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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마리 Oct 20. 2023

5. 매캐하고 거무스름한 기호

질문하는 언어학

[학생8] 2조, ‘에이뿔 주시죠’입니다. 다음 문제는 ‘‘연기’를 기호로 간주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입니다. 저희 조에서는, 연기도 일정한 형식에 일정한 내용을 가진 것이니까, 기호의 정의를 만족시키니까 기호라고 생각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연기는 거무스름한 기체로 눈에도 보이고 코로도 맡을 수 있습니다. 그게 형식이고요, 내용은 발화, 그러니까 어딘가에 불이 났다는 것입니다. 


[교수] 훌륭한 대답입니다. 잘 설명했어요. 연기도 기호의 정의를 만족시키니까 기호라고 한 점이 매우 마음에 듭니다. 정말 에이뿔 주고 싶은데요! 무엇이든 그것의 정의를 만족시키면, 그것의 조건을 충족하는 것이니까, 그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죠. 이젠 학생들이 슬슬 탄력을 받아가는 것 같아 기쁩니다. 그런데 연기는 두 가지 형식을 가지네요? 거무스름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시각적 형식을, 탄 냄새가 난다는 점에서 후각적 형식을 가지지요. 두 가지 형식에, 어딘가 불이 붙었다는 메시지 하나가 결합되어 있으니 분명히 기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지금 배운 것들을 정리해 줄 다음 문제를 또 풀어 보죠. 


[학생9] 3조 ‘바로 그거죠’입니다. 문제는 ‘기호의 2가지 종류는 무엇인가?’입니다. 기호의 두 가지 종류에는 인위적 기호와 자연적 기호가 있습니다. 그 기준은 사람이 만들었느냐 그렇지 않느냐입니다. 인위적인 기호는 사람이 만든 것이고 앞서 배운 신호등이 그 예입니다. 자연적인 기호는 사람이 만들지 않은 기호고 앞에서 배운 연기가 그 예입니다. 이상입니다. 


[교수] 역시 깔끔하게 잘 답변하였습니다. 내가 다시 정리해 줄 필요도 없겠어요. 인위적 기호의 인위란 말이, 사람이 한 거란 뜻이죠. 자연적 기호의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추가 문제 하나 낼 게요. 지금 학생은 기호의 두 가지 하위 유형을 얘기하면서 인위적 기호와 자연적 기호라는 두 개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리킬 대상이 2개이니 2개의 명칭이 필요한 게 당연해 보이죠? 그런데 하나의 속성을 가지고 두 가지를 모두 포괄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잘 안 들어오나요? 인위적 기호를 인위적 기호라고 부르고 자연적 기호를 자연적 기호라고 부르는 대신에, 오직 한 가지 성질을 가지고 두 가지 종류를 포괄하면서 구별해 낼 수 있다는 겁니다. 학생, 지금 당장 답할 수 있나요? 어렵다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조별 토의해 주세요. 몇 분 있다가 학생이 의견 정리해서 답해 주기 바랍니다.


( 학생들은 다시 조별로 토의를 진행한다. 달랑 두 개이지만 어떻게든 그 두 가지를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성질을 찾아야 한다. 도대체 무슨 수로 그렇게 할 수 있느냐며 난감해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 더 이상 참고할 자료는 없어 보이고 그래서 대화는 잊고 생각에만 골몰하는 학생들이 많아져 말소리들이 점차 줄어든다. 약속한 시간이 지나고 답변을 들을 차례가 되었다. )


[교수]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제가 얼른 툭 하고 답을 던져 주면 여러분들은 ‘아하!’ 하고 받아들이겠지만, 그러면 여러분에게 남는 게 거의 없을 겁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머리로 직접 찾아내야만 더 의미 있는 답으로 여러분 머릿속에 남을 거예요. 그래서 없는 시간 쪼개서 이렇게 조별 토의도 하는 거고. 나는 입이 간지러워 못 견디겠어요. 그러나 꾹 참고 있는 거예요. 자, 답을 해 볼 순간입니다. 답은 의외로 가까이 있어요. 어디 한번 들어볼까요? 


[학생8] 죄송하지만, 저희 조에서는 어떤 결론에 아직 이르지 못했습니다. 인위적 기호와 자연적 기호를 어떻게 하나의 속성으로 통합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저도 개인적으로 생각은 해 보았는데 도무지 떠오르지를 않습니다. 


[교수] 내가 좀 어려운 질문을 했나요? 다른 조에서도 별다른 답을 구하지 못했나요? 예? 음, 알겠습니다. 그럼, 좀 구체적으로 질문을 해 볼 게요. 학생, 학생이 아까 답변한 기호의 두 가지 종류를 다시 말해 주세요. 


[학생8] 인위적 기호와 자연적 기호요. 


[교수] 두 가지 중에서 먼저 인위적 기호를 가지고 이야기해 봅시다. 인위적 기호는 사람이 만들었나요? 


[학생8] 예, 맞습니다. 사람이 만든 기호가 인위적 기호입니다. 


[교수] 그럼, 이젠 자연적 기호입니다. 자연적 기호도 사람이 만들었나요? 


[학생8] 아니요! 자연적 기호는 사람이 만들지 않은 기호입니다. 


[교수] 그렇죠. 아까 학생이 분명히 그렇게 말했죠. 자, 여기서 문제의 답이 나옵니다. 인위적 기호와 자연적 기호를 구별하는 기준 말이에요. 한마디로 뭐라고 했죠? 


[학생8] 사람이 만들었느냐 그렇지 않느냐. 


[교수] 좋습니다. 사람이 만들었느냐 그렇지 않느냐. 그걸 한마디로 줄이라는 거예요. 사람이 만들었다, 사람이 했다, 그걸 뜻하는 말이 뭐라고 했죠, 아까 내가? 


[학생8] 예? 음... 뭐? 다시! 아! 인위? 인위요! 


[교수] 예, 그렇죠. 인위. 그런데 무언가 그러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걸 뜻하려면, 인위란 말에 어떤 음절 하나를 덧붙이면 좋겠어요. 그러한 성질을 가졌다는 걸 뜻하게요. 어떤 말 하나를 더하면 좋을까요? 


[학생8] 음... 인위... 인위... 인...위...성... 인위성! 인위성이요? 


[교수] 정말 잘했어요! 인위성입니다. 그게 내가 원한 건데요.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인위적 기호는 인위성을 가지나요? 


[학생8] 음... 예! 그렇습니다. 인위적 기호는 인위성을 갖습니다. 


[교수] 그렇죠. 인위적인 기호는 인위성을 가지는 기호죠. 그럼, 자연적 기호는요? 인위성을 갖나요? 


[학생8]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연적 기호는 자연성을 갖지 인위성을 갖지는 않습니다. 


[교수] 좋습니다. 학생이 방금 답변하면서 자연성이라는 훌륭한 용어를 만들어냈습니다.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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