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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작가 May 10. 2017

색깔놀이

한정판의 다른 이름

  오늘 출근길에 우연히 광고를 하나 접했다. 신형 아이폰7의 리미티드 에디션 레드 컬러 제품이 출시된다는 내용이었다. 리미티드니, 에디션이니 뭔가 엄청나고 복잡할 것 같지만 실은 그냥 '빨간색' 아이폰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광고 하단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품절 임박". 그리고 실제로 빨간 아이폰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재화와 기호를 소비하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주변에는 많은 '한정판'들이 있다. 보통의 제품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버전의 제품들. 이런 것들은 어김없이 사람들의 물욕을 자극하곤 한다. 비록 마케팅의 일환일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한정판들의  보다 나은 성능과 디자인에 어느 정도 '납득할만한' 만족감을 느끼며 흔쾌히 웃돈을 지불한다.



  이러한 행동(추가 비용의 지불)의 저변에는 "더 나은 제품이니까 만들 때 더 돈이 들었겠지" 하는 생각이 깔려 있다. 실제로 기업이 한정판 제품을 만들 때에는 단가가 높은 좋은 재료를 사용하거나, 수작업을 한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개발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리미티드 에디션 제품의 높은 가격에 정비례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분명히 일반 제품보다 나은 점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아이폰 레드 컬러 에디션처럼, 요즘 한정판이랍시고 나오는 제품들 중에는 그저 '색깔'만 바꿔서 내놓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자동차 회사들은 '피아노 블랙'이니 '샤이닝 블루'니 하는 이름을 붙인, 톤이 조금 다를 뿐인 컬러가 적용된 차량을 한정판 타이틀로 출시하고 있다. 유모차 브랜드 엘레니어(elenire)는 '크라운에스 블랙에디션'을 출시했는데, 프레임과 바퀴가 모두 블랙 컬러로 제작되어 우아한 멋이 느껴진다는 설명이다. 현대카드는 제품의 기능적 차별성보다는 카드 곳곳에 색깔을 넣는 일명 '컬러 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심지어 어릴 적 나의 우상이었던 드래곤볼의 손오공과 베지터는 '초사이어인3'를 넘어 '초사이어인 블루', '초사이어인 로제', '손오공 블랙' 등으로 변태(?)하고 있다. 이쯤 되니 '색깔놀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이러한 색깔놀이 제품들은 종전의 한정판 제품들과는 달리, 일반 제품과 별다른 기능적 차별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가격에 판매된다는 것이다. 좋게는 창조경제로, 나쁘게는 장삿속이라고 할 이러한 컬러마케팅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그것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분명한 점은 이러한 색깔놀이가 여전히 잘 팔린다는 점이다.



  그런데 색깔을 다르게만 하면 잘 팔릴까? 단기적으로는 그럴지도 모른다. 얼마 전 획기적으로 출시된 '옐로우 수박'을 기억하는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그 인기는 '반짝'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별다를 것 없는 수박의 맛에 금세 실망했고 더 이상 비싼 옐로우 수박을 사지 않았다. 즉, 장기적으로 차별화된 효용을 주지 못하는 단순한 컬러 마케팅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빨간 아이폰을 사기 위해 줄을 길게 선다. 이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만약 애초에 아이폰7의 기본 컬러에 레드가 포함되어 있었더라도 지금과 같은 품귀현상을 일으켰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요컨대 중요한 것은 컬러가 아닌, '이번에 사지 못하면 앞으로 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과 '오직 소수만이 가질 수 있는 제품'이라는 차별성, 즉 한정판의 한정적 속성이다. 단지 그러한 한정성이 컬러와 결부되어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한정된 컬러이기 때문에 사는 것이지, 컬러 자체가 미치도록 좋아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려스러운 점은 기업의 전략은 나날이 날카로워지고 있고 사람들은 점점 둔감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가 좋아서 사는 거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매 시즌마다 출시되는 '신상 컬러' 제품에 혹 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그것이 한정판 컬러라면? 우리의 지갑은 그러지 않아야 할 상황에서도 너무나 쉽게 열려버릴지 모를 일이다.


  이 장황한 논의를 필자는 '색깔'에 한정했지만 사실 한정판 전략은 무한히 많은 영역에 활용 가능하다.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트래디셔널 럭셔리 브랜드 구찌(GUCCI)는 뱀과 호랑이, 벌을 가방에 수놓았고, 프라다(PRADA)는 미술 작품을 붙여넣기 하고 있다. 당연히 시즌 한정판이다. 물론 한정판 제품이 가지는 희소성은 높이 살 만 하며,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자신의 심미적 취향에 따른 욕구에서 비롯된 행동인지, 아니면 기업의 얄팍한 상술에 의한 것인지 한 번쯤은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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