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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K Choi Nov 14. 2022

편집증(Paranoid)이 낳은 초현실주의 예술

살바도르 달리의 예술적 창조력의 원천

지난 주 주말, 나는 오랜만에 찾아온 불안과, 아무 문제도 없다-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마음 사이를 10분 단위로 오가며 편집증적 고통 속에서 발버둥 쳤다. 내가 사회적 효용이 없는 존재이고, 누군가의 옆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조건들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급격히 나를 덥쳤기 때문이다.


혹시 지금 카카오톡 친구목록과 핸드폰 연락처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내려도 마땅히 연락할 사람이 없는 외로움으로 힘든 이가 있다면, 이 글을 보고 당신과 같은 사람이 또 있다고,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편집증이 뭔데?

편집증이라는 단어에 공감이 아닌, 호기심을 가지고 들어온 분들을 위해 부연하자면, 편집증은 일반적으로 "체계가 서고 조직화된 이유를 가진 망상을 계속 고집하는 정신병"으로 여겨진다.


편집증적인 증상을 잘 나타낸 노래들이 있어 먼저 소개해본다. 쇼미더머니 역대 최고의 1분으로 평가받는 래퍼 G2의 Paranoia에 나오는 가사에는 편집증의 대표적인 예시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가끔 오는 편집증, 멀리서 누군가를 노리는 게 느껴져. 내가 볼 때는 조심성, 남한테는 의심병"

 https://www.youtube.com/watch?v=lovw4gRjXTQ


한편, 개인적으로 신곡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고등래퍼 출신의 윤진영, 애시 아일랜드의 Paranoid에서는 다음과 같은 가사에 크게 공감하게 된다.

"Im livin' in a fuckin paranoid 밤 새 나를 지켜 오늘도, ... 알지 안 일어날 걸 하지만 아무도 몰라"

https://www.youtube.com/watch?v=rMQ20mMOOuM




이처럼 다른 사람에게는 걱정할 거리도 되지 않는 무언가가,
본인에게는 이미 기정사실화된 하나의 팩트이고,
그걸 뒷받침하는 근거들을 스스로 논리정연하게 만들어
자신만의 세계에서 하나의 절대적인 규칙으로 작동하는 상황.
그걸 나는 편집증이라고 정의한다.


달리: 비이성적 상상의 세계

오늘은 나와 같이 이런 편집증적인 고통에 주기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혹은 지금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한 가지 다른 방식으로 생각의 숨통을 틔이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바로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이야기다.



초현실주의 작가로서 가장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건, 누가 뭐라해도 살바도르 달리일거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 죽은 형의 이름을 받아 살아온 정체성의 혼란, 어머니를 두고 아버지에게 성적 경쟁심을 느끼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밀레의 만종이 실은 죽은 아이를 애도하는 작업이라는 주장, 가학적인 성욕과 벌레들을 통해 나타나는 그만의 사고 체계 등... 알레고리와 에피소드가 풍성한 작가 중 하나인데, 이러한 그의 작업을 받치는 기본 사상은 그가 창안한 편집증적 비평이라는 창작 방식이다.



(*아래의 달리와 그의 편집증적 비평 방식에 대한 설명은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오진경 교수님의 초현실주의 강의록에서 가져왔음을 미리 밝힙니다!)

살바도르 달리의 편집병적-비평방법(la méthode paranoïaque-critique)은 비이성적인 정신질환을 가장함으로써 정상인과 광인, 예술적 표현과 광적인 표현 사이를 구분하는 관습의 벽을 뛰어넘어, 무한한 상상의 세계에 도달하려는 시도였다. 편집병이라는 정신질환은 사고 체계가 명료하고 질서가 있으며 창조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 망상이다. 즉 의학적으로는 비정상적인 병적 징후지만 정상인의 사고체계처럼 나름대로의 논리에 의한 체계화와 잠행성의 발전을 지속적으로 행하는 정신질환인 것이다.



달리는 이러한 편집병의 환각적이면서도 창조적인 특성을 근거로,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미술가도 정신질환을 가장하여 끝없는 상상과
논리성이 결합된 새로운 방법론을 실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기억의 영속(La Persistance de la mémoire)>(1931)


 <기억의 영속(La Persistance de la mémoire)>(1931)에서 볼 수 있듯이 달리는 광인들의 상상의 세계에나 있을법한 기묘한 이미지와 성적인 상징물들을 사진과 같은 사실적인 기법으로 그린다. 자연스러운 풍경을 배경으로 물리적인 법칙에 위반되는 물렁거리는 형상으로 그려진 시계는 마치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처럼 세밀하게 묘사되어있어, 현실과 비현실, 이성과 비이성간의 경계를 애매하게 만들며 관람자의 시각적 믿음에 혼란을 일으킨다.


...


이와 같이 치밀하고 계획적인 착시현상을 이용하여 비정상적인 논리체계를 지니며 끈질기게 진화해가는 편집병의 환각상태를 구현해낸 달리의 회화는, 광인들의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가 정상인들의 합리적인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보다 진실한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초현실주의의 믿음을 구현한 조형적 시도였다.


마무리하자면,

나는 스스로 노력한다면 지금의 위치에 머물지 않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꿈꾸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 상태로 연착륙했다. 만약 당신이 지금 편집증적인 난기류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면, 당신이 사실이라고 믿는 게 100%의 팩트가 아니라, 사실의 일부일 뿐이라는 점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냉혹한 현실에 비추어보았을 때, 부족함으로 가득찬 게 나의 민낯이라고 해도, 그게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고, 나에겐 나뿐이기에 더 잘해주자는 마음으로 맛있고 따뜻한 식사 한 끼를 스스로에게 대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심호흡을 하고, 다시 지금 할 수 있는 걸 했으면 좋겠다.


달리의 편집증에서 기인한 작업들이 우리가 평소에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새로운 계기가 되었던 것처럼, 지금 당장의 고통이 우리를 괴롭게 할 지라도, 우리는 살아있는한 다시 괜찮아질 것이며 오히려 이를 극복하고,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낼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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