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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진 Jan 13. 2019

06. 불편한 친절도 있습니다

촌스러움과 형식적인 것 사이

우리는 흔히 불편한 친절을 마주합니다. 친절인데도 왜 불편하게 할까요. 형식이 지나치면 불편을 초래합니다. 선의이지만 불의로 다가옵니다.


 "바탕이 겉모습을 넘어서면 촌스럽고, 겉모습이 바탕을 넘어서면 형식적이게 된다." 《논어》<옹야>


공자는 바탕이 겉모습을 넘어서는 것, 즉 촌스러운 것이 형식적인 것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말은 투박하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것, 말은 공손하지만 불편을 느끼게 하는 것, 여러분은 어떤 것이 더 낫습니까?

내가 표현하는 형식에 담긴 내용이 부족하면, 표현하지 않는 게 낫다는 말입니다. 즉, 진심이 담기지 않으면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게 낫습니다. 내가 마음이 동하지 않는데, 굳이 친절하게 표현을 하려는 것은 왜일까요?

자기중심적인 친절


형식이 지나치게 되는 그런 모습, 불편함을 전달하는 친절의 원인은 자기중심적인 태도 때문입니다. 결국 자기만족을 위해서입니다. '나는 이렇게까지 한다.'일 뿐 일종의 자기과시이기도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극단으로 치우치면 폭력으로 발전합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너는 왜 그래?' 여기까지 가면 관계는 파탄 나는 것입니다.


이타적이여야 진심일 수 있다


옛날에 사슴과 호랑이가 사랑에 빠졌습니다. 사슴은 호랑이에게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신선한 야채를 주고, 호랑이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양을 잡아서 줍니다. 이럴 때 사랑은 파탄 납니다.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것 아닙니까. 자기중심적일 때 상대를 살피지 못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 이런 비극이 생깁니다. 진심은 이타적일 때 가능합니다. 상대에 충분히 감정이입할 수 있어야 불편하지 않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배려한다는 것은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좋은 것이 좋은 것입니다.


바탕을 더 채우거나, 겉모습을 거두거나 해야 합니다. 바탕을 채우는 것은 마음이 동하는 것일 테고, 겉모습을 거두는 것은 상대를 살펴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둘 다 상대를 잘 살펴야 가능합니다. 물론 여러 사람을 겪어보는 경험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나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입니다. 이런 능력은 일시적으로 생기지 않습니다. 쌓이고, 쌓여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집니다. 군자의 도가 다 이런 식입니다. 어렵지 않고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반복적으로 훈련하지 않으면 요행으로 얻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 얼마나 정직합니까.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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