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언어학
[교수] 그럼, 이 시점에서 다음 문제를 풀어 보죠. 이제 몇 조인가요? 3조? 예, 3조, 문제 풀어 주세요.
[학생15] 3조 ‘바로 그거죠’입니다. 문제는 ‘언어의 자의성에 반대되는 듯한 현상은 무엇인가?’입니다. 저희 조는 답으로 언어의 필연성을 들었습니다.
[교수] 언어의 필연성이요? 그런데 방금 풀어 본 앞의 문제에서는 언어가 자의성을 띤다고 했잖아요.
[학생15] 아, 저희들은 그냥 언어의 자의성에 반대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교수] 언어의 자의성에 반대되는 것으로 언어의 필연성을 들었다? 그렇다면, 문제를 좀 잘못 읽은 것 같은데요? 문제 다시 읽어 주세요.
[학생15] 예, 언어의 자의성에 반대되는 듯한 현상은 무엇인가?
[교수]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되는 듯한 것이 무엇이냐는 거죠? 학생 말대로, 언어의 필연성은 언어의 자의성에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반대되는 듯한 개념은 아니죠. 혹시 다른 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 없나요?
[학생16] 혹시 언어의 사회성 아닐까요?
[교수] 그건 아직 안 배우긴 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답이 아닙니다. 학생은 왜 그렇게 생각했죠?
[학생16] 아, 예. 언어의 자의성은, 음성과 의미 간에 필연적인 관계가 없다는 것인데, 언어의 사회성은, 음성과 의미의 결합이 사회적인 약속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음성과 의미가 원칙적으로 서로 관련이 없다는 게 자의성이라면, 그 둘이 약속으로 묶여 있다는 게 사회성이니까요.
[교수] 좋은 설명입니다. 그런데 학생, 자의성과 사회성에 대한 학생의 설명이 옳은 것이라고 해도, 그래도 여전히 사회성은 답이 될 수 없다는 거 이해할 수 있나요?
[학생16] 예? 음... 그것도, 그니까 사회성도 자의성에 반대되는 듯한 현상이 아니라 반대되는 현상이니까요?
[교수] 그렇습니다. 필연성이나 사회성이나, 자의성에 반대되는 듯한 현상이 아니라 반대되는 현상이죠. 그리고 엄밀하게 말하면, 필연성이나 사회성은 현상이 아니라 성질입니다. 자의성, 필연성, 사회성은 언어의 속성이지 언어 현상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언어의 자의성에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언어 현상입니다. 혹시 다른 학생 의견 없나요? 이것 역시 교재에 나와 있습니다. 답을 찾은 사람 없나요? 틀려도 좋으니 용기를 내서 말해 보세요. 시도하고 실패하고 또 다시 시도하고 하면서 배우는 거 아니겠어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학생17] 혹시... 의성어 아닐까요?
[교수] 예? 의성어요? 정답입니다! 여러분, 일단 저 학생에게 박수부터 보내 주죠. 자, 그럼, 학생, 왜 의성어가 답인지 설명해 주세요. 아는 만큼 하시면 됩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답변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의성어가 언어의 자의성에 반대되는 현상으로 보이는 이유.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성어는 언어의 자의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라는 것, 그래서 그것은 오히려 언어의 자의성에 대한 강력한 증거라는 것. 이런 틀에 맞출 수 있으면 맞추고, 그게 어려우면 학생이 답변하기 편한 대로 우선은 그렇게 해 주면 됩니다.
[학생17] 아, 예. 잘 될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그렇게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음... 먼저 의성어가 언어의 자의성에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음... 예를 들어서, ‘멍멍’이라는 단어는 개가 짓는 소리입니다.
[교수] 방금 ‘멍멍이라는 단어’라고 했는데, 그럼 사전에 그게 나온다는 말인가요?
[학생17] 예? 어... 그건 지금 잘... 모르겠는데요.
[교수] 사전에 나옵니다. 부사로 등재되어 있어요. 일단, 계속 진행해 보세요.
[학생17] 예, 음... ‘멍멍’이라는 단어는 개가 짓는 소리인데, 그것의 음성은 ‘멍멍’이고, 그것의 의미는 ‘개가 짓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음... ‘멍멍’이라는 음성과 ‘개가 짓는 소리’라는 의미는 뭐랄까 음... 매우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음... 굳이 음성과 의미로 나누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교수] 지금 매우 중요한 순간입니다. 멍멍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것의 음성과 의미를 굳이 나눌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는데, 그걸 이렇게 이해해도 되나요? 멍멍이라는 단어의 음성이 곧 의미이기도 하다라고.
[학생17] 예? 음... 아... 음... 어, 아! 그런 것 같습니다. 예, 멍멍이라는 말은 음성이기도 하지만 실은 의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교수] 우리가 멍멍이라고 하면 일단 그것은 멍멍이라는 단어의 음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멍멍이라는 소리에 실려 있는 의미는 사실 멍멍 그 자체입니다. 왜냐하면 개가 짓을 때 나는 소리가 우리에게는 멍멍이라고 들리니까요. 그러니까, 멍멍이라는 음성에는 멍멍이라는 의미가 실려 있는 거예요. 멍멍이라는 소리가 음성인 동시에 의미라고 해도 무방하다는 거죠. 그게 의성어의 특징입니다. 어때요? 그렇죠? 그렇다면, 이젠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학생, 이러한 의성어에서 음성과 의미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학생17] 음... 멍멍이 음성인 동시에 의미인 것이라면, 그때 멍멍이라는 단어에서는 음성과 의미가 같은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때 음성과 의미의 관계는 매우 가까운, 아니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둘이 하나인 관계입니다.
[교수] 그렇게 음성과 의미가 나눌 수도 없을 만큼 밀접하다면, 그렇다면, 그건 언어의 자의성에 가까워요, 언어의 필연성에 가까워요?
[학생17] 언어의 필연성에 가깝습니다.
[교수] 그렇습니다. 그게 의성어가 언어의 자의성에 반대되는 현상으로 보이는 이유입니다. 잘했어요. 그런데 여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두 번째 단계가 남아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성어는 오히려 언어의 자의성을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라는 것.
[학생17] 예! 그렇습니다. 교재에 그 이유가 나와 있는데요, 한국어에서는 멍멍이지만 영어에서는 바우와우(bowwow)이기 때문입니다. 개가 짖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도 언어마다 다른 것입니다. 따라서 의성어는 비록 그 음성과 의미가 매우 밀접해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것마저도 언어마다 다르니까 언어의 자의성에 대한 강력한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수] 매우 설명을 잘했습니다. 정말 잘했어요. 우리는 의성어에서 음성과 의미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매우 밀접하지만, 그러한 음성과 의미의 관계도 언어가 달라지면 곧 유지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개 짖는 소리나 고양이 우는 소리, 닭 울음소리도 언어가 다르면 다 달라집니다. 정말 신기하죠! 의성어는 하나의 언어 현상으로서 언어의 자의성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잠시 10분 정도 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