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리스본(7.23)
#유럽여행 21일차 (2)
제로니무스 수도원 앞에서 버스를 타고 LX 팩토리로 이동했다. 리스본의 성수동 같은 곳으로, 원래는 1846년에 설립된 방직공장이었지만 2008년에 리모델링을 해서 지금은 리스본의 복합문화공간이 되었다. 미술, 패션, 미디어, 디자인, 사진 관련 많은 단체와 작은 회사들이 둥지를 튼 힙한 공간으로 편집샵, 소품샵이 많아 핸드메이드 소품과 리스본 감성이 담긴 물건들을 구경할 수 있다.
여태까지 다녀본 리스본은, 언제 찾아가도 아무 말 없이 따뜻한 차 한 잔을 쪼르르 내려줄 것만 같은 마음씨 좋은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잔잔한 도시였는데 이곳은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강렬한 색상의 벽화와 독창적인 장식물들로 꾸며진 거리는 새로운 무언가를 세상에 보여주고자 하는 사람 특유의 패기와 그 자신감이 뿜어내는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덕분에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길에 떨어진 이름 모를 누군가의 빛나는 에너지를 한 움큼씩 줍는 느낌이었다.
한참 걷다가 햇살을 피해 눈에 띄는 아무 서점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서자, 높은 층고와 압도적인 높이의 책장이 두 눈 가득 덮쳤다. 중앙에는 자전거 타는 새하얀 사람모빌이 천장을 가로지르며 매달려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곳이 그 유명한 서점 <Ler Devagar>였다. 여행책자에서 리스본을 대표하는 서점으로 소개된 걸 봤었는데 발길 닿는 대로 오다 보니 마주하게 된 이 우연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예전에 방직공장이었던 장소답게 바닥과 계단, 손잡이가 모두 철제로 되어있어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철컥, 하는 쇠마찰음 소리가 났다. 대체로 서점이란 공간을 떠올렸을 땐 포근하고 따뜻하다는 감각이 제일 먼저 스미는데, 여긴 공기에서도 소리에서도 서늘한 냉감이 느껴져서 독특했다.
해석할 수 없는 언어로 된 책은 어떤 효용이 있을까. 기회가 될 때마다 사부작거리며 여행을 다니고 있지만, 여행지에서 해당 국가의 언어로 된 책을 사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까지 해본 적이 없다. 책을 좋아하는 편인데도 이상하게 이국의 책에만 거리 두기를 하게 되는 건 왜일까. 글자 속에 담긴 생각을 읽어낼 수 없는 직사각형의 딱딱한 물체는 도저히 '책'이라는 생각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긴 여행 중 캐리어 속에 몇 평씩이나 차지하고 앉아 있는 묵직한 책을 그냥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일까.
언젠가, 외국에 나가면 <어린 왕자>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그 나라 언어로 번역된 책을 사서 국가별 컬렉션으로 모으는 게 취미라는 사람의 글을 접한 적이 있다. 읽지 못해도 기념품만으로 충분히 가치를 지니기도 하고 책을 통해 해당 언어를 배우게 되기도 한다는 멋진 이유도 있었다. 나 또한 책장에 꽂혀있는 해석되지 않는 언어가 자극제가 되어 언젠가 저 언어를 배워 읽게 된다는 낭만적인 상상을 전연 해본 적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몇 년째 책장에 고요히 꽂혀있는 선물 받은 외국책을 볼 때면 저에겐 언제 낭만의 요정이 찾아오나요,라고 책 표지를 똑똑 두드려보고 싶어진다. 하하.
때때로 책은 표지의 그림과 색감만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는 물건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읽지 못하는 책에서 오히려 더 많은 추억과 낭만을 해독해내기도 할 테지만 나는 해석되지 않는 책을 마주하면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상기된 얼굴로 색색깔의 책을 손에 들고 계산을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을 보면 먼 훗날 언젠가는 나도 저 줄에 함께 서있게 될까, 궁금해진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때가 오면 해석할 수 없는 언어로 된 책의 효용에 대해 누구보다 신나게 글로 쓰고 있을 거란 것!
열심히 돌아다녔더니 배가 고파졌다. LX팩토리를 벗어나 저녁을 먹으러 갔다.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를 지나 메인 거리에 들어서니 오후의 햇살이 느긋하게 건물 벽에 몸을 누이고 있었다. 우리가 가는 곳은 코메르시우 광장 근처에 있는 해물밥 맛집이었는데 골목 안에 있어서 찾아가는데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아름다운 바닥타일과 거리 구석구석을 장식하고 있는 아줄레주, 버스킹하는 거리악사와 차력사들의 공연은 배고픔을 가시게 해주는 훌륭한 애피타이저가 되어주었다.
리스본에 왔으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해물밥은, 해물 육수에 쌀을 불려 넣고 거기에 토마토와 파프리카 가루, 갖은 야채와 새우, 홍합 등의 해산물을 듬뿍 넣고 푹 끓여낸 자박한 죽이었다. 하지만 친근한 비주얼에서 이미 알 수 있듯이 충분히 예상 가능한 맛이었다. 한 입 먹자, 바다향이 코끝에 스치는 싱거운 해물탕 맛이 느껴졌다. 기대가 커서 그랬을까,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특색 있는 해산물이 들어가거나 조금 더 특별한 맛이었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 아쉬움이 컸다. 오히려 칼칼하고 자기 색깔이 뚜렷한 한국식 어죽이 더 매력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아이러니하다. 중국은 몇 번을 가도 향신료가 나와 맞지 않아 현지 음식을 먹지 못해 고생하는데 포르투갈에서는 너무 익숙한 맛이라고 불평을 하게 되다니. 익숙함이 주는 지루함에 새로운 걸 찾아 나서지만, 약간의 불쾌함에 소매 끝이 젖게 되면 금세 익숙한 것으로 돌아가려 하는 인간의 본능은 심술을 부리는 여우비를 닮았다. 결국 여행은 자신이 허용할 수 있는 낯섦과 익숙함의 정도가 어디까지인지 그 스펙트럼을 알게 되는 여정이 아닐까. 변덕스러운 마음을 뜨끈하게 녹여주는 해물밥에 약간의 솟아나는 애정을 느끼며 남김없이 바닥까지 싹싹 비웠다.
저녁을 먹고 나니 하루의 마감을 앞두고 매일 의식처럼 치르는 마지막 일정만이 남았다. 리스본 전경을 마주할 수 있는 전망대 '미라도루 다 그라사'로 올라가는 길. 트램을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일몰까지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아서 도보길을 택했다. 15분 남짓의 가까운 거리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급경사 길이라 만만치 않았다.
"여기 맞아? 진짜 여기로 가는 거 맞지?"
"이 길밖에 없어? 확실한 거야?"
끝없이 펼쳐진 계단에 엄마와 나는 연거푸 물었고, 구글 지도를 손에 든 오빠는 맞다는 의미로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야외미술관을 방불케 할 만큼 다채로운 벽화가 많아 감탄을 하다 보면 다리에 가해지는 압박감을 자꾸 잊게 된다는 것이었다. 중간중간 건물 사이로 보이는 예쁜 풍경도 기운을 북돋는데 한몫했고. 역시 리스본의 예술가들은 다 계획이 있었다! 다시 힘을 내서 100m 달리기를 할 때처럼 짧고 굵게 끝낸다는 마음으로 전력을 다해 올라갔다.
정상에 도착하니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졌다. 서두른 보람이 있게 태양은 이제 막 산 너머로 뉘엿뉘엿 떨어지고 있었고 성당 앞마당에는 노을을 보며 맥주와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재잘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내려 한껏 풀어진 분위기, 치열했던 하루를 돌아보는 열띤 한가로움이 발밑에 고인 연기처럼 흐르는 곳에 서 있으니 내 마음에도 만족스러운 게으름이 서서히 차올랐다.
해가 저물수록 하늘은 붉게 물들었고 도시엔 서서히 어둠이 찾아왔다. 우리 셋은 난간에 기대앉아 말없이 풍경을 감상했다. 더없이 아름다운 이런 풍경도 매일 보면 결국 시들어버리는 꽃처럼 시시해질까. 마지막 빛을 불사르는 태양을 보는데 갑자기 뜬구름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꾸물꾸물 헤엄쳐갔다. 떠나야 하는 여행자가 부려본 심술이었을까.
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내 옆에 동네 주민인 듯한 노부부가 서로의 허리를 감싸 안고 고요히 도시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감탄 어린 눈빛이 닮은꼴을 한 두 얼굴 속에 맴돌고 있었다. 평생 동안 수천 번을 봤을 텐데도 여전히 이런 불꽃이 이는 걸 보면 이 노을의 특별함은 쉬이 바래지 않는 듯했다.
옆을 돌아보니, 엄마와 오빠가 붉은 태양빛을 받아 발그레해진 얼굴로 동화 속 삽화 같은 주홍빛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노부부의 그것과 꼭 닮은 눈빛. 예뻤다. 너무 밝게 빛나서 세상이 까매질 시간조차 없을 만큼, 그렇게 예뻤다. 이윽고 우린 서로 눈이 마주쳤고 말없이 미소 지었다. 입꼬리에서 피어나는 미소를 느끼며 언젠가 책에서 봤던 구절이 떠올랐다.
돈이 없어서, 혹은 돈이 있어도 시간이 없어서, 혹은 돈도 시간도 없어서, 혹은 돈도 시간도 있는데 마음이 없어서, 혹은 마음이 있긴 있는데 엇갈려서, 우리는 행복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에 자주 실패해.
<일간 이슬아>(이슬아 지음) p.113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행복이란 녀석을 손에 단단히 거머쥐고 있다는 어떤 예감 같은 게 훅 스쳤다. 돈도, 시간도, 마음도 내 곁에 고요히 내려앉아있다는 이 풍족함. 자주까진 아니어도 종종 이렇게 행복하고 싶어, 라는 옹골찬 결심을 내뱉게 만드는 마성의 노을, 그런 풍경이 이곳 리스본에 있었다.
소원을 빌고 싶게 동그랗게 잘생긴 태양을 보며,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의 너무 많은 소원을 들었을 테니 내 소원까지 접수되긴 힘들 것 같아 소원 대신 결심을 마음속으로 크게 내질러보는, 스물두 살의 패기 넘치는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