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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마리 Oct 05. 2021

내가 가르쳤던 방법

국어 공식

거의 스무 곳 넘게 잘렸다. 월급날만 좋아했고 답만 외워 가르쳤으니 수강생이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인생의 위기를 맞아 생각을 바꿨다. 일이 먼저고 연구가 나중이 되었다. 수능 언어영역을 연구했다.


언어영역이란 무엇인가? 다섯 가지 하위 영역의 공식을 숙지하고, 지문에서 인물, 사건, 배경을 통해 주제를 찾아내는 것이다. 연구를 끝낸 당시 대학 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에 대해 내린 나의 정의였다.


다섯 가지 하위 영역이란 어휘적 사고능력, 사실적 사고능력, 추리 상상적 사고능력, 비판적 사고능력, 논리적 사고능력이다. 어휘적 사고능력은 단어에 관한 지식을 묻는 영역으로서 그것을 바탕으로 주어진 지문을 있는 그대로 읽어내는 사실적 사고능력의 영역이 펼쳐진다. 있는 그대로를 파악했다면 이젠 표면 아래에 숨어 있는 것들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을 문학 제재에서는 상상이라, 비문학 제재에서는 추리라 한다. 둘을 합하면 추리 상상적 사고능력이다. 그렇게 해서 글의 표면과 심층을 파악하고 나면 글 안에서의 일관성과 글 밖에서의 타당성을 따질 수 있어야 한다. 내적 준거에 따른 비판과 외적 준거에 따른 비판을 합하여 비판적 사고능력의 영역이 구성된다. 여기에, 귀납과 연역, 유비 같은 사유 방식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같은 인식 오류 전반을 다루는 논리적 사고능력의 영역으로 수능 언어영역이 이루어진다. 이 모든 영역에는 문제를 내고 문제를 푸는 일정한 공식과 키가 있었다.  


언어영역은 대체로 지문을 동반하는데 때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규모가 커질 경우 여러 번 읽을 시간이 없다. 그래서 한 번만 읽으면서도 단락과 글 전체의 핵심과 흐름을 온전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걸 가능케 하는 독법이 내가 내린 언어영역 정의의 뒷부분이다. 지문에서 인물, 사건, 배경을 통해 주제를 찾아내기. 인물, 사건, 배경은 소설 구성의 삼 요소이다. 그런데 실은 모든 글이 그 셋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도 그렇고, 수필도 그렇고, 설명문도 그렇고 논설문도 그렇다. 인물은 사람일 수도 있고 동물일 수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추상적인 개념일 수도 있다. 이러한 인물들 간의 관계 및 관계 변화가 사건이다. 그리고 사건이 이루어지고 있는 때와 곳이 배경이다. 모든 글은 이 세 가지로 파악이 가능한데 그렇게 해석하며 단락별로, 나중에는 글 전체로 정리하면 단 한 번을 읽어도 지문 전체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언어영역의 영역별 공식을 파악하고 지문 읽기 훈련을 하는 동시에 필요한 것은 효과적인 문제 풀기이다. 흔히 문제를 순서대로 푸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문제 푸는 데에도 순서가 있다. 가령, 지문에 딸린 문제를 푸는 경우, 먼저 문제 자체를 읽으면서, 지문을 읽지 않아도 풀 수 있는 것, 지문의 부분만 읽어도 풀 수 있는 것, 지문을 다 읽어야 해결 가능한 것으로 나누어 단순한 것부터 풀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어려운 문제는 고민하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일단 놔두고 다른 쉬운 문제들을 먼저 공략한 후, 시험 종료까지 가장 어려운 문제를 붙들고 있다가 끝나기 전 답을 정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가르쳤던 이야기이다. 언어영역에도 공식이 있고, 글을 읽는 데도 방법이 있으며, 문제 푸는 것에도 순서가 있다. 벌써 이십 년 가까이 지났기에 세부적인 것은 거의 다 잊었지만 그 뼈대는 신통하게 아직 남아 있다. 가르칠 내용을 확실히 알고 학생들로 하여금 그것을 효과적으로 내재화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과정에서 학생에 대한 이해와 인내도 필수였다. 고 삼 되도록 오로지 컴퓨터 게임만 붙들고 있던 어떤 학생은 당시 수능 언어영역 백이십 점 만점에 삼십 점을 받고 있었는데 내가 가르친 후 사 개월 만에 백십 점이 되었다. 성적이 오르니 태도가 바뀌고 인성도 달라졌다. 교육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직접 체험한 건 바로 그때였다.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했던 강의는 나중에 대학에서 가르칠 때에도 좋은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공부를 제대로 한 적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은 고등학교 아이들을 데려다 그렇게 가르쳤더니 대학생들은 훨씬 수월하게 여겨졌다. 물론 대학과 대학원에서 가르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을 요구했다. 그러나 핵심은 어디 가지 않았다.


가르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방법은 분명히 있다. 공식은 수학에만 있는 게 아니라 국어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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