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이 되면 내 꿈은 래퍼가 된다. 힙합 프로그램 ‘Show me the money’ 때문이다. 매일 같이 힙합 영상을 돌려보고, 자기 전 랩을 연습한다. 가끔은 가사를 쓰고, 아무 비트를 틀고 연습도 한다. 처음부터 힙합을 좋아하진 않았다. 거친 단어들을 뱉어내는 것보단 감미로운 사랑 노래가 좋았고, 단순한 멜로디가 반복되는 것보다 다양한 악기의 조화가 더 멋있었다. 그런 내게 어쩌다 힙합에 빠졌냐고 묻는다면, 나는 언제나 자유를 갈망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쇼미더머니의 랩은 그전까지 듣던 랩과는 달랐다. 비와이가 가사에 하나님을 녹여낼 때, 대중들이 거리낌없이 그 노래를 받아들일 때, 처음으로 힙합의 매력에 빠졌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그 사람이 정신병에 시달리든, 대학에 몇 번을 떨어졌든,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그게 음악이 되니 말이 달라졌다. 잔잔한 비트에 자신의 삶을 노래하면 음악이 된다. 힙합은 어떤 이야기든 허용한다. 그게 바로 힙합이다.
물론 이 부분 때문에 힙합이 논란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 혐오를 조성하는 랩을 좋아하지 않는다. 돈과 여자만 찾는 걸 힙합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힙합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당히 그것 역시 힙합이라고 답한다. 힙합에 경계는 불필요하다. 비와이가 가사에 하나님 이야기를 섞었다고 해서, 그것을 힙합이 아니라고 말하진 않는다. 우원재가 자신의 정신질환을 노래할 때, 힙합은 그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무엇이든 힙합이 될 수 있다. 힙합은 포용이며 자유다.
자기 얘기하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자신의 연봉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면, 자랑하지 말라는 비난이 돌아온다. 본인의 힘든 이야기를 하면, 너도나도 자신이 더 힘들었다고 말한다. 세상은 참 남의 이야기에 야박하다. 말하기조차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힙합은 다르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사로 준비하면 무엇이든 얘기할 수 있다. 돈이 좋다는 얘기도 속물취급 받지 않는다. 자신의 힘들었던 시절도 여과 없이 토로할 수 있다. 물론 아티스트에 대한 비난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 가운데 꾸준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 그야말로 힙합이다.
여전히 힙합에 대한 비판은 존재한다. 그들의 말마따나 힙합이라는 이름으로 비윤리적인 행위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얼마나 깨끗한 삶을 살았는가?’ 요즘 사람들은 너무 날이 서 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자신과 다르면, 틀렸다며 깎아 내린다. 물론 본인의 생각을 돌아보지 않는다. 자신과 맞지 않으면 공격할 뿐이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아티스트로 살아남기란 참 어렵다.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대중들의 잣대를 이기지 못해 넘어지곤 한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른다.
힙합은 단순하면서도 우직하다. 래퍼들은 수많은 비판에 ‘힙합’으로 답한다. 이 시대의 유명인은 양날의 검이다. 큰 영향력이 생기지만, 그만큼 말을 조심해야 한다. 어느 말이 공격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 래퍼들은 모든 비판에 ‘음악으로 보여 주겠다’고 말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익명성의 뒤에 숨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비판이라는 이름의 비난을 멈추지 않을 때, 그들은 음악으로써 본인의 가치를 증명한다. 누구보다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그들은 자유롭게 본인들의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인간이 자유로운 적이 언제였을까. 어쩌면 힙합에 대한 비판은 ‘부러움’인지도 모른다. 모름지기 사람이란 자유를 갈망한다.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으며, 세상 앞에 당당해지기를 원한다. 그 증거로 여전히 ‘자존감’에 대한 책이 베스트셀러지 않은가. 하지만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남들의 비판 가운데 자기 이야기를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힙합은 한 마디로 ‘자유’다. 비트 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한다. 주제도 형식도 없다. 내가 뱉는 모든 소리가 힙합이 된다.
21세기는 분명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하며, 직장인은 일을 해야 한다. 부모는 자식을 보살펴야 하고, 자식은 또 자식으로써의 역할이 존재한다. 세상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제약들이 존재한다.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에게, 당당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힙합은 눈엣가시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힙합을 동경한다. 자유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남이 아닌 자신을 보아야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을 멈추고 스스로의 이야기에 집중할 때, 우리는 어디서든 당당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