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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마리 Nov 10. 2021

사는 게 사는 거란 걸

정의하지 않고 정의하는 것을 정의할 수 있을까

학자들은 삶이 무엇인지 정의하려 한다

나도 내 분야에서 그러려고 애쓴다

그런데

문득문득 그게 허탈해진다


일상에서는 이렇게 배운다

나 하는 거 보고 따라 해

그걸 제대로 보고 따라 하거나

대개는 어깨너머 보고 따라 한다


어깨너머 보고 따라 해도 꽤 한다

정의해서 배우면 시험에나 나오는 걸 잘 푼다

어깨너머 배우면 그걸로 밥 먹고 살 수 있다

정의하려는 건 매력적이지만 실제적이진 못하다


그걸 입증하고 있는 게 인공지능 연구다

칠십 년대만 해도 인공지능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딥러닝이 시작되고 갑자기 현실로 다가왔다

딥러닝은 컴퓨터가 어깨너머로 배우는 거다


그렇게 현실을 어깨너머로 배우다 보니

미리 프로그래밍해서, 미리 정의해서 가르치는 것과는

상대도 되지 않게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정의해서는 안 되고 어깨너머로 보고서는 가능해졌다


정의해서 강아지를 가르치면

정의한 대로만 컴퓨터가 알아본다

강아지가 누우면 그때부터 못 알아본다

누운 강아지는 서 있는 강아지가 아니다


딥러닝을 통해 컴퓨터가 어깨너머로 강아지를 배우면

강아지가 서 있거나

누워 있거나

똑같은 강아지란 걸, 그 당연한 걸 정말로 알게 된다


사는 것도 정의해서 되는 게 아닌 것 같다

나 같은 학자들은 그걸 그렇게 정의하려 하는데

어머니 같은 분들은 그걸 그냥 살아 내시며 보여주신다

그렇게 살면 그냥 될 건데 뭐 그리 애쓰며 정의하려는지


무언가 정의하는 글은 정말 매력적이다

그러나 더 매력적인 글은

어깨너머로 뭔가 그냥 보여주는 글이다

그걸로 삶도 그냥 살아가는 거란 걸 느끼게 한다


과학철학에서도 귀납주의, 반증주의, 합리주의, 상대주의

무슨 주의 해 대며 연구 방법론을 규정하려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진행되다가 파이어아벤트에 와서는  

그냥 아무렇게나 연구하는 거라는 결론을 얻는다


이른바 아나키즘적 방법론

너무 어렵다

쉽게 말해

어깨너머로 그냥 보고 배우고 깨달으라는 말이다


어머니가 보여주는 삶이 진짜 답인 것 같다

삶은 정의한다고 정의되는 게 아니다

삶 속으로 들어가 그냥 살아내는 것이다

살아내다 보면 사는 게 뭐란 걸 알게 되는 것이다


정의하지 않는 삶은 정의될 수 없으므로

객관적으로 집단적으로 가르쳐질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어깨너머로만 가까이서 배울 수 있다

그래서 더 작은 사회, 더 작은 집단, 더 가까운 대면이 필요하다


산다는 것은

그냥 산다는 것이다

그걸 정의하지 않고 정의하는 것을 혹시 정의해 볼 방법이 없나

다시 궁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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