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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러치타임 Aug 18. 2021

만만한 게 매력이다.

<내가 사랑한 B급>


만만한 게 매력이다. 매력이 널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만만함’ 또한 매력이라는 말이다. 만만함이야말로 모든 사람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만만함은 솔직함의 다른 얼굴이며, 또 다른 호의이다. 가면 따윈 개나 주고 나를 내려놓는 만만함이란, 마치 상대방을 위해 내 마음을 레드 카펫처럼 깐 다음, ‘사뿐히 지르밟고 가시옵소서~’하는 일종의 ‘무거운 배려’다. 


   인간관계에서도 아주 잘 드러난다. 이를테면 기리보이의 ‘을’이라는 노래에는 이렇게 표현한다. “이런 적은 없었어, 내 사회생활에서도 내 손목에 시계를 차면 자신감이 넘치니까 이럴 수는 없어서 난 저럴 수도 없었어 날 구속하지 말어, 가끔 자유롭고 싶어”- 그러니까 ‘나 이런 사람이야~’가 저 깊디깊은 심층 플롯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말이다.


   자신이 분명 이런 대우를 받을 사람이 아닌데, 이제 원인을 찾기 시작한다. “아마 어깨가 좁아서였을 거야. 아마 성격이 물러서였을 거야. 허구한 날 장난감이나 만지면서 있으니까 어린애로 보는 거야 날.” - 만만함에 대한 이유를 자신에게 찾는다. ‘어깨가 좁아서일까? 아니야, 내가 성격이 물러터져서 그럴 거야, 내가 피규어 같은 것을 만지면서 노니까 나를 어린애 취급’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그런 이유 때문일까? 피해의식은 이제 자기 방어 기제로 발동되며 경고하기 시작한다. “내 책꽂이 속엔 절권도 책. 인마 나도 어릴 때 검도 좀 했지. 도복 입고 머리에 호구까지 쓰고. 호구가 돼버렸네, 윽, 윽” - 현재 노랫말의 주인공은 경고를 시작하다가 재빨리 현실 자각 타임으로 돌아온다.


   그 언젠가 (구) 여자 친구(현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불의를 굉장히.. 잘 참아..” 지금 생각하면 그보다 찌질할 수 없었다.(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녀는 해맑게 웃어주었고 나의 “찌질 병맛 개그 코드”는 먹혀들어갔다. 다만 그 사람이 좋을 뿐인데, 조금 더 재미있게 해주고 싶을 뿐이었다. 대개는 이런 개그코드를 사용할 시 연애 전선이 순탄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을’스러운 마음이 왠지 정감이 간다.     


   사랑 앞에 쿨한 사람이 없다고 했던가? 기리보이의 가사는 이 남자의 원망 섞인 마음을  분노가 폭주하듯 표현한다. “그냥 너의 말을 잘 듣고 있어 난 (ay) 근데 칭찬 한 번 안 해주네 뻔한 (뻔한) 그 한 마디가 너무 어렵나 봐 (yeah)” - 만만함을 내어준 대신 헛헛함을 대가로 받은 마음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원망이 한가득 녹아져 있다.


   그런데 나빠도 너무 나쁜 여자를 만났나 보다. “말을 잘 듣는 건 너무 당연한 거라고, 선빵 너의 그런 펀치들이 내 심장을 격파 (격파) 뽀뽀를 안 해도 뛰는 나의 허파, 시뻘게진 얼굴 나는 Deadpool(데드풀) 핸드폰을 집어던져. 나 지금 이 정도로 화가 났어.” - 최고로 화가 났지만, 티가 나는 것은 얼굴이 빨개진 것뿐이며, 이 배려 충만한 사람이 화났다고 하는 표현이 고작 핸드폰을 던지는 것뿐이다.


   왜 그랬을까? 더 사랑한 게 죄이다. 안에서 올라오는 화를 주체할 길이 없다. “나도 화낼 줄 알아. 너한테만 져주는 거야. 밖에서는 나도 한 따까리 하죠.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나도 기분 상할 줄 알아. 헤어질 때 다 갚아줄 거야~”- 이 남자가 만약 내 친구라면 쌍욕을 하면서 당장 헤어지라고 길길이 날뛰겠지만, 이 또한 한 남자의 인생에 볼 수 있는 ‘가장 신선한 날 것’이 아닐까? (물론 남성들 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존재할 법한 감정이라는 것은 나도 안다. 잘 겪어보지 못하였을 뿐이다.) 


   만만함은 더 사랑할 때 온다. 더 배려할 때 온다. 그러니 ‘만만함’을 만만하게 보지 말아야 한다. 만만함이야 말로 가장 친근하며, 팔딱팔딱 뛰는 본래의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만만함을 내어주지 않는다. 가장 뜨거운 연애도, 밍숭 맹숭한 연애도, 절친한 관계에도 기저에는 상대의 만만함이 깔려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의 모든 ‘만만함’이 빛을 발할 날을 기대해본다. 더 이상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더 배려하는 사람이 마음을 다치는 날이 그만 왔으면 한다. ‘을’들의 신박한 반란을 꿈꿔본다. 무엇보다 ‘만만하게! 맑게! 자신 있게!!  매력을 펼쳐가길 바란다. 


   - 만만한 게 매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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