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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마리 Nov 20. 2021

쉬운 말

쉬운 말은 쉽지 않다

아내와 만나 짧은 시간 안에 인생을 함께 걸어가기로 약속하고 드디어 오월에 힘찬 출발을 했다. 모든 것이 넘쳤지만 단 하나 언어의 문제가 내 마음 한 구석을 어둡게 했다. 예나 지금이나 언어는 내 삶의 거의 다를 차지할 만큼 지대한 것이기에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그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안 되었다.


내가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아내는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영국 유학 시절 나갔던 한인 교회 젊은 목사님과 귀국 후에도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그러던 중에 한 사람을 소개해 주셨다. 그 사람이 지금의 아내였다. 당시 아내는 몇 년 차 한국 체류 외국인이었는데 영국 정부 산하 기관에서 일하고 있었다.


비록 한국에서 살았지만 직장 동료도 친구도 모두 영국인이나 영어를 말하는 한국인들뿐이었다. 영국에 빨리 뿌리내려야 한다는 초기 이민 사회의 중압감은 어린 아내에게도 철저한 영국인이 되도록 종용했다. 부모님의 간절한 노력에도 아내와 형제들의 한국어는 줄어들었고 그들은 성공적인 영국 시민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결혼 전후에는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쓰다가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기울게 되었다. 내 영어보다 아내의 한국어가 그나마 나았다. 또 내 알량한 자존심이 한국어 쓰기를 고집하기도 했다. 아내 앞에서 어눌하게 보이기 싫었던 것이다. 둘 사이에서는 사랑의 언어만으로도 충분했지만 구체적인 삶 속에서는 현실 언어도 필요했다.


지금도 한국어 뉴스는 아내에게 정말 힘들다. 공문서나 유치원 서류 작성도 매우 벅차다. 뉴스에서 나오는 말은 일상 언어와는 격차가 크다. 솔직히 공문서 언어는 쓸데없이 난해하다. 국민의 이해보다는 국가의 권위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아내 앞에서 나라도 쉬운 단어, 쉬운 문장을 쓸 수밖에 없다.


나는 한국어를 참 잘하고 싶었다. 나 태어나기 전에 국어 교사셨던 아버지의 영향, 중학교 일 학년 때 운명처럼 만나 따르던 국어 선생님의 그늘이 매우 컸다. 품격 있는 어휘나 구문, 고상한 글귀나 속담을 어렸을 때부터 즐겨 썼다. 대학원 때 국어학 교수님이 나를 보시고 너 참 한국어 잘한다는 말씀까지 하셨을 정도였다.


그러던 내가 아내를 만나 쉽고 짧게 이야기하려니 참으로 곤란했다. 기본적인 어휘를 매우 기초적인 구문에 담아 전달하고자 하니 내 생각마저도 그렇게 쪼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아내랑 이야기할 때는 그렇게, 다른 사람이랑 얘기할 때는 다르게 코드를 계속 바꾸어야 하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결국, 쉽게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한국어를 아내에 맞추기로 한 것이다. 나를 보고 나를 위해 나와 함께 한국에 살기로 한 그이를 위해 그게 내가 할 일이었다. 학생처럼 아내에게 한국어 교육을 시킬 노릇도 아니었고 집에서만큼은 내가 영어로만 말하려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어쨌든 여기는 한국이니 한국어를 해야 했다.


집에서 쉽게 말하다 보니 직장에서도 강의에서도 책에서도 그렇게 하게 되었다. 어려운 개념어나 추상어는 가능한 한 쉬운 일상어나 구체어로 바뀌게 되었고 부득이 쓸 수밖에 없는 학술 용어도 가급적 풀어서 쓰게 되었다. 학과 교수님들과의 대화에서는 큰 불편을 못 느꼈으나 강의나 저작 활동에서는 큰 도전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쉬운 말로 대화하고 강의하고 글을 쓰니 말과 글의 뜻이 더 잘 드러나고 전달되었다. 간명해진 것이다. 일상의 어휘나 구문이 나의 강의와 학술 논저에서 쉽고 간명한 문체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내게서만큼은 혁명적인 변화였다. 내 강의와 책을 유학생들도 쉽게 이해하고 좋아한다.


전에는 멋진 언어 표현에 매혹되어 강의하고 글을 썼다면, 이젠 언어 너머의 생각 자체를 어떻게  드러낼  있을까 고민하며 가르치고 연구한다. 쉽게 말을 하자 표현은 투명해지고 내용은  깊어졌다. 힘겨운 결단이었지만 놀라운 결과였다. 아내로부터 유학생  한국인 교수, 학생 들과 쉬운 말로 소통하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 또 한 번의 도전을 겪었다. 내 말은 더 쉬워져야 했다. 어디까지 쉬워지나 보자 하고 스스로 내기를 하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다. 아니야, 아직도 어려워. 그런 말을 아이가 듣고 이해하겠어? 아니야 더 쉬워야 해. 때로 아이가 점검이나 우주 최강 같은 말을 쓰면 나도, 아내도 놀란다. 저렇게 어려운 말을 쓰다니!

 

아내를 만나 쉬운 말을 써야 했다. 태어난 아이를 만나 더 쉬운 말을 해야 했다. 그게 내 말을 이끌고, 내 글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남이 쉽게 듣고 읽을 수 있는 말이 되도록 노력한다. 그런 말은 당장 듣고 이해하기도 편하고 번역되거나 통역되기도 좋다. 내 생각은 한국어를 넘어 이제 세계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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