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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o Nov 12. 2020

고양이 행복론


고양이는 고독하다. 매일 집 안에서 나오지 못한 채, 똑같은 일상을 반복할 뿐이다. 그러나 영상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그렇지 않다. 고양이는 멍청한 행동으로 수많은 랜선집사들의 마음을 홀린다. 분명히 어제 뛰어 다닌 장소인데,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오늘도 뛰어 다닌다. 무엇을 하든 금방 질려버리는 사람들과는 정 딴판이다. 고양이는 내일 볼 시험이나, 출퇴근길을 걱정하지도 않는다. 물론 내일 비가 올지도 걱정하지 않는다. 몇 해 전부터 고양이에 관심이 급격히 증가했다. 어쩌면 사소한 일상도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만들어버리는, 작은 생명체에 대한 동경일지도 모르겠다.

고양이가 에피소드 덩어리인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뇌에는 ‘신피질’이라는 게 있다. 해당 부위는 ‘시간 인식’을 담당한다. 쉽게 말해,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인지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이성적인 사고를 담당하며, 신피질이 제법 두꺼운 종이 인간이다. 인간은 지나간 날을 후회하며,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한다. 인간은 과거에 묶인 채 미래를 두려워하다가,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을 즐기지 못한다.

그러나 고양이는 다르다. 고양이의 뇌 속에 신피질은 인간에 비해 훨씬 적다. 물론 고양이가 시간 개념이 아예 없지는 않다. 고양이도 분명히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깨닫는다. 그러나 인간과 고양이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고양이는 지난 날을 후회하는데, 지금 이 시간을 소비하지 않는다. 내일 오지 않을 비를 걱정하면서 잠에 들지도 않는다. 고양이는 지금 이 순간 열심히 사료를 먹으며, 열심히 사냥 놀이를 한다. 지금 당장에 몰입하다보니 가끔은 귀여운 행동을 하기도 한다.

물론 인간의 신피질이 얇아지는 경우도 있다. 바로 ‘술을 마실 때’다. 처음부터 만취할 생각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세 잔 된다. 내일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술을 마실 때만 해도 여러가지 걱정들이 있었다. 그러나 술이 들어갈수록 신피질이 얇아지면 뒷일은 안중에도 없어진다. 괜히 용기가 나기도 하며, 맨정신으로는 하지 않을 말도 한다. 그때만큼은 순전히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한다.

어쩌면 신피질 얘기를 했을 때, 당신은 안심했을지도 모르겠다. 본인이 늘 걱정만 하며 사는 게, 사실은 뇌 때문이었다. 불행히도 고양이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은 오늘을 살아내지 못한다. 술을 마시면 얇아진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매일 술을 마실 수는 없다. 만약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오늘을 살아가지 못한다. 분명 우리 마음대로 신피질을 줄일 수는 없다. 매일 취한 채로 일상생활을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술 외에도 지금을 사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아마 대부분 경험해봤을 것이다.

바로 ‘몰입’이다. 컴퓨터 게임만 하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자. 하루에 몇시간, 혹은 주말에만 컴퓨터가 허락됐었다. 주말이면 아침부터 일어나서 게임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시간이 왜 그렇게 빨리 가는지 모르겠다. 어제 본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아도, 내일 학교를 가야 한다고 해도, 게임을 할 때면 모든 정신이 거기에 쏠렸다. 너무 과거 얘기를 꺼내지 않아도 괜찮다. 최근 만난 친한 친구를 생각해 보자. 얘기를 하다보면 시간이 금방 흘러서, 금방 헤어질 시간이 된다.

고양이에게 부러운 게 겨우 ‘신피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끔 크게 하품을 하는 고양이를 보면, 나도 팔자 좋게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기지개를 쭉 켜는 모습을 보면 괜히 나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다. 고양이는 그 순간에 충분히 몰입한다. 만족하는 표정을 보면 입가에는 괜히 미소가 번진다. 고양이는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살아가며, 그래서 행복을 느낀다.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전염이 된다면, 내가 고양이의 입장이 되면 얼마나 행복할까?

당장 야옹 소리를 내자는 게 아니다. 그저 몰입만 하면 된다. 회사에서 상사에게 상처를 받은 얘기는 잠시 묻어 두자.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걱정도 내려 놓자. 그저 지금 당신이 무엇을 하는 중인지 인식해보자. 당신은 지금 나의 글을 읽고 있다. 충분히 몰입했는가? 태평하게 잠을 자는 고양이를 떠올렸는가? 술에 취해 술주정을 부리던 자신을 떠올렸는가? 너무 어려운 건 할 필요 없다. 지금은 내 글을 열심히 읽는 걸로 충분하다.

사람은 살면서 많은 순간을 겪는다. 하루에 세 끼를 먹으며, 한시간에 걸쳐 이동을 하기도 한다. 만약 그 시간에 충분히 몰입하지 못한다면, 우리 인생은 낭비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렵다면 한 번씩만 생각해보자. 매일 떠나는 출근길 중에 하늘을 올려다 보자. 자신이 걷는 자세는 어떤지도 인식해보고, 방금 먹은 밥의 식감도 느껴보자. 한 번 사는 인생이다. 밥 한 끼도 맛있는 것만 골라 먹는 요즘인데, 왜 하루하루를 그저 허비할까? 즐겁다면 즐거운대로, 피곤하면 피곤한대로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보자. 그러면 어느새 고양이보다 행복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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