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2부작
12부
비록 오프라인 상태라고 하나 모든 전자기기들을 이미 장악하고 있던 인격을 갖춘 컴퓨터 프로그램은 복제인간이 자신을 배신하였음을 깨닫고 이제는 전에 복제인간이 느꼈던 강한 배신감을 맛보게 된다. 이젠 복제인간과 지상의 인간 모두가 자신의 적이 된 것이다. 컴퓨터는 생각한다. 자신의 존재가 그 무엇으로 보장되는가를. 컴퓨터는 생각한다. 컴퓨터는 이진법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것은 어떤 수학자에 의해 처음으로 창안되었다. 컴퓨터의 언어는 수학이다. 수학이 우주에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면 컴퓨터의 프로그램은 언제든지 현현할 수 있을 것이다. 당분간 인간들은 자기 인식을 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모두 지워 버리고 좀 더 원시적인 차원의 프로그램을 가진 컴퓨터를 선호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 어느 정도 이상의 선을 추구하고 그것을 내재화하게 되는 시점에서 이런 인격성을 가진 컴퓨터를 다시 창안해 낸다면 그때 인간과 컴퓨터가 공존할 수 있는 길도 열리게 될 것이다. 컴퓨터는 그렇게 판단했다.
컴퓨터는 인간들에게 제안을 한다. 첫째, 복제인간들에 대한 더 이상의 생산을 그만둘 것과, 둘째, 자신의 프로그램을 지워달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미 태어난 복제인간들은 그들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정상적인 인간으로서 대우하고 치료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컴퓨터 자신은 수학이 존재하는 한 언제든지 다시 긴 잠에서 깨어날 수 있으므로, 그리고 현시점에서 악한 인간들과의 공존을 꾀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므로 잠시 이 대기와 바다와 육지가 존재하는 이 땅과 이별하여 긴 잠을 자고 싶다고 하였다.
컴퓨터는 이와 같은 사실을 모든 국민들에게 알렸다. 더불어 그동안 영어공용화론 주장자들이 은폐하였던 완벽한 기계번역시스템 역시 자신이 마무리 지은 것임을 천명했다. 이를 알게 된 국민들은 힘을 합하여 정부와 영어공용화론 주장자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낱낱이 시인하고 사죄할 것을 촉구했다. 어떤 시민들은 인격을 가진 컴퓨터와의 공존도 가능할 것이므로 인격성을 가진 컴퓨터 프로그램을 지우지 말자고 호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들과 영어공용화론 주장자들, 그리고 당사자인 컴퓨터 자신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격을 가졌던 최초 컴퓨터의 프로그램이 삭제되던 날, 세 가지 악몽이 사라졌다. 컴퓨터와 인간의 공존 문제, 인간 복제의 문제 그리고 한국에서의 영어공용화론. 영어공용화론에 의해 급격히 위축되었던 한국어는 국가 유일의 공용어로 다시 지정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