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마리 Nov 14. 2021

라디오

어릴 때 티브이는 금지된 즐거움이었다. 누워서 티브이 보는 걸 정말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기회를 거의 주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자리를 비우셨을 때는 티브이가 나오지 않는 시간대였다. 만화영화가 방영되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뉴스가 나왔다. 뉴스가 싫었다. 어른들은 티브이를 바보상자라 부르면서도 끼고 살았다.


중학교에 올라가고 살림이 좀 펴자 한 방에서 같이 자던 식구들이 제 방을 찾아 흩어졌다. 누나 방이 생겼고 나와 동생이 함께 쓰는 방이 생겼다. 방에는 책상들이 주어졌고 책꽂이도 놓였다. 스탠드라는 걸 처음 켜고 저녁 어스름에 책상에 앉아 공부할 수 있었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갑자기 라디오가 그렇게 사고 싶었다.


라디오 틀어 놓고 공부하면 더 잘 될 것 같았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정말 내겐 그랬다. 무조건 사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살림이 좀 펴졌다 해도 사치는 금물이었다. 더욱이 공부하는 애가 라디오는 무슨. 어림 반 푼어치도 없었다. 중학교 이 학년짜리가 방바닥을 뒹굴며 떼썼다. 처절했다.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달 동안이나 조른 나도 대단하고 그걸 버틴 어머니도 대단하셨다. 항복을 받아냈다. 어머니를 대동하고 전파사로 향했다. 손바닥 만한 라디오와 그 밑에 달아놓은 두세 배 정도 두께의 건전지가 인상적이었다. 에프엠, 에이엠 모두 나오는 거였다. 기뻤다. 이거 사 주면 공부 정말 잘하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은 잘 지켜졌다.


학교 다녀와 오후 세네 시부터 밤 열 시까지 깨어 있을 때는 책상 위의 라디오를 틀었다. 당시 라디오를 통해 거의 전 과목을 매달 한 권의 문제집으로 풀어주는 채널이 있었다. 핑계가 좋았고 결과도 좋았다. 시골에서 학원은 꿈도 꾸지 못했는데 서울의 유명 현직 교사들이 과목마다 핵심 문제를 풀어 주었다. 소중했다.


라디오 방송 과외는 저녁에 한 시간 정도. 그 밖에는 모두 공부랑은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뉴스와 광고, 음악 소개, 연속극이 주를 이뤘다. 라디오 연속극이 백미였다. 나 같은 중학생이 아니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것들이라 수위가 낮지 않았다. 물론 당시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이라 풍속을 해치는 내용은 방송 불가였다.


사시사철 다양한 소재와 배경, 인물들이 중학생 까까머리 소년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했다. 그중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다 큰 남녀 한 쌍이 방 하나를 커튼으로 나누어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는데 시골서 상경하여 방세를 아끼느라 애인들이 동거하는 것처럼 꾸미고 지냈던 것이다. 파격적인 설정이었다.


소재도 주제도 내 마음도 아슬아슬하게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서울살이의 애환을 겪으며 같이 울고 웃으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벌써 턱을 괴고 입에 함박웃음 짓는 나를 스스로 발견하기 일쑤였다. 불심검문처럼 불쑥 들어와 공부 잘 하고 있냐 하시는 아버지에게 들키면 어쩌나 하고 마음 졸인 때도 많았다. 끊을 수 없었다.


겨울 방학 때 그 연속극이 끝나던 날 친한 아저씨, 아줌마랑 헤어지는 것 같아 여간 서운한 게 아니었다. 역을 맡은 성우라도 찾아가 만나고픈 심정이었다. 하루에도 채널을 바꾸어 가며 몇 개씩 연속극을 접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 이야기들은 모두 내게 인생의 스승들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인생을 조금씩 배웠다.


타지로 떠나 보낸 고등학교 시절에 낭만이란 없었다. 지독한 향수와 입시에 대한 중압감. 모든 걸 포기하고 수도승처럼 학교와 집을 오갈 뿐이었다. 그때는 티브이도 라디오도 내 삶에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었다. 대학 진학 이후 아주 오랜동안 라디오를 잊고 살았다. 인생의 동반자였던 라디오는 그렇게 내게서 멀어져 갔다.


아이가 태어나고 조리원에서 집으로 데려와 키우면서 그 옆에서 몇 시간이고 무료하게 있어야 되는 때가 많아지자 다시 라디오를 찾게 되었다. 주로 클래식 에프엠이었다. 이젠 많은 이야기보다 내 마음을 위로해 줄 조용한 음악들이 필요했다. 특히 지친 정신을 깨우는 아침 라디오 방송은 내 영혼의 친구인 것만 같았다.


김미숙 님이 반가웠다. 대장금이나 그 밖의 많은 티브이 드라마 속의 주연이나 빛나는 조연을 맡아 열연했던 그분이 아침 아홉 시부터 열한 시까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음악과 사연, 일정한 장르들로 구성된 내레이션 모두 나를 웃고 울게 했다. 감동을 잘하는 그분은 사연 읽다가 울컥해 방송 사고도 몇 번이나 내었다.


나라도 그랬을 거라며 마음으로 그분을 위로했다. 평소에 그분에게 이미 많은 위로의 빚을 지고 있었기에 기꺼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다른 분이 나와 진행한다. 오늘은 일요일. 드디어 내일 아침이면 다시 그분을 만난다. 륜과 함께 소녀 같은 마음씨를 가진 그분이 지금부터 벌써 기다려진다.


작가의 이전글 사는 게 사는 거란 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