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마리 Nov 27. 2021

Ich Liebe Dich

프러포즈

전공이 같은 사람들의 공부 모임이 있었다. 매달 두 번째 주 토요일 오후 한 시부터 저녁 일곱 시까지. 발표는 두 사람. 한 사람에 세 시간씩. 발표와 질문이 동시에. 그렇게 여섯 시간을 보낸 입에 시원한 생맥주를 축였고 돈이 떨어지면 가슴에 소주를 부었다. 다들 같은 주머니 사정. 누군가 전임이 되면 각오를 해야 했다.


그날  사람을 데려갔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소중한 사람은 그냥 그런 줄로만 알았다. 새해  모임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 한국어 발표문이 끝나고,  외국 유학길에 오를 이의 영어 발표문이 이어지고 있었다. 커피가 끓고 사람들은 목도리를 풀었다.


사이좋게 발표문을 같이 보다가 그 길던 시간이 다 끝나고 저녁들을 먹으러 갔다. 가볍게 소개를 했다. 누군가는 저 누군가가 도대체 누구인지도 잘 모르면서 그냥 어, 예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무엇을 먹는지도 모르게 나는 준비된 일정을 떨리는 마음으로 은근히 진행하고 있었다.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서 꽃집에 들렀다.


가볍게 저녁을 먹고 술자리로 이동을 했다. 바닥에 의자를 놓고 긴 탁자에 둘러앉아 마치 큰 포장마차에서 회의를 하듯 술과 안주를 시켰다. 나는 소중한 사람에게 잠깐 양해를 구하고 일어섰다. 입구로 나와 선배 중 하나에게 준비되었냐고 물었다. 얼마 전 대학로에서 개인 공연을 마친 형은 독일어 원곡을 즉석에서 준비했다.


곧바로 이동하여 가게에 들러 단아한 꽃다발을 하나 들고 왔다. 자리는 벌써 아까 시작되어 내 소중한 사람은 낯선 이들과 어색하게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외투를 벗고 마음을 놓고 술잔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입구에 그대로 서 있었고 선배는 테이블로 걸어가며 노랠 불렀다. 이히 리베 디히...


나의 소중한 사람과 친구들은 함께 놀랐다. 형은 걸어가며 그대를 사랑해 라는 노래를 독일어 성악으로 부르며 나의 소중한 사람 뒤에 섰다. 테이블은 작은 공연장이 되었다. 나의 소중한 사람은 어리둥절해하다가 고운 얼굴이 곧 붉게 물들었다. 노래 속으로 나는 꽃다발을 들고 들어가 나의 소중한 사람에게 그렇게 물었다.


나의 사랑을 받아 주신다면

제 입술에 키스를 해 주세요


무릎을 꿇었다. 친구들은 박수를 치며 소리를, 비명을 질렀다. 내 소중한 사람은 꽃을 받아 들고 나를 일으켜 세우고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사랑의 노래가 울려 퍼지며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 앞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그렇게 입맞춤을 한동안 이어나갔다. 노래가 끝나 가며 둘의 인생이 새로이 시작되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번역: 다른 거 다 필요 없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