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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진 Jan 13. 2019

18. 사이비 용기와 가짜 사랑

의리와 인정은 사람을 최선을 다하게 만든다

사이비가 세상을 현혹시킨다면, 내가 스스로 가짜가 될 수 있음도 조심해야 합니다. 초한지의 영웅 한신과 유방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나눴던 대화 내용 중에 필부지용(匹夫之勇), 부인지인(婦人之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신이 항우를 평가하면서 한 말입니다.


"항우가  성내어 큰 소리로 꾸짖으면 천 사람이 모두 엎드리지만, 어진 장수를 믿고서 병권을 맡기지 못하니, 이는 단지 필부의 용기일  뿐입니다. 항우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공경스럽고 자애로우며 말씨도 부드럽습니다. 누가 병에 걸리면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나누어줍니다. 그러나 부리는 사람에게 공이 있어 마땅히 봉작해야 할 때에 이르러서는, 그 인장이 닳아 망가질 때까지 차마 내주지  못합니다. 이것은 이른바 아녀자의 인(仁) 일 뿐입니다." 《사기》 <회음후열전>


항우는 초나라 귀족 출신입니다. 힘도 장사고, 싸움도 잘합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제일 앞장서서 싸우는데, 따를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작 장수들에게 지휘권을 맡기지 못합니다. 자신이 제일 잘하니까 자신이 직접 해야 성이 풀립니다. 장수들에게 믿고 맡기지  못하니, 어진 장수들이 모여들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한신은 필부의 용기일 뿐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초한지에서 결국 항우의 목을  베는 사람은 한신입니다. 그런 한신이 유방에게 가기 전에 항우의 부하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잘난 맛에 사는 항우에게서 발탁될  일이 없었습니다. 천막을 지키는 문지기만 하다가 유방에게 넘어온 것입니다.


항우는 귀족 출신답게 예를 갖추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매너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태도가 자애롭고, 말씨가 부드럽습니다. 귀족 출신답게 했겠지요. 병사들이 병에 걸리면 눈물을 흘리고, 음식을 나눠주니, 병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습니다. 그러나 정작 장수들이  공을 세워서 포상을 할 때, 땅이든 재물이든 무언가를 주어야 할 때는 아까워서 주지 못합니다. 자신이 포상을 한다는 도장을 찍어야 하는데 줄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그 도장이 다 닳아 망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신은 아녀자의 인일뿐이라고 평가절하했습니다.


우리도 살면서 용기가 필요할 때, 인정이 필요할 때, 항우처럼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필부지용(匹夫之勇)과 부인지인(婦人之仁)이 안되려면 진심이어야 합니다. 형식상, 예의상 갖추려고 할 때 우리는 필부지용(匹夫之勇), 부인지인(婦人之仁) 하게됩니다. 마음에는 없는데, 상황상 그렇게 맞춰줘야 주는 것은 결국 티가 나게 됩니다. 그 바닥이 쉽게 보인다는 것이죠. 항우의 본심을 한신에게 들킨 것처럼.


그러면 진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의리와 인정은 사람을 최선을 다하게 만든다." 《인물지》


사람이 사랑을 받으면 자신이 가진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지요. 삼국지의 유비의 측근들이 그러합니다. 유비는 조조처럼 명석하지 않았습니다. 유비는 단지 그들을 사랑으로 대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뿐이어도 난세의 간웅 조조와 견줄만한 세력을 가지게 된 것은 유비의 사랑을 받았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愛)는 경(敬)보다 적어서는 안된다. 만약 애(愛)가 경(敬)보다 적으면 청렴하고 절개 있는 사람은 따르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함께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애(愛)가 경(敬)보다 많다면 비록 청렴하고 절개 있는 사람들은 기뻐하지 않을지라도, 사랑(愛)을 접한 자는 죽을힘을 다할 것이다." 《인물지》


실제 역사에서 나타납니다. 한신이 제나라를 정벌하고, 천하의 1/3을 차지하게 되었을 때 그의 참모 괴통이 유방을 배반하고, 나를 세워서 천하삼분지계, 즉 삼국 경쟁을 하자고 말합니다. 이때 괴통이 며칠을 설득하지만 한신은 선뜻 결단하지 못합니다.


결국 한신은 괴통에게 "유방은 나를 후하게 대해줍니다. 자기의 수레로 나를 태워주며, 자기의 옷으로 나를 입혀주며, 자기의 먹을 것으로 나를  먹여주었습니다. 내가 들으니 ‘남의 수레를 타는 자는 남의 근심을 제 몸에 싣고, 남의 옷을 입는 자는 남의 걱정을 제 마음에  품으며, 남의 밥을 먹는 자는 남의 일을 위해서 죽는다.’고 합니다. 내 어찌 이익을 바라고 의리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결국 유방의 사람을 품는 능력, 애(愛)로써 품은 한신은 재물과 권력의 유혹 앞에서도 배반하지 않게 만듭니다.



당태종이 쓴 《정관정요》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사랑의 감정은 어디서 오는가? 누구나 인간다운 사람을 좋아한다. 인간다운 사람이란 바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인간이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 남의 한계도 인정하게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를 가까이 대한다." 《정관정요》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 사람을 애(愛)로써 대하는 것, 그 시작은 솔직함입니다. 자기 자신에 솔직함. 자기 자신에게 떳떳함. 그래야 자신의 한계도 인정할 수 있고, 인간다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좋아해 줄 때 나도 사람들을 애(愛)로써 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사기》《인물지》《정관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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