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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마리 Oct 22. 2023

9. 음성과 의미 사이: 언어의 자의성

질문하는 언어학

[교수] 기호는 형식과 내용을 가지고 언어는 기호에 속하니까, 언어도 형식과 내용을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언어의 형식을 음성이라 하고 언어의 내용을 의미라고 부릅니다. 여기까지가 언어가 기호로서 가지는 기본적인 모습입니다. 이제 기호로서의 언어가 가지는 특징을 좀 더 꼼꼼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2조, 문제 풀어 주세요. 


[학생13] 예, 2조, ‘에이뿔 주시죠’입니다. 문제는 ‘언어의 자의성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저희가 얻은 답은, 언어의 음성과 의미 간에는 필연적인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수] 예, 잘 말하였습니다. 언어의 음성과 의미 간의 관계는 필연적이지 않다는 거죠. 그렇다면, ‘필연적이지 않은 관계’란 어떤 건가요? 


[학생13] 예? 음... 자의적인 관계입니다. 


[교수] 물론,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자의적인 관계’라는 건 또 뭔가요? 


[학생13] 음... 필연적이지 않은 관계...


[교수] 자꾸 답변이 돌고 도네요. 자의적인 관계란 건, 그 관계가 필연적이지 않다는 건데 그럼, 필연적이지 않은 관계란 무엇인지 알아야죠.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어떤 두 개의 대상 A와 B가 필연적인 관계라면 그 둘은 꼭 붙어 다닐까요, 아니면 어떨 땐 가끔 떨어질 수도 있는 걸까요? 


[학생14] 음... 그러니까... 음...


[교수] 힌트입니다. 필연이라고 하는 것은 꼭 그래야 한다는 것,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걸 뜻합니다. 그렇다면? 


[학생14] 예, 그렇다면, A와 B는 꼭 붙어 다니게 될 것 같아요. 


[교수] 그렇습니다. 꼭 그래야 하니까 A와 B는 꼭 붙어 다니겠죠. 그럼, 이걸 언어의 음성과 의미 간의 관계에 접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어의 음성과 의미 간의 관계가 필연적이라면, 그 둘은 어떻게 될까요? 


[학생14] 꼭 붙어 다니겠죠. 


[교수] 그럼, 그때 둘이, 즉 음성과 의미가 꼭 붙어 다닌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학생14] 음... 어... 어떤 음성은 꼭 어떤 의미와만 결합한다? 


[교수] 아주 좋습니다. 그럼, 한 걸음 더 나가 보죠. 그렇게 언어의 음성과 의미가 필연적인 관계에 있다면, 세상에는 몇 개의 언어가 존재하게 될까요?, 논리적으로. 


[학생14] 예? 세상의 언어요? 


[교수] 자, 하나의 음성은 반드시 어떤 하나의 의미와만 결합합니다. 그렇게 음성과 의미의 모든 쌍들이 단 한 가지씩으로만 존재한다면, 세상의 언어는 과연 몇 개가 될 것 같으냐는 말이에요. 


[학생14] 음성과 의미의 쌍이 오로지 한 가지씩이라면, 그러면... 세상에 언어는 오직 하나? 하나면 존재하게 되나요? 


[교수] 그렇죠! 바로 그겁니다. 세상의 언어는 오로지 하나만 있게 될 겁니다. 왜냐하면 특정한 음성은 반드시 특정한 의미와 결합해야 하니까, 그렇게 만들어진 언어는 둘 이상이 있을 수가 없죠. 그러니 세상에는 오직 한 개의 언어만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런데, 학생. 지금 현실에서는 어떤가요? 세상에 오직 한 개의 언어만 있나요? 


[학생14] 아니요! 한국어와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처럼 여러 개가 있습니다. 


[교수] 그렇죠. 현실에서 언어는 한 개 이상 존재하죠. 의견이 분분하지만 많게는 7천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묻겠습니다. 언어의 음성과 의미 간의 관계는 필연적인가요, 아니면 필연적이지 않은가요? 


[학생14] 필연적이지 않습니다. 


[교수] 그걸, 뭐라고 하나요? 간단하게?


[학생14] 예? 


[교수] 아, 언어의 음성과 의미가 필연적인 관계에 있지 않다는 걸 뭐라고 하냐고요. 


[학생14] 언어의 자의성? 


[교수] 예, 그렇습니다. 언어의 자의성입니다. 이렇게 언어의 자의성이란, 언어를 구성하는 음성과 의미 사이의 관계가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닌 관계, 즉 자의적인 관계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요? 책에 나와 있죠? 


[학생14] 잠시만요. 아, 여기... 예, 그건, 한국에서는 개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도그(dog), 독일어로는 훈트(hunt), 프랑스어로는 시엥(chien)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수] 예, 동일한 동물을 가리키는 말이 언어마다 다르죠. 하나의 의미에 연결된 음성이 언어마다 다른 겁니다. 의미와 음성의 연결이 오직 한 가지로만 되어 있는 게 아니라, 의미는 하나인데 거기에 연결되어 있는 음성은 여럿이라는, 그래서 언어마다 의미와 음성의 결합이 다르다는 거지요. 언어의 자의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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