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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진 Jan 13. 2019

19. 먼저 깨우친 사람이 실천한다

배운 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은 없는가

    "나는 날마다 다음 세 가지 점을 반성한다. 남을 위하여 일하면서 진심을 다하지 못한 점은 없는가? 벗과 사귀면서 신의를 지키지 못한 일은 없는가? 배운 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은 없는가?" 《논어》<학이>


《논어》에서 첫 번째로 나오는 문장입니다. 스스로를 반성한다는 것은 '수신'의 관점에서 중요합니다. 상황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반성함으로, 자신은 더욱 성찰하고, 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반성을 하는 내용들 중에 마지막 내용이 의미심장합니다. 전수받은 것 중 익히지 못한 것은 없는가? 혹은 배운 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은 없는가? 혹은 전하기만 하고 행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전불습호(傳不習乎), 한자어다 보니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문장이 됩니다.


첫 번째 "전수받은 것 중 익히지 못한 것은 없는가?"

가장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학문을 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배우는 사람은 계속 익힘으로써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갑니다. 익(翼)의 한자풀이는 새가 날갯짓을 하는 형상입니다. 새가 처음 태어나서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날갯짓을 수백, 수천 번 하면서 익혀야 합니다. 그래야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에 통달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복적인 익힘으로 통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새의 날갯짓처럼 수없이 반복하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결국 꾸준하게 노력하면 통달할 수 있고,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의 것으로 됩니다.


두 번째 "배운 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은 없는가?"

배워서 먼저 알았다면,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배운 사람의 의무입니다.  

"공자는 '어째서 원대한 것을 지행해서 말은 실천을 고려하지 않고 실천은 말을 돌아보지 않으면서, 말만 했다 하면 '옛사람들은 어떠했는데, 옛사람들은 어떠했는데'라고 하는가? 또 어째서 행동함에 거리낌 없이 나아가지 못하고 외로움을 자처하는가? 이 세상에 났으면 이 세상에 맞추어 살아가고 남들이 선하다고 하면 될 텐데'라고 하면서 속내를 감추고 세속에 영합하니 이러한 자가 바로 향원이다." 《맹자》<진심下>


먼저 안다는 것은 그 앎을 퍼트려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퍼트릴 것인가. 실천과 행동으로 몸소 보여주어야 합니다. 명령으로 가르치고, 말로 관념적인 해석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에서 그 앎의 효용에 대해서 직접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배운 사람은 실천으로서 자신의 도를 드러내는 의무가 주어집니다. 그래서 <맹자> 이루 편에 보면, 탕왕을 도와 상나라를 세운 이윤은  "하늘이 백성을 탄생시키면서, 먼저 깨달은 사람으로 하여금 나중에 깨닫는 사람을 일깨우도록 했다. 나는 하늘이 태어나게 한 백성 중에 먼저 깨달은 사람이다. 장차 인의(仁義)의 도(道)로써 이 백성을 일깨우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세 번째 "전하기만 하고, 행하지 않은 것은 없는가?"

두 번째와 비슷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배워서 실천하는 것과, 말로만 전하고, 행하지 않는다는 미묘한 차이. 배웠는데 가만있는 것은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이어서 수동적, 소극적입니다. 그러나 말로만 떠든다는 것은 좀 더 능동적입니다. 더 나쁘다. 말로 떠들면서 여론을 형성하는데 직접 행동하지 않으니 더 나쁜 영향을 끼칩니다. 조직을 운영하고, 다스리는 대서 행함이 없이 말로만 떠들어 여론을 만드는 것은 독약입니다. 행함이 없는 여론의 폐해에 대해서 조조가 공융을 제거했고, 진시황이 분서로 잡학을 정리했습니다.


더 나아가 본인에게도 나쁜 결과를 초래합니다. 조괄의 고사, 마속의 고사에도 보이듯이 병법에 능하고, 언변이 화려한 사람들이 결국 나라를 패망하게 만듭니다. 조괄과 마속은 실전 경험은 없이 공부를 잘해서 병법에 능했고, 언변이 화려해서 뭇사람들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조괄은 조나라 50만 대군이 몰살당하게 만들어 조나라를 패망시켰습니다. 그리고 마속은 제갈량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단독으로 행동하다가, 북벌전쟁을 철수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맹자》<이루>


 <인물지>에서 사이비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제시한 것도 책임감의 여부입니다. 책임을 지는 사람, 즉 행동하는 사람들은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것도 책임질 것이 없는 사람은 몸이 가볍고, 말이 거침없는 것입니다.


학문의 목표는 행함, 실천에 있는 것

저는 세 번째 해석이 더 와닿습니다. 공자의 《논어》 첫 페이지에 3가지의 반성, 그중에 "전불습호"(傳不習乎)에 대한 내용은 의미심장합니다. 《논어》를 단순히 공자왈 하면서 어려운 말하는 책으로 느꼈다면, "전불습호"(傳不習乎)의 의미를 되새겨봅시다. 배운다는 것, 앎에 대한 사회정치적 의미, 지식인의 태도와 자세에 대해서 주문하고 있습니다. 수신의 가치가 자신을 헤아리며 겸허해지는 것이라면, 학문의 목표라는 것은 행함. 실천에 있는 것. 즉 사회적 효용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솔선수범해서, 따르게 하라
 "군주가 솔선수범하오. 군주답게 처신하고 나서 신하에게 신하 다운 체세를 요구할 수 있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처신하고 나서 자식에게 자식 된 도리를 다하라." 《논어》<안연>


우리가 흔히 정명(正名)사상이라고 알고있는 논어의 문구입니다. "군주가 군주답고, 신하가 신하다운", 스스로의 명(名)이 바로세우는 것을 요구한 것이지요. 그러나 공자의 뜻은 더 깊습니다. 공자는 윗 사람이 모범을 보여야 아랫사람이 이를 존경하고 따르게 되고, 윗사람도 아랫사람에게 그 이치에 맞는 자세를 요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즉, 자신의 위치에 맞는 행동, 솔선수범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논어》《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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