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리스본(7.23)
#유럽여행 21일차 (1)
눈부신 햇살이 커튼을 간질이는 이른 아침, 푹신한 베개를 베고 모로 누워 세로로 긴 창문으로 푸르고 맑은 하늘을 보고 있으려니 햇살에서도 향이 느껴졌다. 잘 말린 이불에서 나는 포근한 향처럼 마음껏 게을러지고만 싶은 그런. 두둥실 뜬 뭉게구름을 따라 리스본에서 맞는 첫 번째 아침이 여유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기지개를 켜며 바다를 닮은 푸른 부엌에 들어서니 벌써 엄마가 나와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릇과 간단한 조리도구들을 정갈하게 정리해 놓은 호스트의 손길이 찬장 곳곳에 묻어있었고, 벽에 붙은 코발트블루 타일은 이국적인 생기를 더했다. 낯설지만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엄마를 도와 아침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는데 밖에서 갑자기 쿠르릉, 하는 묵직한 마찰음 소리가 들려왔다. 바닥에선 약간의 진동도 느껴졌다. 사고라도 났나 싶어 급하게 창을 내다보니 건너편 집과 우리 집 사이 좁은 골목길로 트램이 지나가고 있었다. 트램 옆으로는 겨우 한 사람이 서 있을 만한 좁다란 틈에 사람들이 벽에 등을 대고 따닥따닥 붙어 있었다. 어제는 대수롭지 않게 보았던 철로 위로 앙증맞은 노란색 트램이 지나다니는 걸 눈앞에서 보니 비로소 실감이 났다. '아, 정말 리스본에 왔구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엄마와 소녀처럼 까르르 웃었다. 매일 아침 이렇게 트램이 지나갈 걸 생각하니 정말 현지인의 삶으로 성큼 걸어 들어온 듯했다. 아니지, 매일 들으면 소음일 텐데 이 또한 낭만으로 느껴지는 건 역시 여행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려나.
피렌체 에어비앤비에서 가져온 라즈베리쨈을 다 털어 만든 샌드위치의 맛은 기대만큼 훌륭했다.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에서는 대지의 흙내음이 났고, 청사과는 한입 베어 물자 아삭, 하는 소리와 함께 달콤한 과즙이 입술을 적셨다. 어제 저녁 집 근처 마트에서 간단하게 장 봐온 걸로 이렇게 근사한 상이 차려지다니. 다시 한번 사과를 베어 물자 입안 가득 상큼한 여름이 부서졌다.
돌이켜보면, 밖에서 사 먹는 것도 좋았지만 바쁜 와중에도 숙소에서 직접 해먹은 음식들이 기억에 더 많이 남는 것 같다.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로컬 마트에서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식재료를 둘러보고,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서 알맞은 양만큼 구매하고, 그 재료들을 다듬고 굽고 볶아서 하나의 요리로 만드는 시간. 그리고 그걸 함께 먹는 시간. 이때의 든든함이 한 톨씩 모여 낯선 도시에서 맞이하는 새로운 경험들을 꼭꼭 씹어서 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게 아닐까.
만족스러운 홈메이드 아침 덕분에 몸도 마음도 든든하게 불러오는 포만감을 느끼며 거리로 나왔다. 버스와 트램, 택시와 툭툭이, 푸니쿨라와 승용차가 그들만의 질서 속에서 평화롭게 도로를 달렸다. 트램 선로와 차선이 구분이 잘 안 되는데 어떻게 운전하는 건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흔히 리스본 하면 로망으로 통하는 트램이 몹시 궁금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우릴 빠르고 정확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노란 버스에 얌전히 올라탔다.
버스는 한참을 달렸다. 가파른 언덕과 구불구불 좁은 골목길, 이따금 고개를 내미는 넓은 광장이 순환하듯 반복되더니 점점 도심을 벗어났다. 건물의 높이가 한층씩 낮아지더니 어느새 탁 트인 풍경이 펼쳐졌다. 저 멀리 보이는 4월 25일 다리와 울창한 가로수, 잔잔한 물결 위에 얌전히 정박해 있는 요트가 우릴 반기는 이곳은 오늘의 목적지, 벨렝 지구였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테주강변에 세워진 벨렝 탑이었다. 16세기 방어를 위해 건설된 요새인데 '테주강의 귀부인'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푸른 호수 위에 흰 백조가 한 마리 앉아있는 듯한 도도한 자태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화사한 겉모습과 달리 지하에는 과거 감옥으로 사용된 공간이 있는데, 만조 때마다 차올랐다가 빠지는 물로 죄인들을 고문했다고 한다. 만조 때에는 중앙에 있는 직사각형 구멍으로만 숨을 쉴 수 있었는데, 자연현상을 이용한 고문방식은 왠지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평소에 늘 일어나는 일상적 현상이 생각지도 못한 잔혹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랬을까. 모래사장에 앉아 파도처럼 찰랑이는 물에 손을 넣어보며 사람이나 건물이나 역시 겉모습만 보고는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탑 앞에는, 전자 바이올린으로 버스킹을 하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귀여운 디즈니 메들리부터 클래식, 포르투갈 전통민요, 이매진 드래곤스와 콜드플레이의 빠른 템포의 팝음악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연주했다. 연주곡에 따라 벨렝탑은 라푼젤의 환상적인 성으로도, 민족의 한이 서린 역사의 장으로도, 대형 콘서트장의 배경으로도 자유자재로 변신했다. 햇볕이 뜨거워 잠깐 듣고 걸음을 옮겼는데, 벨렝탑을 떠날 때 찬란한 햇살을 머금은 검은 바이올린은 벨렝탑 위로 작은 종달새를 꺼내기 시작했다.
벨렘탑에서 발견기념비까지 걸어가는 길 앞엔 바다라고 착각할 정도의 너른 테주강이 시원스레 펼쳐졌다. 그런 풍경을 병풍 삼아 핫핑크, 민트 등 화려한 색깔로 이목을 끄는 클래식 차들이 집합해 있었는데 착즙오렌지부터 라임에이드, 피나콜라다까지 보기만 해도 상큼한 음료들이 줄지어 여행자들을 맞았다. 더운 날씨에 딱 맞는 메뉴 선택이 목마른 사람들을 사이렌처럼 끊임없이 불러들였다.
그 뒤론 수륙양용버스가 거대한 고래처럼 뽈뽈뽈 지나갔는데, 처음엔 버스가 물 위에 떠 있길래 사고가 난 줄 알고 퍽 놀랐더랬다. 꽤 빠른 속도로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는데 어렸을 때 읽었던 <신기한 스쿨버스> 동화책이 현실로 실현된 느낌이어서 재밌었다. 그러고 보면 리스본은 노란색을 참 좋아한다. 버스도, 트램도, 수륙양용버스도 온통 다 귀여운 노랑의 도시다.
강변 산책로의 끝에는 포르투갈의 대항해 시대를 고스란히 간직한 발견기념비가 있었다. 하지만 거대한 크기의 역사적 인물들의 조각상보다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따로 있었으니, 바로 자갈 바닥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문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스무 살에 처음 갔었던 마카오의 세나도 광장이 이내 떠올랐다. 당시엔 유럽 분위기의 광장이 예뻐서 즐겁게 사진을 찍었던 것 같은데, 식민 지배가 남긴 흉터임을 이곳에서 두 눈으로 확인하니 갑자기 입안이 텁텁해지면서 어떤 마음일지 모를 감정이 훅 끼쳤다. 한 번 남긴 흔적은 꼬리가 참 길구나, 싶으면서 오랜 시간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닳고 닳아 반들반들 윤이 나는 돌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발견기념비에서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길게 뻗어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이 보였다. 그 벽을 따라 길게 늘어선 사람들도. 어차피 기다려야 할 줄, 에그타르트를 맛있게 먹고 와서 서자며 기운차게 패스했다.
에그타르트를 사러 갈 때였다. 횡단보도를 한 번 건너야 했는데 차가 오고 있길래 보내고 건너려고 일부러 걷는 속도를 늦췄다. 그런데 차가 슬슬 속력을 멈추더니 완전히 멈춰 섰다. 타이밍이 안 맞아서 애매하게 멈추는 게 아니라 이미 저 멀리서부터 속력을 줄이면서 정지했다. 어라? 이게 뭐지..? 횡단보도 앞에 누가 서 있던 것도 아닌데...??
한 번의 우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포르투갈에 있는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이런 상황이 펼쳐졌다. 횡단보도에 누군가 서있거나 건너려고 걸어오는 기미만 보여도 무조건 차가 멈췄다. 사람이 다 지나가고도 한 박자 쉬고 움직이는 여유, 그래도 아무도 경적을 울리지 않고 당연한 듯 앞차의 리듬에 맞춰주는 뒤차들. 도로에서 모든 차들이 멈추는 마법이 리스본에선 매일 일어나고 있었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배려를 받으며 기분 좋게 에그타르트 가게 앞에 도착했다. 벨렘 지구에 가면 꼭 맛봐야 하는 180년이 넘은 가게, <파스테이스 드 벨렘>이었다. 18세기 포르투갈 수도원에서는 옷을 빳빳하게 만드는 용도로 달걀흰자를 세탁에 사용했는데, 남겨진 노른자를 처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타, 즉 포르투갈식 에그타르트가 탄생했다. 왜 포르투갈 최고의 에그타르트 가게가 리스본 도심이 아니라 외곽의 수도원 옆에 위치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가게 앞은 에그타르트를 맛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여든 여행자들로 문전성시였다. 안쪽 베이킹실에서는 끊임없이 에그타르트를 구워내고 바깥에서는 한 김 식힌 에그타르트를 끊임없이 포장해내고 있었다. 줄은 길었지만 대부분 포장이라 빠르게 줄어들었다.
포장한 에그타르트를 들고 옆에 있는 스타벅스로 향했다. 여행자들 사이에서 비공식 에그타르트 시식장소로 통하는데 열에 아홉은 에그타르트 종이가방을 들고 있었다. 주문한 음료를 받아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고풍스러운 포장지를 뜯고 에그타르트를 하나 꺼내 들자 영롱한 노란빛이 탐스럽다. 한입 베어 물자 겹겹이 쌓인 페이스트리가 잘게 부서지더니 그 사이로 촉촉하고 말랑한 필링이 흘러나온다. 오븐에서부터 듬뿍 머금고 나온 온기와 함께 은은한 버터향이 입안 가득 퍼지는데 와, 감탄사가 자연스럽게 따라 나왔다. 여태까지 먹어온 에그타르트와는 차원이 달랐다.
특히 이 집의 킥은, 향에 가까운 달지 않은 단맛. 부드러운 필링을 음미할수록 그윽한 단맛이 혀끝에서 수줍게 인사를 해온다. 무등산 수박이 비단처럼 한 올 한 올 길게 찢어지는 과육에서 은근히 달콤한 향미가 나는 것처럼, 맛있다고 일컬어지는 음식들은 대부분 자신의 존재를 내세우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겸손한 태도가 오히려 그 음식만의 대체불가한 개성이 되고 계속 생각나게 만드는 중독성을 가지게 하는 것 같다.
'인생'이라는 수식어를 아무 데나 함부로 붙이기 싫어하는 엄마도 인정한 맛이었으니 말 다했지, 뭐.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달콤함이라 앉은자리에서 10개는 그냥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이 에그타르트를 맛보려고 이 먼 곳까지 오게 된 게 틀림없어, 라는 운명적 확신을 갖게 만드는 맛. 나에게 포르투갈은 언제까지나 갓 구운 에그타르트의 버터향으로 기억될 것이다.
에그타르트가 준 감동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 제로니무스 수도원 앞에 섰다. 1500년대 포르투갈이 인도양을 주름잡던 시절에 지어진 이 수도원은, 4세기 동안 왕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전 세계를 항해하는 선원들에게 영적 지원을 하는 역할을 했다. 밀라노대성당의 생크림케이크가 연상되는 외관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참 잘했어요' 도장이 없어도 지나가는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입구 앞에는 초등학교에서 체험학습을 나온 어린이들이 모여있었는데, 흰 모자를 똑같이 맞춰 쓰고 백팩을 멘 아이들을 보니 어렸을 때 불국사와 석굴암에 갔던 기억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뭐가 그리 즐거웠던지 친구들과 쉴 새 없이 떠들면서 선생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던 그때가 생각나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뜨거운 햇볕 아래 열성적으로 설명하는 선생님과 손그늘을 드리운 채 잔뜩 찡그린 얼굴로 집중하는 아이들, 그 사이 양볼이 벌겋게 익어가는 모습은 국적을 불문하고 똑같았다.
돌을 깎아 만든 세공 기술에 이젠 익숙해질 만도 한데 온몸의 감각은 지치지도 않고 놀란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에까지 정교하게 새긴 조각들을 볼 때면 찌르르, 하고 무언가 몸 안에서 허물어져 내린다. 만난 적 없는 그 시대 장인의 땀방울이 조각 속에 함께 송골송골 맺혀있는 듯하다.
외관을 볼 때도 그랬지만 내부를 둘러보는데 여태까지 봐왔던 건축양식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듯한 촘촘한 천장 장식, 성난 파도를 닮은 새파란 타일, 묘하게 이국적인 향기가 느껴지는 조각들. 알고 보니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포르투갈만의 독특한 건축양식인 마누엘 양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이었다. 고딕 양식을 기본으로, 이탈리아·스페인·플랑드르 등 다양한 유럽 양식이 조화를 이루면서 닻, 밧줄, 산호, 조개 등 해양 탐험 시대의 상징물이 조각되어 있는 게 특징이다. 자세히 보니 포르투갈의 대표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의 관에는 조개와 범선, 밧줄 등의 해양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산타 마리아 성당의 기둥과 천장은 기후가 따뜻한 리스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야자수를 형상화한 것이었다.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곳곳에 숨어있는 해초와 조개를 하나씩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성당 관람을 마치고 나오자 사면이 아름다운 회랑으로 감싸진 중정이 나왔다. 탁 트인 공간에 밝은 햇살이 들어오는 걸 보니 조도가 낮은 성당 안에 있느라 눅눅해진 마음이 다시 보송해지는 듯했다. 뭔가를 채워 넣지 않고 비워낸 공간. 햇살과 바람, 비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자연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그 넉넉함이 좋았다.
햇빛이 데워놓은 따뜻한 대리석 위에 앉아 정원을 찬찬히 둘러봤다.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될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풍경이었다. 바다로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놓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염원하는 마음들이 모였을 수도원. 비 냄새가 중정 안을 꽉 채운 가을날에도, 사는 게 힘겨워 위로를 찾아 들렀을 겨울날에도, 그 무수한 날들에 한결같았을 회랑을 떠올려본다.
이럴 때면 낮과 밤, 날씨,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건축물의 다양한 얼굴을 보고 싶어진다. 고작 며칠 머물고 가는 여행자의 철없는 욕심이겠지만. 특정 공간이 보여주는 다양한 얼굴을 볼 수 있는 건 거주자의 특권이지만, 그걸 보지 못하고 떠나는 건 여행자의 특권일 것이다. 상상은 언제나 아쉬움이 많은 쪽이 하게 되고 그 아쉬움은 언젠가 반드시 그 장소로 돌아오게 만드니까.
눈을 감았다. 쏟아지는 햇살을 비라고 상상하면서. 여름비에 얼굴을 말갛게 씻은 수도원의 고요한 회랑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