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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진 Feb 17. 2021

쿠팡,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 박탈

미국의 새로운 현지화 전략 ①

쿠팡이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을 위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언론에서는 최대 60조에 달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고 한다. 쿠팡이 왜 코스닥도 아니고, 나스닥도 아닌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했을까에 대해서 언론들이 여러 기사들을 냈다. 쿠팡에 투자한 소프트뱅크 손정의가 3조 투자로 21조를 벌었는지, 쿠팡 기업가치가 얼마가 올라갔는지, 그리고 쿠팡과 경쟁하는 다른 e커머스의 주가 상승까지..



그런데 나는 이번 상장 이벤트에서 쿠팡의 승부수는 상장 신고서에 적힌 쿠팡 이츠 배달원들을 노동자 아님을 명시한 것이라 본다. 사실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문제는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어려운 과제이다. 쿠팡의 상장 신고서에 적인 독립 계약자라는 표현은 미국식 표현으로 우리말로는 특수고용 노동자이다.(미국도 우버 등 플랫폼 노동자들의 지위 문제에 대한 논란이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에 대한 개별적인 법원 판결은 있다. 그러나 플랫폼 노동자들마다의 노동조건이 상이하기 때문에 이를 일괄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변화된 산업구조에 맞춰서 입법이 필요하다. 그런데 입법을 해야 할 국회에서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일단 고용노동부는 법원 판결만 기다리면서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플랫폼 노동자들은 죽어나간다. 특수고용 노동자, 독립 계약자로 분류되는 택배노동자는 작년에만 16명이 과로사로 죽었다. 자본이 이윤만을 쫓아서 운영하는 건 자본주의에서 당연하다. 그런데 이윤만 쫓다면 노동환경은 무시되고, 노동자는 죽음으로 내몰리게 된다. 그래서 노동조합을 통해서 노동법에서 보장한 권리를 행사해서 노동자에게 유리한 노동환경과 조건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아서 노동법의 보호를 못 받는다.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와, 그 제도를 활용해 이윤을 창출하는 자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새로운 산업구조 변화,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서비스의 확대로 인해서 급성장하고 있다. 산업구조가 변화하면서 생겨난 직종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들의 지위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지 합의된 적이 없다. 이제 합의해야 한다. 합의를 거치지 위해서는 갈등, 투쟁, 토론의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모두 자기 이익, 이해관계를 걸고 합의에 이르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쿠팡은 이걸 아주 간단하게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 신고서에 몇 문장으로 정리했다. 이 모든 합의를 건너뛰고 미국 표준으로 내리 먹이는 식이다. 


쿠팡은 분류 작업하던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기록적인 한파임에도 핫팩 1개 나눠주고, 보온병도 개별적인 보온용품도 가져오지 못하게 했다. 그러고 나서 기사화되자, 핫팩 1개에서 2개로 늘렸다고 강조했다. 이게 모두 '비용' 처리된다. 쿠팡의 미국식 사고이다. 앞선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문제 또한 '비용' 문제이다. 수수료 경쟁을 시키면서, 싼값에 부려먹어야 하는데 노동자성을 인정받으면 '비용'이 발생한다. 이 '비용'을 줄이는 것이 미국식 '혁신'이고, 미국식 '표준'이 된다. 


물론 미국 내에서는 우버 기사들이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미국 사정도 만만치 않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늘어나는데 이들의 지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전 세계에서 풀어야 하는 과제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돈을 버는, 미국에 본사를 둔, 미국인들이 운영하는 쿠팡이라는 기업이,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박탈한 채로 뉴욕 증권거래소 상장 신고했다. 이제라도 우리가 플랫폼 노동자들의 지위를 합의하고, 쿠팡이 우리의 제도에 따르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냥 미적대고 있는 사이에 미국 기업이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박탈이 새로운 표준이 되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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