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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작가 Apr 21. 2017

정장, 내 안의 중2병.

왜 주머니에 손을 넣게 되는가.


  필자는 키가 큰 편이다. 그래서 조금만 고개를 숙이거나 어깨를 움츠리면 구부정해 보인다. 거기에 그다지 환하지 않은 인상이 더해져 남들로부터 "건들거린다"라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런 부정적인 시선이 싫어서 강박적으로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는 버릇이 생겼다. 걸을 땐 런웨이 위의 모델처럼 1자 걸음을 유지하고, 허리를 필요 이상으로 꼿꼿이 세우고 다닌다. 의자에 앉을 땐 엉덩이를 끝까지 밀어 넣고 손은 무릎이나 책상 위에 가지런히놓는 편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나도 모르게 건들거리는 자세가 될 때가 있다. 바로 군복을 입을 때와 정장을 입을 때다. 전자는 ‘세상이 다 내 발 아래 있는 것 같던’ 말년 병장의 기개를 몸이 기억해서 일 것이다. 하지만 후자는? 군대로 치면 아직 훈련병 딱지도 떼지 못한 사회초년생이 왜 정장만 입으면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짝다리를 짚게 되는 것일까. 오랜만에 찾아온 따뜻한 봄볕을 쬐며 걷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 깊숙이 손을 찔러 넣은 채로.


  나름대로 이유를 추측해본 바, 세 가지 정도를 용의선상에 올릴 수 있었다. 첫 번째 용의자는 미디어였다. TV나 영화에서 조폭이나 비리 정치인, 부도덕한 기업가를 묘사할 때 그들의 의상은 언제나 정장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삐딱한 사상을 몸짓에 담아내곤 한 것이다. 그런 장면에 노출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모르게 따라 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두 번째 용의자는 뱃살이었다. 삼십 대를 목전에 둔 평범한 대한민국 남아답게 볼록하게 나온 배를 얇은 셔츠로는 가리기 힘들었다는 것. 때문에 자연스럽게 허리를 굽히고 어정쩡한 자세로 걸어 다녔던것은 아니었을지.


  세 번째용의자-그리고 범인이라고 확신한다-는 정장 그 자체다. 남자 몸의 실루엣을 가장 드라마틱하고 아름답게 드러내는 수트의 섹시미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을 때 더욱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왠지 모를 불량한 몸짓, 껄렁한 태도, 날렵한 실루엣이 버무려져 최고의 멋을 만들어낸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느슨한 넥타이와 주머니에 손을 넣은 단정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 유리창에 비칠 때 왠지 모르게 맘에 드는 경우가.


  뒤늦게 발견한이런 중2병 같은 모습이 싫지만은 않다. 나쁜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여자의 심리가 혹시 이런 것일까. 그래서 뭇 여성들은 남자의 정장 입은 모습을 섹시하다고 표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뭐든지 과유불급이라 했다. 그런 ‘척’ 멋을 부리는 것과 ‘꼴불견’이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우리는 항상 유념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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