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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마리 Oct 23. 2021

벗어나 균형 잡기

재즈처럼

사람은 타인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벗어나고 싶어 한다. 


흔히 충고하길,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라고, 그래서 자신이 되어 보라고 권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나 자신이 되어 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늘 나인 채로 있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험한 놀이기구를 타거나 암벽을 등반하면서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자체에 극도로 주의를 집중한 채 모든 것을 잊고 나마저도 잊고 놀이기구 자체가, 암벽 자체가 되어 버린다. 


내가 음식을 만들 때, 특히 칼을 쥐고 있거나 뜨거운 물이 펄펄 끓고 있을 때 다른 걸 의식할 겨를이 없다. 토끼풀 베다가 동생의 복숭아뼈를 찍은 고통, 뜨거운 콩나물국에 발목을 심하게 데인 기억으로 인해서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을 땐 음식을 하면서 모든 것을 잊는다. 심지어 나 자신마저도. 물아일체가 된다. 요리와 내가 하나가 된다. 내가 요리이고 요리가 나이다. 칼과 끓는 물 사이에서 위험한 곡예를 벌인다.  


나 자신을 잊는 방법 중 또 하나는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나는 극 중 인물을 따라가다 아예 그 인물이 되어 버린다. 그의 눈으로 극 중 세상을, 때로 진짜 세상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끼며 다른 이들을, 자기 자신을 찾는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갑갑함을 느끼며 사람들로부터,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려 몸부림친다. 같이 있으려고, 벗어나려고 한다. 인력이, 척력이 작용한다.


편식을 하면 몸에 좋지 않듯이 사람들과 함께만 있는 것이나 나 자신과만 줄곧 대면하는 것이나 모두 좋지 않다. 사람들로부터 계속 벗어나 있는 것도, 나로부터 계속 유리되어 있는 것도 모두 좋지 않다. 


자연스럽게 표정이 바뀌고 분위기가 바뀌듯 그렇게 그때그때마다 네 가지 선택항 중 어느 하나가 될 줄 알아야 한다. 정해진 선율의 안팎을 자유로이 오가며 멋지게 곡을 완주하는 재즈처럼, 그렇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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