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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일환 Jan 08. 2021

산전조리원도 있으면 좋겠다

영양가 있는 식사, 산전마사지, 혼자만의 시간

작년은 여러모로 힘든 한 해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생활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아이는 교육 시설에 갈 수 없었고, 아내는 둘째를 임신했고, 나는 새로운 직책을 맡게 되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가족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워라밸의 균형을 맞추며 살고 있었는데 그러한 기반들이 한 번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아내였을 것이다. 첫째를 가정 보육해야 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입덧 시기에는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메스꺼운 상태의 지속 때문에 힘들어했다. 입덧이 잦아들면서 잠깐의 평화가 찾아오기도 했지만 배는 점점 불러왔다. 임신부가 느끼는 여러 고통들이 있겠지만 그 고통을 이 글에 나열하는 것 정도조차도 그것을 겪어볼 수 없는 사람으로서 감히 해서는 안될 행동이라고 생각하여 적지 않기로 했다. 사실 아내의 가장 큰 고충은 따로 있었다. 첫째와 제대로 된 시간을 보내주지 못하는 것을 가장 힘들어했다. 아픔과 고통 같은 것을 제외하고 나면 아이들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심심함'일 것이다. 


아빠는 엄마의 빈자리를 완전히 채워주지 못했다. '아이와 시간 보내기'에서 아빠의 역할은 주로 바깥에 나가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해 외출을 할 수가 없었다. 회사의 배려로 재택근무가 시행되었지만 이마저도 새로운 직책을 맡게 되어 사무실로 출근을 해야 했다. 재택근무도 엄연히 근무인지라 직책을 맡기 전에도 일과 중에 육아에 기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기껏해야 아내가 너무 힘들어서 잠시 쉬고 싶을 때 20~30분 정도 잠시 첫째를 맡아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아내는 그것도 '엄청난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해 줬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엄청난 도움이 아니라 '최소한의 손길'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어떻게든 아내가 견뎌내 나가는 것을 그저 방관한 것만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크다. 이렇게 저렇게 10달은 훌쩍 지나갔다. 둘째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아내와 아기는 산후조리원에 들어갔다. 산후조리원에 가서야 아내는 비로소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결국 첫째가 보고 싶어 산후조리원도 예정보다 일찍 나오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내가 산후조리원에 가고 나서야 나도 마침내 모든 일을 잠시 접어두고 온전히 첫째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딸과 둘이 보낸 시간이 아주 소중하고 만족스러웠다. 왜 아내가 출산하기 전에도 그렇게 지내지 못했을까? 하고 혼자 많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는 의지가 그렇게 강한 인간은 아니다. 어떤 계기가 없으면 습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산전조리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당연히 그런 곳이 없어도 내가 잘하면 될 문제이지만 살을 빼기 위해 헬스장을 등록한다는 개념 정도로 생각해본다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출산하기 한두 달 전에는 산전조리원에 아내가 입소하여 삼시세끼 영양가 가득한 식사를 하고, 마사지도 받고, 첫째와 남편과도 보고 싶을 때만 잠깐씩 보면서 쉴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출산이란 행위는 인간이 신체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그 어떤 행위보다도 극심한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이다. 최소한 몇 주전부터는 영양과 몸의 상태를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놔야만 산후조리도 더욱 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백하자면 첫째 출산을 준비할 때는 '산후조리'라는 것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당연히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이해는 없는 상태에서 다들 한다고 하니 하는 거였다. 이제는 다르다. 두 번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조리를 겪어보니 산후조리만 할 것이 아니라 산전조리도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달라졌다. 가끔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직접 옆에서 보지 않은 남자들이 농담 삼아 '외국은 산후조리 같은 거 없던데?', '어떤 나라 여성은 출산한 당일에 찬물로 샤워하고 집에 간다던데?' 이런 이야기하는데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서 그러면 안 된다고 당부하고 싶다. 백번양보해서 이해 또는 공감할 수 없다면 그것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농담이라도 저런 말은 하면 안 된다. 일단 직접 옆에서 본 사람으로서 찬물로 샤워한다는 건 정말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지난 열 달 동안의 고생을 포함하여 출산을 하면서 신체가 쓸 수 있는 모든 근육을 한계 이상으로 사용하고, 몸에 있는 뼈들이 배구공만큼 벌어지고, 피부가 찢어지고, 엄청난 양의 출혈이 있고, 통제할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면서 수시간 동안 사투를 버렸던 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출 필요가 있다. 아기가 태어난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육아는 힘들지만 아기는 너무 예쁘다. 이렇게 예쁜 아기가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지난 시간들에 대한 기억도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만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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