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의 탈을 쓴 월급쟁이 리더십
신뢰와 소통 없는 조직의 현주소
얼마 전 티타임 중에 다른 매니저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일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조직 전체의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 함께 인정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납득하지 못하는 일을 직원들에게 맡기는 건 정말 쉽지 않네요." 내 말에 다른 매니저는 잠시 생각하더니 얼마 전 술자리에서 다른 임원이 들려준 이야기를 인용했다.
"일을 받으면 회사에서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고 시작하는 것이 프로다."
다른 매니저의 말은 굉장히 멋있고, 마치 프로처럼 보이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실용적이진 않다고 느꼈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프로는 일을 받으면 회사에서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고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유가 없다면 배경에 대해 이해가 될 때까지 질문하고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아니면 충분한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 직원들과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는 것은 본인도 이유를 모른다는 뜻이고 그저 전달만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유를 모른 채 전달하는 것은 전혀 프로답지 않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그대로 전달만 하면 되는 단계가 되려면 먼저 신뢰가 쌓여야 하는 게 아닌가?' 물론 나도 프로라면 스스로 동기부여를 해야 하고 이유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고, 그렇게 실행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적어도 리더의 위치에 있다면 직원들이 스스로 동기부여 하지 못하는 책임은 나에게 물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다른 매니저에게 들은 이야기는 직원들 간에 선배가 후배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 매니저가 매니저에게 해야 하는 조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뢰란 단순히 말 몇 마디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인성, 역량, 평소의 행동 등 다양한 요소와 결부되어 서서히 쌓이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업무를 전달만 하고, 그 이유와 배경에 대해 제대로 소통하지 않는 사람이 지시를 내린다고 해서 "다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납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차라리 "그냥 돈 받고 일하니까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해"라는 '월급쟁이 논리'가 오히려 훨씬 설득력이 있다.
직급별로 서로의 입장은 다르고,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처우 역시 다르다. 그런데도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움직이길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리더십은 방향과 배경에 대해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리더십의 역할 아닌가?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단순히 지시를 전달하는 것 이상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역할을 하라고 더 많은 보상을 받고, 더 높은 직급에 있는 것이니까.
리더십이란 단순히 지시를 전달하거나 권위를 세우는 것이 아니다. 신뢰를 쌓고, 소통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며, 모두가 나아갈 방향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이다. 사실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구성원 모두가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이 일은 도대체 왜 하는 거지?'라는 궁금증 없이 일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 옳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