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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마리 Sep 23. 2021

본질의 발견과 창조

본질의 성격

흔히, 본질은 발견된다고 생각한다. 발견은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을 확인한다’는 것이므로, ‘본질이 발견된다’는 것은, ‘본질은 이미 주어져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이미 주어져 있는 본질’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 사유나 학문의 본성이라는 생각을 드러낸다.  


그런데 사유나 학문은, 오로지 ‘본질의 발견’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인가? ‘본질을 창조’하는 사유나 학문은 불가능한 것인가?


‘본질의 발견’은, 본질은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이며 그래서 그것을 발견하는 작업이 가능함을 함의한다. ‘본질의 창조’는, 본질은 아직 주어져 있지 않은 것이며 그래서 그것을 창조하는 작업이 가능함을 함의한다. 이에 따라 사유와 학문도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본질을 발견하는 사유와 학문, 그리고 본질을 창조하는 사유와 학문.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해석은 해석자마다 달라지므로, 이미 본질이 주어져 있다 할지라도 그에 대한 해석은 사람들마다 달라지게 되고 이로써 본질을 발견하고자 하는 과정도 사실상 본질을 새롭게 창조하는 과정이 된다. 더욱이 본질이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면 본질은 발견될 수 없고 창조될 수만 있다. 결국, 본질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는 것이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나 존재자가 존재에 앞선다는 들뢰즈의 초월론적 경험론은 이 대목에서 중요하게 음미해 볼 만하다. 만일 본질이 이미 주어져 있다고 주장하려면 이 둘을 반드시 넘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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