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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마리 Mar 17. 2022

기적을 믿지 않는 나에게

간증

나는 기적을 잘 믿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가장 기적을 믿지 못할 순간에 기적을, 그것도 여러 번 보여주셨다. 기적을 통해 내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게 하셨다. 기적이 가능하기 위해 우선 나는 삶의 나락으로 떨어져야만 했다.


대학원 석사 입학시험에서 떨어진 것도 기적이다. 사람들은 내가 대학원 입학시험에 떨어지면 붙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라고들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나 떨어졌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로 떨어졌다. 다른 전공에서 내가 지원한 전공의 티오를 그때 모두 가져가 버렸다. 누군가의 이기심으로 벌어진 일. 곧장 낙향했다. 당시까지 시험에서는 한 번도 떨어져 본 일이 없던 나는 일생일대의 시험에서 떨어져 크게 낙심했고 앞날의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한 학기 동안의 그런 삶을 통해서 나는 내적인 성숙을 경험하게 되었다. 떨어질 수 없었던 시험에서 떨어진 것은 학문에 대한 내 신념을 담금질했다. 난 내가 정말 학문의 길을 걷기를 원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낙방으로 인해 나는 다시 새롭게 학문의 길에서 설 수 있었다.


박사 입학시험에 합격한 것도 기적이다. 당시 내 삶의 모든 것은 오로지 대학원 박사 입학시험 합격에 달려 있었다. 합격하게 되면 내가 계획했던 모든 것이 이가 맞아떨어지고, 낙방하면 내 인생길의 모든 것이 뒤틀어지는 판국이었다. 극과 극의 대치 상황. 그러나 당시 대학원 박사 입학시험 준비에 시간을 쓸 수가 없었다. 소위 먹고사는 일에 바빠 정작 가장 중요한 것에 필요한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당시 박사 입학시험은 전공 시험, 제1외국어(영어) 시험, 제2외국어(독일어) 시험의 총 3과목이었다. 당장 전공 시험 과목 준비부터 문제였다. 4단 책꽂이를 빼곡히 채운 전공 서적들을 모두 읽고 요약하고 암송해야 했으나 시험 전날까지 그러지를 못했다. 불가항력. 나는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천천히 공부하는 스타일이어서 나올 만한 문제를 찍어 공부한 적이 없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책장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재들을 열 권쯤 골라 목차를 보고 가장 중요하다 싶은 내용을 발췌하여 얼른 읽고 요약하기 시작했다. 그때가 시험 보기 8시간 전이었다. 그렇게 빠르게 정리를 끝내고 나니 시험 시작을 불과 20여 분 앞두고 있었다. 요약하고 정리한 내용을 다시 볼 여유도 없이 세수하고 밥도 먹지 않고 밤을 꼬박 새운 채 학교 시험장으로 달려갔다. 막 도착하여 숨을 고르던 때에 같이 시험에 응시한 선배들이 유력한 시험 문제들이라며 보여주었는데 내가 준비한 것은 그 안에 하나도 없었다. 놀라웠고 비참했다. 그러나 정작 시험지를 받아보았을 때 거기에는 선배들의 문제는 하나도 없었다. 다만, 내가 밤을 새우며 준비한 문제들만 10개 중에 8개가 나와 있었다. 나머지 두 문제 중 한 문제는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전공 시험을 마치고 외국어 시험을 보았다. 영어 시험은 당시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던 터라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문제는 독일어 시험이다. 고등학교 때 어설프게 배우고 대학 들어와 교양 독일어 두 학기 들은 거, 그리고 석사 입학시험을 위해 1년 간 준비한 것이 다였다. 주어진 독일어 텍스트를 사전 하나만 가지고 번역하여 반 이상을 맞춰야 하는 시험. 절망적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기적이 일어났다. 내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우연히 펼쳐 보게 된 최신 독일 잡지에서 내가 잠깐 읽어 본 글이 번역 지문 일부로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일부는 교양 독일어 교재에서, 다른 부분은 그렇게 내가 잠깐 서서 읽어 본 독일어 잡지에서 지문이 나왔던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그렇게 가능했을까. 지금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대목이다. 기적이라고밖에 여겨질 수 없었다. 그날 하숙집에 돌아와 잠시 마당에 나와 하얗게 뜬 달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감사의 기도가 나왔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내 박사논문이 학회의 총서로 채택되어 간행된 것도 기적이다. 전공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회에서는 근래 나온 박사논문을 추천을 받아 심사하여 총서로 간행했는데 거의 대부분 서울대 박사논문이었고 다른 대학의 것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내 박사논문도 모교에서는 처음 선정된 것이다. 말할 수 없는 영예였고 나와 학과와 모교가 다 같이 기쁜 일이었다. 박사논문 심사가 끝나고 최종본을 제출할 때 나 스스로는 내 박사논문에 많이 실망했었다. 이런 논문을 내고도 박사학위를 다 받는구나 하고 무척 자조하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정말 멋진 박사논문을 쓰고 싶었는데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글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도교수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내 박사논문을 학회 총서로 추천하셨고 그 결과 그렇게 믿기 힘든 결과가 빚어진 것이다.


해외 박사 후 연수를 국비 장학생으로 떠난 것도 기적이었다. 당시 나까지 포함하여 국내 박사 145명이 뽑혀 지원을 받게 되었는데, 내 전공 분야에서는 국내에서 나 하나였다. 내가 졸업할 당시 모교의 박사 졸업생 수만 해도 매우 많았다. 그렇게 전국적으로 다양한 전공에서 수많은 박사들이 배출되어 지원했을 텐데 그중에서 내 지원서가 뽑혔다는 것은 정말 지금도 믿기 힘든 일이다.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부모님이 내신 세금을 알뜰히 돌려받게 되었다. 그렇게 영국에서 보낸 1년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경험이었는지 모른다. 유학을 통해 정신적인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고, 세계적인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연구를 심화할 수 있었으며, 짧은 인사 한마디 못하던 영어로 의사소통까지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유학 시절 섬기던 교회의 목사님 주선으로 나중에 인생의 배필을 만날 수 있었고, 유학 시절 배양한 영어 실력으로 교수 임용 영어 면접을 당당히 통과할 수 있었다. 사실 영어 면접에서도 기적이 있었다. 총장 앞에서의 영어 면접 준비에 영국 시민인 아내의 도움이 컸다. 아내와 함께 영어로 예상 질문과 답을 만들어 여러 차례 연습을 하였는데, 영어 면접에서 주어진 다섯 문제 중 세 개를 맞추었다. 기적이었다. 아내가 영국에서 겪었던 세계적인 회사들의 기상천외한 면접 문제를 들은 게 많이 도움이 되었다. 그래도 어떻게 과반수의 문제를 맞혀 준비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아내를 통한 기적이라고밖에는 여겨지질 않는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손뼉을 치며 기뻐하시던 장인어른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그러나  번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아마도 그게 가장  기적이었는지 모른다. 기적은 비현실적이며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가 매우 힘들기에 기적을 믿지 않았다. 기적은 정직한 노력을 허무하게 만드는  같아 멀리했었다. 나는 머리가 아닌 오로지 노력만으로 승부해 왔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삶의 중요 고비마다 기적이 일어났음을 고백하지 않을  없다. 하나님은 기적을 통해 그렇게  삶에 깊숙이 개입하셨다. 학문의  위에서 지금도 기적은 계속되고 있다. 내게 떠오르는 모든 흥미로운 생각의 원천,  영감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임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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