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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일환 Dec 26. 2023

선택지가 있다는 착각

대화 속의 숨은 기대

잠깐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엘리베이터를 탔다.

초등학생 남자아이와 그의 엄마도 함께 탔다. 

모자의 대화를 가만히 들어보니


엄마: 공부하고 밥 먹고 축구할래? 축구하고 밥 먹고 공부할래?

아들: 축구

엄마: 넌 맨날 너 하고 싶은 것부터 하려고 하더라

아들: 공부도 한다고 했잖아

엄마: 하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 그렇지. 너는 맨날...(생략)


처음에는 엄마가 아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줄 알았다. 

안타깝게도 선택권이 아니라 답을 써서 제출해야 하는 답안지였다.

엄마 마음속의 정답과 아이의 답이 다르니까 비난의 폭격이 시작되었다.

나는 안들리는 척하며 듣고 있었지만 아이는 분명 내 존재 때문에 더 민망했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의 

최선은 아이의 선택권에 대한 신뢰와 격려

차선은 아이의 선택권에 대해 신뢰하지만 우려

차악은 아이의 선택권에 대해 의심하지만 격려

최악은 의심과 비난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을 할 때도 비슷한 상황을 가끔 볼 수 있다.

'내 머릿 속을 맞춰봐'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선택권을 주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답과 다르면 무시하거나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한 태도의 기저에는 '책임지기 싫음','비난받기 싫음','내가 제일 잘남'이 있는 건 아닐까?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려는 압박감과 개인의 자율성 사이의 긴장이 현상으로 드러나는 사례들은 여러 인간관계에서 볼 수 있다. 개인 자신의 의견과 선택을 표현하고자 하지만, 동시에 상사나 부모와 같은 권위 있는 인물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내적 갈등과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려면 역시 소통의 질을 높이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아들은 더는 듣기도 싫다는 듯 대꾸도 하지 않고 먼저 뛰쳐나가 버렸다.

아들이 자꾸만 멀어지는 것이 사춘기가 다가와서라고 생각할 어머니 마음의 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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