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작가 Apr 26. 2017

명품에 관하여

소비사회에서의 명품 소비에 관한 고찰


  주말에 현대백화점에서 지인을 만나기로 했다.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김에 백화점 구경이나 하기로 했다. 2층 해외 명품관에서 돌아다니기에(그런 사람들이 보기에) 다소 남루한 차림새였지만 마음속으로 Yolo를 외치며 매장을 둘러봤다. 아직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날씨였지만 벌써부터 반팔 티와 반바지 등 여름 상품들을 팔고 있었다.
  
  걔 중 꽤나 심플하고 단정해 보이는 소위 '칼라티'가 있기에 친절한 점원 분들의 안내를 받고 입어 보았다. 뭐, 썩 괜찮아 보이긴 했으나 가슴팍에 박힌 영롱한 브랜드 로고를 제외하면 큰 차별점은 없었다. 얼마냐고 여쭤봤더니 친절한 미소와 함께 "62만 9천 원입니다^^"라고 하시기에 곱게 벗어서 제 자리에 두고 나왔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현대사회를 '소비사회'로 규정하고 있다. 현대사회의 소비 형태가 단순히 상품을 소비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품이 지닌 기호, 즉 '상징'을 소비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면 직물로 된 피케이 셔츠 한 장이 대학생 한 달 생활비보다 더 비싼 이유는 옷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효용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 효용이란 것도 실질적으로 제품 자체의 질에서 비롯된다기보다는 브랜드가 가진 상징성에 기인하는 바가 클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동차나 컴퓨터처럼 기능상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닌 단순한 카라티 한 장이 그만큼 비쌀 이유가 있을까.

  물론 그러한 상징을 소비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자유주의 국가에서 자기 돈 자기가 얼마든지 쓸 수 있다. "내가 명품이 좋은데 어쩔 거냐"라고 하면 할 말 없다. 그런데 한 가지 묻고 싶은 건 "진짜 당신이 그게 좋아서 좋은 거냐, 아니면 좋아한다고 믿게 만들어진 것이냐"라는 거다. 

  광고마케팅을 전공한 필자의 견해로 추측컨대 90% 이상의 사람들은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기업의 마케팅 전략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마틴 린드스트롬의 <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를 한 번만 읽어봐도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소위 명품이란 브랜드들을 '숭배'하는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나마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H사나 B사 정도라면 모를까, 해괴망측한 디자인(만화에서나 보았음직한 형형색색의 라쿤털이 달린 야상점퍼나 외계인이 입을 것 같이 긴 팔에 뭐라고 휘갈겨 써놓은 듯한 프린팅 티셔츠를 본 적 있을 것이다) 을 자랑하는 '갑툭튀' 브랜드들이 성행하는 것을 보면 마케팅 전략이 얼마나 치밀하게 작용하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대개 이런 브랜드는 짧게 '치고 빠지면서' 높은 단가에 물건을 판매한다. 수명이 길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편의상 명품이라고 썼지만 명품과 사치품은 구별되어야 한다.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고도의 훈련을 받은 장인들이 손으로 만드는 진짜 명품과, 사람들의 허영심을 자극해 단타로 팔아먹는 공장 베이스 사치품들은 그 근본 자체가 다르다. 

  뭔가 필요 이상으로 분개한 것 같다. 명품에는 죄가 없고 그것을 소비하는 일도 결코 비난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왕에 산다면 알고 사자. 그 브랜드가 어떤 가치와 정체성을 지향하는지, 내가 정말로 이 브랜드의 충성 고객이 될 만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혹시 모르겠다면 헬로우젠틀을 이용해 보는 것도..


작가의 이전글 지하철 신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