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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마리 Oct 22. 2021

형식의미론의 아픔

이룰 수 없는 꿈에 대한 도전

언어는 기호이며 기호는 형식과 내용을 지닌다. 따라서 언어도 형식과 내용을 가지는데 언어 형식을 음성이라 하고 언어 내용을 의미라 한다. 언어는 음성과 의미의 결합인 것이다.


언어 형식, 다시 말해 음성에는 가장 작은 음운과 그것이 모여 만들어지는 음절, 뜻이 개입되기 시작하는 형태소, 그것이 모여 만들어지는 단어, 단어가 모여 만들어지는 문장, 문장에 비언어적인 요소가 개입된 발화, 그것이 모여 만들어진 담화가 있다.


언어 내용, 다시 말해 의미는 단어 차원의 의미와 문장 차원의 의미, 담화 차원의 의미로 나뉜다.


사람들은 음성과 의미를 동시에 다루기가 힘에 부쳐 이처럼 형식과 내용을 가르고 그것을 다시 작은 것부터 큰 것으로 여러 가지 언어단위로 구획하여 연구해 왔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형식의미론을 들고 나왔다.


형식의미론. 그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아니, 모순을 지닌다. 언어의 형식과 내용에 대해 뭔가 좀 아는 사람이 보면 당장, 어쩌려고 저래 하며 손사래를 칠 만하다. 왜 그런가?


형식의미론은 의미론 앞에 형식을 더한 말이다. 형식은 언어 형식의 그 형식이다. 의미는 언어 내용이다. 형식의미론은 의미를, 내용을 형식화하고자 한다. 의미의 형식화, 내용의 형식화. 이건 불가능한 꿈이다. 형식은 형식이고 내용은 내용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처럼. 그런데 내용을 형식처럼 그려내고자 하는 것이다.


형식은 음성언어의 경우 귀로 들린다. 문자언어의 경우 눈에 보인다. 그러나 의미는, 내용은 귀로 들을 수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불가사의한 것이다. 그래서 미국 기술주의 언어학에서는 의미를 다루는 것은 철학이나 심리학에서 할 일이지 과학으로서의 언어학에서 할 일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다가 몬태규라는 사람이 의미를 눈에 보이도록, 손에 잡히도록 만들어 보겠다고 나섰다. 형식의미론을 몬태규의미론이라고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려는 이가 바로 몬태규였다.


그가 강단에 섰을 때 학생들은, 청중들은 극도로 당황해하며 미움과 분노에 가득 찼다고 한다. 너무 어려워서! 누군가 참지 못하고 총을 쐈다. 그대로 고꾸라진 그를 심지어 발로 차기도 했다고 한다. 믿기지 않는 얘기다.


이런 얘기를 학부 1학년 언어학개론 수업 때 몬태규 제자였던 한국인 교수님께 직접 들었다. 충격이었다. 2015년 연구년 때 케임브리지대 언어학과 교수에게서도 들었다. 더 끔찍한 버전이었다. 더 큰 충격이었다.


학문의 전당에서, 학문을 한다는 이들에게 몬태규는, 형식의미론은 그렇게 저격당했다. 그게 현실이다. 그렇게 현실은 야만적이. 총기를 휴대하지 못하는 곳이었다면 사람들은 낫이나 삽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건 그 자체로 어렵다. 그 꿈을 실현하는 건 더 어렵다. 사람들이, 그 꿈을 더 잘 아는 사람들이 더욱 격렬히 분노해서 더 어렵다. 그러나 밀고 나가야 한다. 그 모든 몬태규들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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