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메르시우 광장의 노랑, 노랑, 노랑이 되고 싶어!

포르투갈-리스본(7.25)

by 이수빈

#유럽여행 23일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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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서기 전, 아침식사를 차렸다. 간단하게 먹으려 했는데 오늘 저녁에 야간버스를 타고 세비야로 떠나기 때문에 냉장고를 비워야 해서 하나둘 꺼내다 보니 복숭아, 샐러드, 요거트, 그리고 어제 포장해 온 에그타르트까지 한 자리에 모이게 됐다. 풍성하게 채워진 식탁을 보니 없던 식욕도 샘솟았다. 에그타르트를 한 입 베어문 엄마가 만족스러운 듯 말했다.


"음, 원 없이 먹어서 이제 정말 아쉬움이 남지 않아."


오호, 이 말이 나오는 걸 보니 한동안 에그타르트는 찾지 않겠군. 괜히 흐뭇한 마음에 미소가 지어졌다. 엄마는 입맛에 맞는 음식을 발견하면 연달아 다섯 번도 찾아가서 먹는다. 다시 말해 한 번 꽂히면 질릴 때까지 먹어서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다. 반면에 난 마음에 들수록 아꼈다가 먹는 스타일인데, 그래서 지체 없이 실행에 옮기는 엄마를 볼 때면 늘 신기하다. 나와 다른 타인의 특징을 알게 될 때면 역설적으로 나의 특징이 도드라지기 때문일까. 엄마 옆에 있으면 어김없이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이렇게 한 톨 한 톨씩 발견된 내가 모여 나를 설명하는 한 줄이 생겨난다. 그런데 홀로 존재할 때보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나를 알게 될 때가 많다는 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여전히 의문이지만 비로소 내가 정의되는 이 순간만큼은 언제나 기쁘고 반갑다.


엄마를 따라 한쪽 모퉁이를 베어 물었다. 바삭함은 자취를 감췄지만 은은한 단맛을 간직한 필링이 입안 가득 채워졌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촉감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음, 정말 아쉬움이 남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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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피게이라 광장을 지나 시가지 쪽으로 갈수록 거리가 번잡해지면서 사람이 많아졌다. 레스토랑, 카페, 기념품샵 등 수많은 가게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온통 붉은색에 서커스와 놀이동산이 섞인 콘셉트로 꾸며진 휘황찬란한 가게는 단연 독보적이었다. 뭐 하는 곳이지? 순간 호기심이 일었고 입구에 위치한 붉은 회전목마에 홀린 듯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포르투갈 정어리들의 환상적인 세계(The Fantastic World of Portuguese Sardines)'라는 다소 직설적인 이름을 가진 가게였는데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정어리와 놀이동산... 무슨 관련이 있지??'였다.


포르투갈 기념품으로 유명한 정어리 통조림을 판매하는 곳이었는데, 화려한 외관 디자인과 패키지로 입소문이 난 가게였다.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앞면에 각각의 연도가 적힌 채 한쪽 벽면 가득 진열된 통조림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처음엔 와인처럼 해당 연도에 만들어졌다는 뜻인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라 그 해 태어난 사람에게 선물하라고 모든 연도를 적어놓은 것이었다. 이 통조림은 이곳의 매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주요 제품이었다.


손님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주변 가족, 친구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몇 십 개씩 구매하는 사람과 구경만 하고 나가는 사람. 여행을 하다 보면 항상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제한된 시간, 비교군에 대한 한정된 정보, 언어적 한계라는 어려움을 딛고 우린 판단해야 한다. 포장 너머의 세계는 어떨까. 꽉 차 있는 진국일까, 빛 좋은 개살구일까. 이 정성스러운 껍데기는 상술일까, 기술일까. 현지마트보다 6~7배 비싸게 판매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도 통조림을 사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패키지에 기꺼이 가격을 지불하기로 선택한 소비자일 것이다. 결국 성공적인 마케팅이란 어떤 걸까. 마케팅은 결코 알맹이의 품질을 넘어서지 못할까, 아니면 알맹이의 품질조차 포장을 통해 높일 수 있는 게 마케팅일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잘 알려지지 못한 좋은 물건을 마케팅의 힘으로 발견되도록 하는 건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


공간의 힘은 대단하다. 평소에 잘 하지 않는 생각을 해보도록 우리를 이끈다. 처음부터 끝까지 환상적인 마케팅을 경험할 수 있었던 가게. 이 정도면 '포르투갈 정어리들의 환상적인 마케팅 세계(The Fantastic Marketing World of Portuguese Sardines)'로 바꿔도 되지 않을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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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입장하게 된 네버랜드에서 나와 햇빛을 쬐며 걸었다. 굳이 찾지 않아도 리스본 거리를 걷다 보면 한 번은 꼭 지나치게 되는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 1902년에 만들어졌고, 설계자는 에펠탑을 만든 에펠의 제자라고 한다. 외관의 문양과 생김새가 인상적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에펠탑과 닮은 것도 같고. 원래 언덕 아래에 있는 바이샤 지구와 언덕 위에 있는 바이루 알투 지구를 연결하는 주민용 이동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주민 대신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리스본의 전망 명소가 되었다.


드러난 철골구조를 유심히 보는데, 뮤지컬 <레베카>의 맨덜리 저택이 떠올랐다. 화창한 햇살 아래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늘하고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게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틈에 옹송그려 앉은 모습이 약간 불편해도 보였는데 120년 전 만들어진 당시엔 아주 혁신적이었을 테지. 아, 경치는 이틀 전 전망대에서 본 걸로 충분해서 타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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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에서 계단을 내려와 직선으로 뻗은 아우구스타 거리를 가로질러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로 향했다. 그저께 저녁 먹으러 왔을 때 지나가면서 스치듯 봤던 광장을 제대로 볼 생각에 기분 좋은 설렘이 살랑살랑 마음속에 울려 퍼졌다.



개선문을 통과해 걸어 들어가자 직사각형의 탁 트인 광장이 시원스레 펼쳐졌다. 감탄을 내지르며 뒤돌자, 이번엔 흰 대리석의 높고 화려한 개선문과 양옆으로 날개처럼 길게 펼쳐진 노란 회랑이 화창한 햇살 아래 눈이 부시게 반짝였다. 이제까지 봤던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광장과는 또 다른 인상이었는데 그건 아마도 광장의 한 면이 테주강과 접해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강변에 위치한 광장은 시원한 강바람과 윤슬이 비치는 물빛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흔히 리스본 여행의 시작점이라 불리는 코메르시우 광장을 우린 여행이 끝나갈 즈음 찾아오게 됐다. 하지만 순서가 뭐가 그리 중할까. 이곳에 발길이 닿았다는 게 중요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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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여행자처럼 광장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회랑 외벽색이 노랑이 아니라 파랑, 초록, 보라, 빨강이었으면 어땠을까. 검정, 분홍, 주황, 고동이었다면? 어떤 느낌의 광장이 되었을까? 흔히들 노랑하면 병아리, 어린이, 손아랫사람, 동생이 연상되어 귀엽고 생동감을 표현하는 색깔로 여기곤 하는데 이상하게 이곳의 노랑은 그렇지 않았다. 사랑스럽고 따스한 느낌도 있지만 동시에 당당함과 굳건함이 느껴졌다.


실제로 코메르시우 광장이 노란색으로 칠해진 이유가, 1755년 대지진 이후 리스본을 재건한 상인들의 상징성과 상업의 중심지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노랑은 상인 계급의 자부심과 상업의 활력을 상징하고 상업의 중심지로 재탄생해 꽃 피웠던 리스본의 영광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색인 것이다.


'꼭 들어맞는다.' 원래 그래야 할 것만 같이 자연스러웠다. 노랑이 아닌 코메르시우 광장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이 광장에 노랑이 아닌 다른 색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자리 잡을 수 없을 테지. 생텍쥐페리는 말했다. "완벽하다는 건 무엇 하나 덧붙일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라고. 대체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 그 독야청청함이 주는 희열이 여기 공명하고 있었다. 광장 한복판에 서서 생각했다. 나는 내가 속한 세상에서 코메르시우 광장의 노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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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옆 부두에 섰다. 이게 강인지 바다인지, 파도가 치듯 물결이 모래를 삼켰다가 도로 뱉어내는 드넓은 테주강이 오빠의 눈동자 안에서 넘실댔다. 이 순간 엄마의 눈동자도, 내 눈동자도 같은 풍경을 담아내고 있겠지. 물안개가 현수교를 감싸 더욱 신비로워보이는 이곳은, 15세기 대항해 시대 출발점이었다. 세상의 끝을 향해 떠나는 배들이 이 부두에서 출항했고, 수많은 선원과 꿈이 이곳을 지나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돌아왔고 또 돌아오지 못했을까. 싣고 간 꿈은 어떻게 됐을까, 원하는 만큼 모두 이뤄졌을까. 저 아득한 물안개 너머 끝없이 도전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한 겹씩 헤아려본다. 지금의 나에게 과거의 내가, 그리고 미래의 내가 포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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