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광진 Jan 13. 2019

04. 모든 삶의 경우의 수, 《주역》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삶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기도하고, 주님을 찾으면, 어느 순간에는 길을 열어주신다."


어머님 살아오신 이야기를 담담하게 해주시면서 마지막에 나에게 해주신 말씀입니다. 우리 집은 IMF 이후 폭삭 망해서, 지하 단칸방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의 온갖 고생과 노력으로 지금의 우리 가정이 있게 만들었습니다. 어머님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어머님의 삶에서 '주님'의 보살피심이 크게 차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역》이 생각났습니다.


《주역》은 점괘로도 알려져 있지만, 64개의 괘사, 그리고 각 괘사에 6개씩의 효사, 즉 384개의 효사에 대한 풀이는 인간사의 흥망성쇠, 기승전결을 담고 있습니다. 《주역》 효사 풀이를 읽다 보면 인문서적입니다. 공자도 《주역》의 죽간이 3번이나 떨어질 때까지 읽었다고 하니,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주역》의 특징은 가장 좋은 괘사의 마지막 효사는 나쁘게 읽힙니다. 왜? 지금 제일 좋으니까 내려갈 일, 즉 나쁠 일만 남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제일 안 좋은 괘사의 마지막 효사는 좋게 읽힙니다. 마찬가지로 더 나빠질 것이 없고 앞으로 좋아질 일만 있기 때문입니다.


《주역》에 제일 위태로운 박괘를 봅시다.


"커다란 과일이 먹히지 않으니, 군자는 수레를 얻고 소인은 집을 헐리리라."


박괘는 6개의 효중에 모두 음효이고, 마지막 1개만 양효입니다. 마지막에 남은 양효는 위태롭습니다. 자신마저 언제 음효로 바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를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고도 합니다. 초겨울 날 낙엽도 다 떨어진 나무에 열매 하나 달려있는 형국입니다. 그나마도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흔히 우리는 그런 상황을 막다른 곳에 몰린 상황이라고 합니다. 분명히 좋은 괘는 아닙니다. 그러나 괘사가 흥미롭습니다. 군자는 하나 남은 과일을 먹지 않습니다. 씨과실이기 때문입니다. 내년 농사를 위한 종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군자는 수레를 얻습니다. 그러나 소인은 집을 헐린다고 합니다. 그 하나 남은 씨과실마저 먹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당장의 어려움을 못 참고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행동해서, 결국 집을 헐리게 된다는 경고입니다.


박괘는 양효가 위태로운 괘사이지만,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앞으로 좋은 괘사를 불러오는 희망의 괘사가 됩니다. 낙엽도 다 떨어지고, 열매하나 위태롭게 달린 형상을 신영복 선생님은 거품을 거둬내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 과거의 거품과 찌꺼기를 벗겨내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겪는 어려움, 궁지에 몰리는 극한의 상황은 우리의 거품을 걷어내고, 나를 단련시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맞이할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더 나빠질게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좋은 일만 남은 것 아닌가요, 결국 생각하는 차이입니다. 어디를 바라볼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군자는 미래를 보기 때문에 종자를 삼고, 소인은 현재만 보기 때문에 씨과실을 먹어버립니다. 《주역》은 음과 양이 각각의 자리가 있지만, 자기 자리를 잃으면 안 좋게 봅니다. 각 효사는 점점 좋아지다가 다시 나빠지다가, 순환합니다.


우리 인생사도 결국 그런 것 아닌가요? 기복이 있고, 기승전결이 있습니다.지금 어렵더라도 돌아보면, 한때가 될 것입니다. 맹자가 말했습니다.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맡기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육체적으로 단련시키고, 육신을 굶주리게 하고 궁핍하게 하며, 그가 하는 일을 뜻에 어긋나게 만들어서 무서운 역경에 빠뜨린다.그렇게 함으로써 그가 분발하여 강한 인내력을 가지고 능력을 키워서 큰 임무를 맡게 하도록 하는 것이다." 《맹자》 <고자下>


맹자의 말을 뒤집어보면 하늘이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사 그런 시련 다 버텨낸 사람이 결국 큰 사람이 되는 것 아닌가요? 누구에게나 시련은 옵니다. 삶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다시 기회는 옵니다. 그 기회가 언제 어떻게 오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반드시 옵니다. 결국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필요한데, 그게 우리 어머님의 경우는 '주님' 이었고, 공자는 《주역》에 대한 믿음이었을 것입니다.


시련이라는 것은 사람을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그를 강하게 단련시키기도 합니다. 대신 자신의 버팀목, 그것을 무엇으로 찾을 것인가는 본인의 삶의 숙제일 것입니다.



《주역》《맹자》

매거진의 이전글 03. 승리의 조건은 스스로 창조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