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마리 Oct 22. 2023

13. 필연성을 가진 언어: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

질문하는 언어학

[교수] 저는 평소 그렇게 생각합니다. 언어학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들을 가지고서도 정말 많은 흥미로운 일들을 해 낼 수 있다고요. 천릿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이 있죠? 여러분이 이 책에 있는 아주 기본적인 개념들을 잘 이해하고 나면, 정말 매우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그 대단한 논문들이나 책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이 수업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개념들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비판하며 결국에는 새로운 개념을 창출할 수 있는 단계로 나가는 걸 돕는 거 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 묻겠습니다. 언어에서 자의성을 걷어내고 필연성을 부여하려는 그러한 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제가 성립되어야 합니다. 그게 뭘까요? 방금 말한 학생, 혹시 어떤 생각나는 게 있습니까? 


[학생21] 음... 의미를 직접 주고받기 위해 필요한 전제가 무엇이냐는 말씀이시죠? 


[교수]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것 역시 잘 짚어내네요. 좋습니다. 


[학생21] 음... A라는 사람으로부터 B라는 사람으로 의미가 전달되고 받아들여지려면, 그러려면, 음... 주고받는 의미가 같아야 하는데, 정말 그런 건지... 음...


[교수] 논리적인 사고의 결과를 지금 여러분은 보고 계십니다. 내 생각도 방금 학생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 의미는 뇌파이고, 그런 뇌파를 직접 주고받으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언어가 달라도 그런 두 사람이 주고받는 의미는 동일할 수 있다, 즉 언어가 다른 것은 오직 음성에서이지 의미에서는 아니라는 게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어떤 하나의 의미가, 동일한 뇌파로 존재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정말 그럴까요? 그게 관건입니다. 그게 가능하다면 뇌파를 주고받음으로써 완벽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게 불가능하다면, 결국 다른 언어들 간에는 직접적인 의미의 소통이 불가능해질 것이고, 사람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거라면, 같은 언어권에서조차 직접적인 의미의 전달은 불가능할 겁니다. 어떻습니까? 이렇게 우리가 앉아서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프로젝트의 핵심적인 생각과 핵심적인 전제에 대해 추리해 낼 수 있죠? 이게 바로 생각의 힘, 사유의 능력입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이런 능력이 있습니다. 기본적인 개념을 잘 배우고 익히면 이런 놀라운 결론들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걸 통해 올바른 결론을 도출하고 올바른 판단을 해 내는 겁니다. 그게 바로 이 수업이 원하는 바입니다. 언어의 자의성을 넘어 언어의 필연성에 다다르고자 하는 그 놀라운 시도도, 결국은 그것의 전제 즉, 의미는 개별언어와 개개인을 막론하고 동일하다는 것이 성립해야 가능합니다. 만일 그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일론 머스크나 마크 저커버그가 공들여 왔던 프로젝트는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는 거죠. 자, 이제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더 생각해 보고 논의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만약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의미의 동일성이 확인되고 그에 따라 뇌파를 주고받는 것으로 완벽한 의사소통이 되는 시대가 온다고 가정합시다. 그런 시대를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런 시대에 살고 싶은가요? 학생, 대답해 볼래요? 


[학생21] 그런 시대가 오면 사람들의 다툼이나 분쟁도 더 잘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동안 소통이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는 없었으니까요. 


[교수] 완벽한 소통의 시대가 오는 것에 대해 반기는 입장이네요. 혹시 다른 의견 없나요? 


[학생22] 예, 저는 걱정이 좀 앞섭니다. 물론, 완벽한 의사소통도 좋지만, 만약 누군가가 머릿속에 어떤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그와 뇌파를 공유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의 생각을 즉시 알게 된다면, 과연 그렇다면, 그게 정말 우리가 바라는 사회일까요? 비밀이 있을 여지가 있을까요? 생각의 자유가? 비록 남에게 말하지 못할 생각이지만, 혼자서는 충분히 해 볼 수 있는 생각, 그런 생각,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 사회. 생각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사회. 저는 매우 부정적입니다. 


[교수] 그것 또한 훌륭한 생각입니다. 당장 디스토피아가 떠오르는데요! 우리는 완벽한 의사소통을 원하지만, 정말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의 생각이 사람들에게 가감 없이 완전히 공유되었을 때, 그게 정말 바람직한 것인지, 우리가 원하는 모습인지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소통의 한계로 인해 그 한계를 넘고자 시도해 왔던 많은 노력들, 정확한 의미를 알기 힘든 시의 한 구절, 소설의 비유 한 대목이, 오랜 시간 동안의 해석 과정을 거쳐야만 어렴풋하게 알 수 있었던 그 모든 말들이 음성을 벗고 의미로서 직접 뇌리에 와 닿는 그 기분은 과연 우리에게 행복을 줄 것인가, 거대한 비극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인가 정말 고민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그러한 고민 끝에 그것이 디스토피아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결론이 내려지게 되면, 우리는 오히려 그런 기술을 막으려 노력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우리 언어학자들이 주도적으로 고민해 보아야 할 중요한 화두인 것 같습니다. 지금 인공지능이 한창 뜨거운 감자로 떠올라 있는데요, 오히려 앞서 언급한 그런 CEO들까지 나서서 인공지능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너무 늦기 전에 인공지능의 힘과 용도를 제한하는 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지요. 그거 다들 아시나요? 


[학생23] 선생님,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만약 의미로 직접 소통을 하게 된다면, 그렇게 해서 언어의 자의성이 언어의 필연성으로 바뀌게 된다고 한다면, 그러나 언어는 이미 언어가 아닌 게 되어 버리지 않나요? 


[교수] 역시 훌륭한 지적입니다. 좀 더 설명을 해 주기 바랍니다. 


[학생23] 예, 원래 언어는 형식과 내용의 결합인데, 형식에 해당하는 음성 없이 내용에 해당하는 의미만 직접 주고받게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언어는 그 순간 형식 없이 내용만 가지는, 그래서 본래의 언어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인 언어, 굳이 언어라고 불러야 하나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어떤 게 되지 않을까 해서요. 


[교수] 그렇게 되겠네요. 언어는 음성과 의미의 자의적 결합이라고 했는데, 그런 언어의 모습으로부터 의미만 떼어 내어 의사소통을 하니, 언어가 아니라 그냥 의미를 소통한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 그렇게 되면 그런 의미만으로는 기호가 될 수 있나요? 


[학생23] 기호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기호는 형식과 내용이 결합된 건데, 내용에 해당하는 것만 있다면, 그건 기호가 아닌 것 같습니다. 기호도 아니고 언어도 아닌 의미 그 자체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교수] 학생이 말한 대로, 의미로만 소통을 하는 시대가 오면, 우리가 그동안 사용해 왔던 언어, 기호로서의 언어는 더 이상 유효한 개념이 아니겠네요. 물론, 의미로 직접 의사소통하는 데 있어서 의미가 언어냐, 기호냐 하는 게 걸림돌이 되지는 않겠죠. 그러나 개념적으로 그걸 정의할 때는 분명히 전과는 다른 의사소통의 체계로서 정립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기호로서의 언어를 사용하던 시대와 기호가 아닌 언어를, 아니 기호도 아니고 언어도 아닌 의미 자체로 소통을 하는 시대로 나뉘겠네요. 정말 여러분, 우리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 주변에 변한 게 하나도 없는데 우리 생각은 이만큼이나 변했어요.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쉽게도,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수고들 많았습니다.

이전 13화 12. 언어에서 자의성 제거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