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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o Nov 12. 2020

그냥 좀 살게요

21세기는 공시생의 시대다. 행정 공무원, 경찰 공무원, 소방 공무원 등 당장 내 주위에도 각 분야 공시생들이 있다. 아쉽게도 그들을 향한 기성세대의 시선은 곱지 않다. 요즘 것들은 패기가 없고, 안정성만 추구하며, 도전 정신이 없다. 그러나 처음부터 우리의 꿈이 공무원은 아니었다. 우리의 어린 시절 장래희망은 다이나믹했다. 장래망 1순위는 대통령이었다. 남자 아이들은 한 번 쯤 축구 선수를 꿈 꿨으며, 하얀 가운을 입은 과학자를 동경하기도 했다. 내 꿈은 모두에게 재미를 주는 개그맨이었다.

그들의 꿈은 한동안 인정받았다. 꿈은 자유기 때문이다. 2002년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에는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유행했다.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 없다’는 말은 누군가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삶은 현실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꿈은 개인의 소유로 그치지 않는다. 자식의 꿈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며, 때때로 세상에게 허황되다는 멸시를 받는다. 경찰대학교 시험을 보고 싶던 내 친구는 원서조차 제출하지 못했다. 제 주제를 알고 시간낭비 하지 말라는 담임의 조언이었다. 플롯연주자가 꿈이던 후배는 팔자에도 없던 교육학을 공부 중이다. 꿈이나 쫓는 멍청이가 될 순 없지 않은가.

이제 많은 청소년들의 장래희망은 공무원이다. 그들은 더 이상 대통령이나 과학자처럼 허황된 꿈을 꾸지 않는다. 예술을 쫓는 멍청한 짓도 하지 않는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안정이며, 일단 안정을 얻으면 꿈은 언제든 꿈을 꿀 수 있다. 10년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제 그들은 어른들의 비난과 멸시를 받을 일이 없어 보인다. 일찌감치 인생의 진리를 깨닫고, 실패와는 거리가 먼 길을 걷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들에게 아이들은 꿈이 없는 불쌍한 사람이다. 획일화된 삶을 살려는 재미없는 녀석이고, 자기 인생도 없는 그저 그런 놈이다.

*

인사에는 문화가 담겨 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악수를 하지만, 원래는 무기가 없음을 증명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한다. 한국의 인사는 ‘안녕’이다. 편안 안 자에 편안할 녕 자를 써서, 편안이 얼마나 중요한지 두 번이나 강조한다. 만날 때마다 안녕을 묻는다는 건, 반대로 세상에 편안이 없음을 시사한다. 대화의 끝은 언제나 ‘밥 한 번 먹자’이다. 한동안 안녕과 밥은 우리에게 중요한 키워드였다. 밥을 잘 챙겨 먹으면 안녕하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인사말만 보더라도, 그 시대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게 된다.

아마 취업 준비 중인 청년들이 제일 듣는 인사말은 ‘요새 뭐하냐?’일 것이다. 나 역시 지겹도록 듣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멋쩍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른 공부 중이라고 답한다. 세상이 예전보다는 별 탈이 없어서일까. 밥 굶을 일이 줄었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이상할 정도로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이 많다. 물론 나는 요즘 공부만 하지 않는다. 퇴근 후에는 저녁을 먹으며 밀린 유튜브를 본다. 일주일에 3일은 운동을 하려고 애쓰며, 하루에 대한 보상으로 꼭 게임을 한다. 보고 싶은 책을 읽을 때도 있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누워 있기도 한다. 하루 중 공부가 차지하는 시간은 많이 쳐 줘야 2시간 정도다. ‘요새 뭐하냐’는 질문에 ‘공부한다.’는 대답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뭐하고 사냐는 질문에 하루 일과를 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관심은 내 일상에 있지 않다. 그들은 나의 생산성에 관심이 있다. 미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으며, 실제로 어떤 결과를 냈는지를 묻는다. 나 역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취미로 글을 쓰고 있다.’고 답한다면, 그들은 작가가 될 거냐고 물을 것이다. 한 번 더 취미라고 얘기한다면, 당장 취미보다는 취업 준비를 해야 되지 않느냐는 걱정을 할지도 모른다. 이미 생각이 정해진 사람에게, 자전적 글쓰기의 장점을 설명해서 뭐 하겠는가. 아직도 로망을 쫓는 철부지로 기억될 뿐이다.

*

당연히 목사가 될 줄 알았다. 맨 앞자리에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고, 교수에게 칭찬받는 횟수도 늘었다. 공부가 재미있어졌고 성적 장학금을 받았으며, 친구들은 그럴만하다고 했다. 좋은 목사가 되기 위해 늘 노력했다. 내 삶은 분명 생산적이었으며, 훌륭한 결과를 위한 과정이라고 자부했다. 공부를 할수록 내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확신이 견고해졌을 때, 모든 것이 무너졌다. 현실의 벽에 부딪혔고, 예기치 못한 사고를 겪었다. 분명 내가 꿈꾸던 미래는 이런 게 아니었다. 노력은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고 배웠는데, 현실은 내 노력과는 전혀 다르게 펼쳐졌다.

사람마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안정성이며, 다른 누군가는 낭만을 놓지 못한 채 살아가기도 한다. 자신의 길을 옳다고 생각해서 그 길을 권하는 반면, 자신이 걷지 못한 길을 권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삶에 훈수를 두는 이유는 자기 삶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지만, 분명 아쉬움이 묻어 있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당신이 그린 미래를 살고 있는가? 당신은 언제나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늘 생산적인 과정을 걸었으며, 지금 완벽한 결과를 누리며 살고 있는가?

나에게 요즘 생긴 취미는 드라마 시청이다. 5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게 뭐가 재밌어서 보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요즘은 드라마가 삶의 낙이다. ‘이태원 클라쓰’를 보고는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언제까지 무너져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본 후로 에세이 강좌를 신청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전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히 있지만, 만족스러운 요즘이다. 이러다가 세계적인 작가가 될지 누가 아는가.

어차피 인생은 안녕하지 못하다. 과 수석을 놓치지 않던 사람도,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 취업이 어려울 수 있다. 여전히 그의 노력이 부족한가? 일정한 소득이 없는 사람도 복권을 통해 일획천금을 얻을 수 있다. 지금부터 인생 계획에 매주 복권 사기를 넣어야 할까? 인생은 언제나 미지의 세계다.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할 이유도 여유도 없다. 실패를 예방할 수 없으며, 성공을 약속할 수 없다. 주어진 인생 가운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뿐이다. 주어진 오늘을 그냥 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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