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0
# 생명공학부 지하 2층 연구실1
//왜 이렇게 늦었어? 교수님들 벌써 다 모이셨단 말이야. 얘가 요새 정신이 있어, 없어! 얼른 준비하고 따라와!
//예, 형,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친구들 좀 만나는 통에 얼른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죄송해요...
용재는 가쁜 숨을 고르며 동료들과 지하 2층의 연구실로 내려갔다.
생명공학부 건물 지하 2층 연구실에는 침침하게 전등이 켜져 있고 10여 명의 대학원생들이 몇 명의 교수들과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신사 하나를 둘러싸고 서 있었다.
//다들 모이셨군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현 시점은 우리에게 매우 불리합니다. 우리 연구를 묵인해 주던 현 정권은 지금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과거 생명복제 연구에서 세계적으로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정책은 이제 여론에 떠밀려 주춤거리고 있습니다. 더욱이 대선을 맞아 소장파를 주축으로 하는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에서 인간복제 연구를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여론의 표를 의식하는 이상 그들은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 대선에서 승리하든 우리에게 불리합니다.
//이미 예견된 것 아닙니까? 당황하지 맙시다.
노신사가 엷은 웃음을 띠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국면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까? 물론 이사님께서 이제까지 우리 뒤를 봐 주셨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젠 재정적인 지원만 있다고 해서 연구가 진척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론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합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허허, 왜 그렇게 조바심을 내는 거요? 그동안 여론이 우리에게 나쁘게 돌아갔다고 해서 우리 연구가 중단된 적이 있소? 보수와 진보 양진영에서 지금은 여론의 표를 의식하고 인간복제 금지를 한 목소리로 주장하고 있지만, 그들도 실상 인간복제에 대한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게요.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이 모두 음성적으로라도 인간복제 연구에 혈안이 돼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오. 우리만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그것을 금지한다면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오. 상황을 좀 더 지켜봅시다. 행운의 여신은 분명 우리에게 미소를 지을 것이오.
//장기적으로는 어떨는지 몰라도, 당장 대선이 끝나면 세무조사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저희 연구소도 마찬가지고 이사님께서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자금의 조달과 사용처를 조사하면 필시 이사님의 연루 사실도 밝혀질 게 뻔합니다. 그에 대한 대비가 있으신지요?
//우리가 하루 이틀 장사합니까?
노신사는 시가에 불을 붙이며 말을 이었다.
//그 문제는 내게 다 맡겨 두시오. 정작 내가 듣고 싶은 것은 연구가 얼마나 진척되었는가 하는 것이오. 어떻소? 금명간에 물건이 나올 것 같소?
//물건이라니요!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우리가 연구하는 것은 컴퓨터나 자동차가 아닙니다. 바로 인간입니다.
//허허. 내가 말실수를 한 것 같소이다. 용서하시오. 허허.
노신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웃으며 연기를 길게 허공에 뿌렸다.
//박군, 슬라이드쇼를 준비하게. 준비됐나? 그럼 시작해.
//예.
장덕진 교수는 지도 학생의 발표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과연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지? 정말 옳은 일인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도대체 정말 무엇 때문에... 아니야,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흔들리면 안 돼. 흔들리면...
순간 그의 뇌리에는 몇 년 전 죽은 세 살배기 외동아들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스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