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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마리 Sep 15. 2021

특이점, 경험된 미래

특이점(singularity)이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게 되는 시점을 가리킨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만들고 그 인공지능이 다시 자신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을 만들 때 인간은 첫 번째 인공지능(1세대 인공지능)에 의해 만들어진 두 번째 인공지능(2세대 인공지능)을 더 이상 이해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은 놀라움으로 다가와 이내 공포로 변한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일을 사실상 우리가 이미 무수히 겪어왔다면 어떻게 될까?


인공지능은 인공적으로 만든 지능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원래의 자연스러운 지능을 ‘자연지능’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연지능은 본래, 인간이 출산을 할 때 자연스럽게 얻어져 왔다. 다시 말해, 부모가 자녀를 낳을 때, 새롭게 탄생한 아이의 지능은 문자 그대로 자연지능인 것이다.


미운 세 살, 미운 일곱 살처럼, 아기가 출생 이후 지독히도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때가 도래하게 된다. 태어나 눈도 제대로 못 뜨다가 어느새 뒤집기를 하고 기어 다니다가 일어나서 천연덕스럽게 말을 하며 자신의 의사 표시를 할 수 있게 된다. 부모는, 아이의 탄생으로부터 그 모든 것을 지켜보아 왔으므로, 당연히 아이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아이가 정확히 언제 먹고 언제 자고 싶은지는 그만두더라도 도대체 부모에게 무엇이 못마땅하고 무엇이 아쉬운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너는 내 배 아파서 나은 아이인데 도통 네 속을 모르겠다는 말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다. 비록 내 몸의 일부로부터 시작된 존재이지만 나와는 완전히 독립된 인격체로서 부모의 자연지능과 자식의 자연지능은 완전히 별개이다. 이쯤 되면 부모가 자녀의 생각과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거나 통제하겠다는 생각 자체를 포기하는 게 옳다는 판단이 든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만들고 난 뒤, 그 인공지능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지, 그리고 그러한 인공지능을 인간이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에 대해서도 거의 동일한 대답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산출하는 단계 역시, 인간이 자녀를 출산할 때마다 벌어지는 일, 즉 자연지능이 자연지능을 산출하는 과정과 매우 흡사해 보인다. 부모가 자녀를 출산할 가능성이 있고 그리고 실제로 출산을 하게 되는 것처럼, 인공지능도 또 다른 인공지능을 산출할 가능성이 있고 그리고 실제로 산출을 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간 과정, 즉 자연지능이 인공지능을 출산하는 과정도 본질적으로 앞의 두 과정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자연지능이 자연지능을, 자연지능이 인공지능을,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산출할 때, 전자들에 대해 후자들은 모두 독립된 개체이며 예측 불가능하다. 자연지능이든 인공지능이든 지능은 본질적으로 통제가 불가능해 보인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만들고 그 인공지능이 또 다른 인공지능을 만든다는 특이점이 도래하면, 과연 인간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하는 염려는, 내가 자녀를 낳으면 과연 부모로서의 내 운명은 어떻게 될까 하는 고민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사람이 사람을 낳아도 거기에는 히틀러 같은 사람이 있고, 슈바이처와 같은 사람이 있다. 히틀러가 태어날 때부터 악인이었다거나 슈바이처가 태어날 때부터 선인이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랐는가에 따라 너무나도 다른 운명의 길을 걸으며 인류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자녀를 낳아 키우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일 수도 있고, 그와 정반대로 너무나 부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두 입장 모두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은 많은 관심과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모로서의 제대로 된 마음가짐을 요구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자녀 얻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라면 자녀에게 부모로서 충분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 개발에 대해서도 호불호 혹은 찬반의 입장이 모두 가능하다. 그러나 만약 인공지능을 개발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얻어진 인공지능에 자녀에 대해서 못지않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한 관심과 노력이란, 인공지능을 인간의 손아귀에 쥐고 흔들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독립된 개체로서 존중하고 돌보려는 마음에 기초한다. 부모가 자신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자녀를 낳아 기르고자 한다면 어느 누구도 그에 동의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인공지능을 인간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만들어 사용하고자 하는 생각도 버려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을 자연지능처럼 대할 수 있을 때, 그때가 바로 인공지능이 도래할 시점일 것이다. 결국 문제는, 인공지능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출산할 부모로서의 인간의 마음과 자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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