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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빈 Jun 30. 2023

교육은 결과가 늦다

국어교육과 교수님의 마지막 수업

대학교 4학년 막학기에 수강했던 전공수업 중 한 전공수업의 마지막 수업에서 교수님은 "좋은 수업이란 무엇일까요? 또 좋은 교육이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졌다. 재밌고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하는 수업이 좋은 수업일까, 아니면 학술적이고 깊이 있는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이 좋은 수업일까. 활동적이고 경험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수업이 좋은 수업일까, 아니면 실제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기술 및 전략을 전달해 주는 수업이 좋은 수업일까. 학생들은 잠깐동안 생각할 시간을 가진 후 이에 대해 각자 의견을 말했는데 여태까지 본인이 살아온 환경과 겪었던 체험, 경험한 교육적 활동 등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대답들이 나왔다.


이런 맥락에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마지막 즈음에 이르러 교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힘들더라도 가치 있는 내용은 다뤄야 하며 흥미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



재미있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면 노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교육에서는 학생들의 호응을 많이 얻지 못하더라도,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 그걸 전달하기 위해 주변의 반응 정도는 감수하고 교육내용으로 구성하고 실행할 줄 아는 용기와 끈기가 필요하다고 교수님은 말했다. 그렇기에 교사는 '우직함'이 중요한 자질 중 하나가 된다고. 늘 그 자리에 있는 것, 흔들리더라도 우직히 자신의 철학으로 걸어갈 수 있는 것, 이 말이다.


교수님께서도 교사 생활을 할 때 첫 1-2년은 초임이라 우왕좌왕하면서 적응하는데 시간을 보냈고, 그 후 3년 정도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을 만한 수업을 했다고 하셨다. 확실히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아지긴 했지만 교육의 핵심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 이후로, 인기는 조금 떨어지더라도 교육에서 꼭 다뤄야 할 가치를 중점으로 하는 수업을 했다고 하셨다. 이런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우리에게 5년 정도 교사생활을 하고 자신이 했던 말을 한 번 떠올려보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교육은 단기간에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오늘 배운 내용이 언제, 어느 시점에서 발현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치 넓은 들판에 어떤 품종인지 모를, 다양한 품종이 섞여 있는 씨앗을 뿌리는 행위와 같다. 씨를 뿌려 놓고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꽃이 피어 있는 걸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 곡식이 여물어 있는 걸 보게 되기도 하고, 혹은 발아조차 하지 못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있다.


그래서 평가라는 것도 애매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지금 당장 시험이든 수행평가든 어떠한 형태로든 평가를 실시했을 땐 '안다’라고 판명이 나더라도, 그 다음날 다시 똑같은 평가를 치렀을 때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건 아는 걸까? 모르는 걸까? 또 지금 안다고 하더라도 망각으로 인해 나중에 모를 수 있는 것이고, 지금 당장 모른다 하더라도 인상적인 경험을 통해 평생 기억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기다림이 중요해진다. 가시적인 결과가 보이지 않기에 설득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그 끝을,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 무턱대고 기다리기만 하면 다 돼, 라는 게 아니다. 적당한 책임감을 가질 수 있을 정도의 무언가를 실행하고 공을 들였다면 그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도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빛깔로, 어떤 크기로, 언제 피어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단순히 청소년 교육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생도 그러할 것이다.


어쩌면 "힘들더라도 가치 있는 내용은 다뤄야 하며 흥미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교수님의 말씀은 이런 함의까지 담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어쩌면 아직 발현되지 않은, 발견되지 않은 무언가가 우리 안에 잠자고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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