 호수에서 고요하게 사색을 즐기며 내친김에 산책길을 따라 걷고 싶다면 호숫가에 있는 카페로 가면 된다. 하지만 이게 정말 엄마가 카페를 좋아하는 이유의 다일까? 운전을 하게 돼서 이동의 자유가 생겼다면 다른 곳도 많이 다녀야하는데 엄마와는 유독 카페를 많이 가게 됐다. 왜일까?


엄마는 카페에 앉아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리는 시간도, 얘기하는 것도, 책 읽는 것도 좋다고 했다. 카페에 있으면 그렇게 평화롭고 행복할 수가 없다고. 그래, 이건 정말 순도 100% 진심이다. 카페에 있는 엄마의 표정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게 될 거다. 이 세상 행복이란 행복은 다 손에 쥔 사람의 표정이다. 음, 뭐랄까, 갓 태어난 아기의 무해한 웃음과 똑 닮았달까? 한 번은, 내가 집중력이 떨어져서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 말 그대로 '툭' 카페에 던져져 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왠지 죄책감도 들고 돈도 아깝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라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고 하니까, 엄마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도 너무 좋지 않냐고, 카페에서는 그러고 있어도 그냥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좋다고 그랬다. 그래서 궁금했다.


왜 그럴까? 왜 엄마는 이렇게나 카페를 좋아하는 걸까?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엄마의 말과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랬더니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집은 엄마에게 작업공간이라는 걸. 빨래, 요리, 청소 등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엄마에게 집은 보금자리이기도 하지만 때론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는 먼지, 빨래통에 쌓여있는 옷가지들, 정리하고 또 정리하지만 헝클어져가는 냉장고 속 물건들은 왜 이렇게 엄마 눈에만 잘 보이는 건지. 눈에 띄는 순간 바로바로 정리해야 하는 스타일인 엄마에게 집은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노동의 쳇바퀴 현장이었다. 안전한 보금자리이자 해야 할 일들이 수많은 숙제처럼 쌓여있는 공간, 기쁨과 상처가 공존하는 모순과 부조화의 공간. 엄마는 그런 집이라는 공간을 탈출해 온전한 휴식의 시간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하긴 24시간 직장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면 숨이 막히고 답답할 것 같긴 하다. 나라도 어떻게든 이 공간을 벗어나고 싶을 것 같다.


그뿐인가. 계속 집에만 있으면 고이게 되는 지겨움, 우울함과 같은 감정들이 환기되고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활력도 얻고, 어딘가로 출근했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 오늘 하루 의미있는 무언가를 했다는 뿌듯함, 성취감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도 느낄 수 있다. 집에서는 하루종일 붙잡고 있어도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던 일도 카페에 가면 집중력이 최고치로 올라가 1시간 만에 뚝딱 해내기도 한다. 수많은 공간 중에서도 유독 카페인 이유는, 영화관이나 쇼핑몰 같은 공간은 영화감상과 쇼핑이라는 정해진 특정 활동만을 해야하지만, 카페는 책을 읽든 얘기를 나누든 사색의 시간을 가지든 앉아서 잠깐 졸든 모든 활동이 내가 정해서 하면 되는 것이기에 다양한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는 데서 기인할 것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최애 공간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이젠 엄마에게 카페가 어떤 공간인지 안다. 집이라는 직장에서 벗어나 숨을 쉴 수 있는 곳, 눈에 보이는 집안일에 정신을 차리고 보면 책 대신 청소기를, 빨랫감을 손에 들고 있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그러니 1시간이 됐든 30분이 됐든 엄마에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앞으로 엄마와 더 자주, 더 많이 카페를 가야겠다. 산속에 있든 바닷가에 있든, 더 멀고 더 가기 힘든 곳이라도 엄마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함께 가자.


그래서 오늘도 나는 엄마와 카페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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