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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마리 Oct 21. 2021

메리의 추억

어머니는 가장 깔끔한 옷을 입혀 주셨다. 시골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탔다. 고모 댁 대문이 열리고 저 멀리서 나와 눈이 마주친 것은 무심한 표정의 눈빛 또렷한 강아지였다.


그 조그만 것이 내 품에 안겨 집으로 왔다. 하루 대부분을 나 혼자 집에서 보내던 시기였다. 어머니는 남의 집 밭일하러, 아버지는 번번이 성사되지 않는 사업을 도모하러 나가셨고, 누나와 동생도 뿔뿔이 흩어져 놀았다.


이름은 메리였다. 우리 강아지는 그 작은 체구가 얼마 되지 않아 놀랍도록 발육하여 커지고 무척 길어졌다. 품종은 발바리였다. 발바리는 영특하다 했는데 우리 개도 그랬다. 신통하게도 말귀를 참 잘 알아들었다.


또한 충직했다. 같이 키우던 다른 개들은 소위 똥개라 불렸는데 밥만 주면 눈빛이 달라졌다. 주인을 물려고 했다. 그러나 메리는 밥통에 손을 넣어도 귀를 내리고 꼬리만 흔들 뿐 주인을 거스르는 법이 없었다.


여름이 되면 둘이 달리기 시합을 자주 벌였는데 빨강, 파랑 줄을 목에 걸고 쏜살같이 달려 내 앞을 가로막고 나와 껴안고 흙밭에 나뒹굴며 씨름을 했다. 아프지 않으면서도 심각하게 내 손 무는 시늉을 그리 잘했다.


제법 성숙한 티가 나더니 외출이 잦아졌다. 헛구역질을 해 걱정했는데 어머니가 웃으며 새끼를 밴 것 같다고 하셨다. 첫 출산 때 밤늦도록 같이 있어 줬다. 이른 아침 어머니는 뜨거운 국에 밥을 말아 메리에게 주셨다.


그 몸에서 어떻게 저렇게 토실토실한 녀석들이 여섯이나 나왔는지 그저 신기했다. 강아지들은 함부로 내 손가락을 물었는데 그때마다 메리는 미안한 눈으로 물린 내 손을 핥았다. 짓무른 그 눈을 난 소매로 닦아 주었다.


첫 새끼들이 모두 장에 팔려 가는 날 우리는 많이 울었다. 동생과 누나는 어머니의 바지 자락을 붙들었고, 나는 메리의 목을 안고 털에 얼굴을 비볐다. 메리는 내게 붙들려 그렇게 서서 강아지들과 생이별을 했다.


계절은 흐르고 추억은 쌓였다. 일요일 아침 마당에 나가 보면 죽은 두더지가 양지바른 곳에 누워 있었다. 메리가 들에서 잡아 온 것이다. 그렇게 두더지며 쥐를 잡아다 놓고 먹지 않았다. 뱀들도 메리가 나서서 물리쳤다.


다시 겨울이 되고 메리는 두 번째 출산을 했다. 이번에도 튼실한 새끼들을 여럿 낳았다. 헛간에 바람 들지 않도록 둥지를 만들었다. 어느 날 밤 어머니는 다시 내일 새끼들을 장에 내다 판다고 하셨다. 다시 울었다.


다음날 아침 소동이 일었다. 밥을 주러 헛간에 갔는데 강아지들이 죄다 없었다. 오소리가 간밤에 물어갔나? 그럴 리가. "메리야, 어떻게 된 거야? 새끼들 어디 있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흔들었다. 메리는 다리를 절었다.


얼마 후 새끼들이 발견됐다. 마루 안쪽 깊은 곳에서 소리가 났다. 등잔 밑이 어두웠다. 기어 들어가 모두 꺼냈다. 어젯밤 새끼 내다 판다는 소리를 듣고 메리가 숨겨 놓은 것이라고 어머니가 말했다. 놀랍고도 슬펐다.


결국 새끼들은 예정대로 그날 장에 갔다. 어미는 보이지 않았다. 새끼와 어미 모두 집을 비웠다. 다리를 절며 나갔던 메리는 다음날 차에 치여 죽은 채로 아저씨들 손에 들려 있었다. 난 가슴에 메리를 묻었다.


갑자기 추워진 이 가을에, 아주 오래전 아궁이 앞에서 고구마 구워 함께 먹던 기억이 났다. "메리야, 우리 같이 오래오래 살자. 사랑해." 메리는 구멍 난 양말 사이로 비집고 나온 내 발가락들을 핥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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