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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빈 Apr 05. 2024

종소리가 별빛처럼 내렸던 조토의 종탑

이탈리아-피렌체(7.17)

#유럽여행 15일차 (3)


시간에 맞춰 조토의 종탑 앞으로 갔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3시간 정도 꼬박 서서 관람을 했더니 다리가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그래도 오늘이 아니면 올라가 볼 기회가 없다는 생각이 꺼져가는 의욕에 불씨를 지폈다. 내일은 피렌체 근처 소도시 피사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일정이기 때문에,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모르는 저 높은 종탑 위에 올라갈 수 있는 시간은 딱 지금뿐이었다. 오전에 464 계단의 피렌체 대성당 큐폴라에 올라갔다가, 오후에 414 계단의 조토의 종탑에 오르는 일정은 분명 만만치 않았지만, 못할 건 또 없었다. 



타이밍이 좋았는지 대기 없이 오후 5시 40분쯤 종탑 안으로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겨울에 오면 종탑 정상에서 일몰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일몰시간이 오후 9시쯤인 7월엔 그저 한낮이었다. 출발하기 전, 종탑 밑에 서서 위를 올려다봤다. '와, 높다.' 멀리서 봤을 땐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사진 프레임 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압도적인 높이였다. 허리를 최대한 젖혀 사진 장을 찍고는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종탑 속 계단은 상당히 좁았다. 오르내리는 길도 하나라 서로 양보하면서 가야 했는데 다행히 중간중간 쉬는 구간이 있어서 마주 오는 사람을 피할 수도 있고, 피렌체 시티뷰를 구경하면서 잠깐 쉴 수도 있었다.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풍경이 달라졌다. 처음엔 가까운 건물과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더니 이내 주황색 지붕과 시원하게 쭉 뻗은 거리, 좁고 미로같이 꼬불꼬불한 골목길, 언덕 위의 궁전, 먼 거리의 집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동적인 것에서 정적인 것으로, 감춰져 있던 본모습이 한 꺼풀씩 벗겨지며 피렌체라는 도시가 한층 더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도시 전체가 아름다운 예술작품 같은 곳, 모든 게 둘레둘레 모여있어 두 발 안에 도시를 담을 수 있는 그런 소담한 매력이 가득한 곳, 그런 곳이 이곳 피렌체였다.



사진을 찍으며 쉬엄쉬엄 올라가고 있는데 정상을 얼마 남겨두고 갑자기 천지가 뒤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거짓말 안 하고 지진인 줄 알았다. 아니, 확신했다. 이건 분명 땅이 갈라지는 소리였으니까. 이탈리아까지 와서 지진이라니..!! 다리가 풀려서 주저앉을 뻔한 걸 겨우 균형을 잡았다. 심장 홀로 저 400 계단 밑으로 공중낙하하고 있었다.


1초가 10년같이 느껴졌던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현실의 소리가 내 귀를 통해 들어왔다. 맑고 묵직하면서도 청아한 종소리. 어라? 종.. 소리? 그렇다. 땅이 갈라지는 그 소리의 주인공은 종소리였다. 알고 보니 매일 오후 6시 정각에 종을 치는데 우리가 올라갔던 시간이 마침 종을 치는 시간과 겹친 것이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종소리에 이곳이 '종탑'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자각했다. 다행히 공중낙하하고 있던 심장은 재빠르게 유턴해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종탑 안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처음 들어봤는데, 귀청이 떨어질 만큼 우렁찼다. 종이 울릴 때마다 거대한 진동이 두 다리를 통해 전류처럼 흘러들어왔다. 목덜미가 찌릿찌릿했다. 대성당이라는 공간이 주는 힘인지, 애니메이션처럼 황금빛으로 빛나는 종소리가 낙화놀이의 불꽃처럼 온몸을 감싸며 하늘에서 마치 축복(?)을 내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안녕바다의 '별 빛이 내린다' 노래 중 "별 빛이 내린다~ 샤라랄라랄라라~"가 귓가에 맴돌며 반복재생됐다. 이런 기막힌 우연이라니. 처음엔 깜짝 놀라서 서로 얼빠진 얼굴로 쳐다보다가 긍정의 헛웃음을 짓고는 약 1분간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감상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흩날리는 종소리가 지금까지도 한 편의 유화처럼 기억된다.


종소리를 다 듣고 다시 정상으로 향했다. 사고방지를 위해 천장까지 철조망이 쳐져 있어서 새장 같은 느낌이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안전을 위해 필요하긴 하겠다 싶은데 전망은 아쉬웠다. 새장 안에 갇힌 새가 바라보는 세상이 이런 느낌일까. 건너편 큐폴라돔에 사람들이 있는 게 보였다. 새삼스레 반가웠다. 돔에서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피렌체를 두 눈 가득 담았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피렌체 대성당, 우피치 미술관, 조토의 종탑, 거기에 계단 878개를 오르는 숨 가빴던 하루 일정이 끝났다. 발바닥이 불이 난 것처럼 화끈거렸지만 마음만은 풍족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1733년에 문을 연, 피렌체에서 제일 오래된 카페 '질리'에서 간식으로 먹을 빵을 샀다.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가게 외관의 화려함에 비해 빵과 초콜릿은 그다지 끌리는 게 별로 없어서 기본빵 2개만 골랐다.


그다음으로, 젤라또 가게에 들렀다. 이탈리아 하면 젤라또 아니겠는가! 평소에 아이스크림, 젤라또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해서 이탈리아에 가면 꼭 1일 1젤라또 해야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복병은 따로 있었다. 바로 우리 오빠. 경비 담당이던 오빠는 젤라또가 비싸다고 많이 못 먹게 했다. 두 스쿱이 올라가는 피콜로 사이즈가 4,500원 정도 했으니 당시 대학생의 입장에선 비싸게 느껴질 만도 했다. 그래, 앞으로 여행일정이 많이 남았고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정해진 경비 안에서 돈을 펑펑 쓸 수 없단 거, 이해한다. 그래도 이탈리아까지 와서 1인 1젤라또를 할 수 없다니..! 그나마 다행인 건 '1일' 0.67젤라또는 어떻게든 사수했다는 것! 3명에서 하나씩 들고 먹으면 참 좋으련만... 본인은 많이 안 먹겠다고 해서 항상 2개만 사서 3명에서 나눠먹었다. 그리곤 자기가 제일 많이 먹었다.


눈물을 머금고 피콜로 사이즈 젤라또 2개를 주문하자, 젤라또 매장 직원이 유려한 손놀림으로 젤라또를 삭삭 뜨더니 동글동글하게 모양을 만들었다. 젤라또 특유의 쫀득함이 눈으로 느껴질 정도로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속으로 '조금만.. 조금만 더..!'를 외쳤지만 직원은 정량입니다, 를 시전 하듯 앞사람이 받아간 것과 정확히 똑같은 양의 젤라또를 생글생글 웃으며 건네줬다. 어쩌면 그래서 더 달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도 젤라또의 맛과 향이 기억나는 걸 보면.


나중에 다시 오게 된다면 젤라또 정도는 '1일 1인(!!) 1젤라또'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 다시 돌아오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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