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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마리 Oct 22. 2023

7. 기호 + 소크라테스 = 언어

질문하는 언어학

[교수] 반갑습니다. 지난 시간에 기호의 정의와 종류를 살펴보았습니다. 기호의 정의란 기호의 조건을 뜻하죠. 따라서 어떤 것이 기호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는 그것이 기호의 정의를 충족하는지 따져보면 됩니다. 그렇게 기호로 판정된 것들은 다시 인위적 기호와 자연적 기호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인위성을 기준으로 인위적 기호는 [+인위성], 자연적 기호는 [-인위성]이라고 속성을 명시할 수 있죠. 이렇게 기호의 정의와 종류를 살펴본 이유는 무얼까요? 그렇죠! 바로 언어의 속성을 이해하기 위해서죠. 이제 관련된 문제를 풀어봅시다. 몇 조부터 시작하면 되나요? 지난 시간에 3조까지 풀었죠? 그럼, 4조, 시작해 주세요!


[학생11] 예! 4조 ‘언어는 소중하죠’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기호의 정의로부터 언어가 형식과 내용을 가진다는 결론이 도출될 수 있는가?’입니다. 이건 삼단논법이라고 하는 논리를 통해 도출될 수 있다고 교재에 나와 있는데요, 우선 기호는 형식과 내용을 가집니다. 그리고 언어는 기호에 속합니다. 따라서 언어도 형식과 내용을 가집니다. 


[교수] 예, 깔끔하게 답해 주었습니다. 방금 학생이 말한 삼단논법은 연역법이라고도 하고 형식 논리라고도 합니다. 연역법이란, 어떤 원리로부터 구체적인 사례를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말이 좀 어렵죠? 그런데 이건 학문을 하면서 꼭 알아야 하는 개념입니다. 원리라는 건 일반적인 사실이나 진리, 법칙과 같은 것이죠.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은 죽는다.’와 같은 것입니다. 사람에 관해 무언가 말해 주고자 하는 이 문장은, 어떤 일부의 사람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죽는다는 일반적인 사실을 드러냅니다. 구체적인 사례라는 건 실제로 벌어지는 낱낱의 일들 하나하나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죽는다.’와 같은 것이죠. 이 문장은 특정한 사람인 ‘소크라테스’에 대해 그가 죽는다는 구체적인 사건을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일반적인 원리로부터 구체적인 사례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원리와 사례를 이어줄 연결고리를 마련하면 됩니다. 바로 이렇게요. 


일반적인 원리:    모든 사람은 죽는다. 

연결고리: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구체적인 사례: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여기서 일반적인 원리를 가리키는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문장을 대전제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다음에 이어지는 연결고리인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를 소전제라고 하죠. 이렇게 대전제와 소전제가 주어지면 자동적으로 구체적인 사례인 ‘소크라테스는 죽는다.’가 도출됩니다. 그걸 결론이라고 하죠. 대전제→소전제→결론. 세 개의 단계를 가지는 논리적인 방법이니 삼단논법이라 불립니다. 또한, 대전제와 소전제가 주어지면, 결론은 자동적으로 도출되니 형식 논리라고 하죠.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도 없이 자동적으로 결론이 도출되고 마니까요. 정말 그러냐고요? 칠판을 보세요. 


대전제:    모든 사람은 파란색이다. 

소전제:    나는 사람이다. 

결   론:    따라서, 나는 파란색이다. 


이상한 결론이지만 논리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결론이 이상한 건 대전제가 잘못되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대전제에서 소전제로, 소전제에서 결론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이상할 게 없습니다. 그러니 연역법에서 대전제의 설정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전제는 어떻게 얻어지는 걸까요? 이때 등장하는 게 바로 귀납법입니다. 귀납법은 연역법과 정반대의 논리입니다. 구체적인 사례들로부터 일반적인 원리를 이끌어내니까요. 앞서 들었던 ‘모든 사람은 죽는다.’와 같은 일반적인 원리는 여러 구체적인 사례들의 관찰로부터 얻어집니다. 가깝게는 나의 가족 구성원들 중 누군가가, 또 내 친구들 중 누군가가, 조금 멀게는 내 친구의 친구들 중 누군가가, 또 아주 멀게는 뉴스에서 나오는 낯선 누군가가 죽는 일들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아, 사람은 다 죽는가 보구나!’라는 인식이 생기는 거죠. 비록 모든 사람이 죽는 걸 일일이 다 확인해 보지는 못할지라도, 어느 정도 사례들이 쌓이게 되면, 그걸로 일반적인 원리가 도출되는 겁니다. 그래서 귀납법은 늘 틀릴 가능성을 달고 다닙니다. 그게 과학의 가장 기본적인 연구 방법론인데도 말이죠. 그리고 그렇게 귀납법에 의해 얻어진 원리를 바탕으로 연역법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연역법이나 귀납법이나 인간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논리의 도구지만 둘 다 치명적인 약점을 가집니다. 기호로부터 언어의 속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연역법이 필요하였고, 그래서 연역법을 설명하다 보니 귀납법까지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네요. 이제 연역법을 이용해 언어의 속성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정리하고 다음 문제로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전제:    기호는 형식과 내용을 가진다. 

소전제:    언어는 기호이다. 

결   론:    따라서, 언어는 형식과 내용을 가진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기호의 정의와 종류를 다루었습니다. 그러면서 기호의 정의를 통해 기호가 형식과 내용을 가진다는 걸 알게 되었죠. 이제 그걸 이용하여 언어 역시 형식과 내용을 가진다는 걸 자동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언어가 기호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기호가 형식과 내용을 가지는 것이니 무엇이든 기호이기만 하면 그것은 더 이상 묻고 따질 필요도 없이 당연히 형식과 내용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냥, 언어가 형식과 내용을 가진다고 말하는 것보다, 이렇게 기호를 등에 업고 그것으로부터 언어의 속성을 이끌어내는 게 더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왜 언어를 설명하기 위해 기호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는지 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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