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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r ming Dec 15. 2022

Hasta luego

2022년 11월 7일 & 에필로그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시간의 상대성은 여행에 있어 더 극명하게 다가온다.


숙소 골목


새벽이 되면 울려 퍼지는 젊은이들의 소음에 꼭꼭 닫아두었던 빗장을 풀어 창문을 열었다. 아침의 카탈루냐 거리는 고요하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모르는지 하늘마저 푸르기 그지없다. 야속하게.



마지막 한인 조식은 내가 좋아하는 메뉴로 가득했다. 새벽에 네타 해변의 일출을 보고 온 여자분에게로 시선이 집중된다. 그녀가 보여준 자연의 장관은 사진으로 봐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아침잠을 이기지 못해 함께 동행하지 못한 Y도 아쉬움의 목소리를 보태었다. 바르셀로나를 온전히 누리기엔 5일은 너무 짧았다.


Mercadona


조식을 먹고 Y와 Mercadona라는 대형마트에 갔다. 촉박한 비행기 시간을 뒤로하고, 이곳에 온 이유는 오로지 꿀과 꿀 국화차를 사기 위해서였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엘리베이터를 타 -1층으로 향했다. (유럽 층수 세는 법 참 독특하다.)


Hacendado는 꿀에 대한 일가견이 있는 스페인 브랜드이다. 나는 유칼리툽스 꿀과 국화차 2 상자를 샀다.  

민박집에서 매일 밤 여독을 풀어주던 잔잔한 국화향과 꿀의 단맛. 간간히 글을 쓰면서 마시는 국화차의 맛과 잔향은 바르셀로나의 추억을 상기시키곤 한다.


정들었던 숙소


다시 돌아온 숙소 앞에서 사장님을 만났다. 이 도시에 머무르는 동안 그분께 많은 도움과 위로를 받았다. 매일 정리해주시는 이부자리와 따스한 정이 담긴 조식, 친목도모를 위한 맥주 한 잔까지. 섬세하고 사려 깊은 사람에게서 받는 호의와 친절은 예민한 성격의 나를 감동시킨다. 그 도시가 바르셀로나처럼 번잡하고, 화려한 대도시일 경우에는 더더욱이.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공항


오전 9시 30분. 시간이 지체되었다. Y와 나는 공항버스를 타려고 하다가 멈추어 볼트를 잡았다. 돈도 남아겠다, 마지막만큼은 그냥 편하게 가자...  


엘프라트 공항은 역시 대도시 공항답게 넓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커서 탑승구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adios barcellona!


뮌헨으로 가는 루프트한자 비행기에 탑승했다. 내가 앉은 창가 자리 옆에는 어떤 외국인 노부부가 앉았다. 옆자리의 노부인은 고급미 넘치는 옷과 액세서리를 한 채 아이패드에 담은 영어 소설을 읽고 계셨다. 노부인에 옆에 앉은 노신사도 책을 꺼내 읽는다. '영화 속 한 장면이네.' 생각해보면 유럽 사람들은 책을 손에 끼고 다녔다. 그곳이 비행기이든, 벤치이든, 장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늘 스마트폰을 달고 살고 아이패드로 유튜브를 보는 나에게, 나아가 한국 사람들에게 이러한 모습은 다소 생경하다. 영상미디어의 편리함과 익숙함에 속아 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여운을 깨닫기 힘들다.


집에 돌아가면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까마득 잠이 든다.

잠시 후 눈을 떴더니 노부인은 나에게 물을 건넸다.




노부인 : It is your water.

(이거 네 물이야.)


나 : Thank you!

(감사합니다.)




그녀는 내가 곤히 잠든 것 같아 깨우지 않고 물을 챙겨뒀었던 것이다. 이후에 승무원이 초콜릿을 줬을 때도 나는 잠에서 헤어나질 못했고, 그녀는 다시금 초콜릿을 챙겨 내가 깨기를 기다려줬다. 도대체 얼마나 피곤했던 걸까. 영국인으로 추정되는 (water 발음이 영국 그 자체였다.) 노부부가 베푼 사소한 친절 덕분에 제법 행복한 비행이 되었다.


뮌헨


2시간 여를 지나 독일 뮌헨 공항에 도착하였다. 하늘에서 본 뮌헨은 너른 평야와 간간이 보이는 단독주택들로 한적한 정취를 드러냈다. 바르셀로나와는 전혀 다른 시골스러운 분위기에 이 도시가 궁금해졌다.


뮌헨 공항은 프랑크프루트 공항보다 확실히 작았다. 하지만 오히려 아늑하고 깔끔하다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면세점을 지나니 바와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다. 대부분 파는 메뉴는 비슷하다. 빵, 커피, 맥주, 햄버거 등.


독일 맥주와 프레즐


독일에 왔으니 독일 맥주 한잔은 먹어야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수중에 있는 유로에 tax free로 받은 3유로를 합쳤지만, 맥주와 프레즐을 사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그때 Y가 부족한 돈을 메꾸라고 카드를 내밀었다. 카드와 현금으로 나눠서 계산해도 되냐고 묻고 싶었는데 영어로 표현하기가 난감했다. 어찌어찌 직원은 내 말을 알아듣고 주문을 도와주었고, 그렇게 환전한 모든 유로를 다 사용하였다.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한마디 하자면 독일 맥주는 넘사벽이다. 스페인 맥주는 비빌 수준이 아니었다. 그리곤 다짐했다. 다음번에 독일로 여행을 온다면 옥토버페스트(뮌헨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맥주 축제)를 꼭 가야지! 짭짤한 프레즐을 안주 삼아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니 어느덧 취기가 올랐다. 다행스럽게도 입국심사는 무사히 통과되었다.


공항 티슈


공항의 모든 부분은 환경을 고려한 듯했다. 티슈를 쓴 후, 자동으로 재활용되는 Handtuch towel과 피곤한 여행객을 위한 깔끔한 수면 라운지. 역시 독일답다.


다시 긴 비행이 시작되었다. 뮌헨에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는 약 13시간 정도가 걸렸다. 저번 일을 교훈 삼아 이번에는 복도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내 옆에는 한 독일 커플이 앉았다. 여자는 나에게 남자 친구가 쓸데없는 행동을 한다면 자기가 처리하겠다는 농담을 건넸다.




나 : I got it. And if you want to go to the bathroom, tell me whenever.

(이해했어. 그리고 너네 만약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나에게 말해줘.)


독일 여자 : Thank you.

(고마워.)




대화가 잘 통하는 커플 덕분에 장시간의 비행이 한결 수월해졌다.




이번 기내식에서는 화이트 와인을 주문했다. 살짝 드라이한 맛이 고기와 제법 잘 어울렸다. 소문대로 루프트한자는 레드 와인보다 화이트 와인이 더 맛있었다.


기내식을 먹고 다이어리와 엽서를 꺼내 들었다. 일전에 바르셀로나에서 사두었던 피카소 그림엽서에 Y를 위한 편지를 끄적였다. 17일 동안 나와 함께 이베리아 반도를 여행한 그녀에게 느끼는 고마움, 미안함, 아쉬움 등의 여러 감정을 담아내니 새삼 내가 그녀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었구나를 깨달았다.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에 여행만 한 것이 없다. 함께 먹고, 대화하고, 자고. 서로의 일상적인 습관과 행동이 자연스레 노출된다. 그리고 그런 관계 속에서 나는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샌드위치


차갑게 식은 마지막 기내식 빵을 먹으며 이번 여행을 마무리할 때가 왔음을 실감하였다.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Q-코드로 재빨리 입국절차를 거친다. Y에게 엽서를 건네며 언제 올지 모르는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였다. 어느새 생긴 동지애로 멜랑꼴리 해진 기분.  


Y와 헤어지고 공항 음식점에 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려면 3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던 터라 뭐라도 먹으면서 버티기로 했다. 오랜만에 먹는 순두부찌개는 짭짤하고, 칼칼했다. 그런데 한국에 왔다는 안도감에서였을까? 꾸벅꾸벅 졸면서 밥을 먹었다.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몰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테이블에 엎드렸다. 나원참.


몰려오는 잠을 쫓으며 탑승한 집으로 가는 버스. 마취총 맞은 듯이 잠을 자고 나니 어느새 시간은 밤 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떡볶이를 포장해 24시간 만에 도착한 집. 비로소 긴 여행이 끝났다!



에필로그



휴학을 하고, 혼자서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가겠다는 의사를 내비쳤을 때 많은 지인들이 걱정했었다. '혼자서? 여자 혼자면 치안이 너무 위험하지 않니? 거기서 만나는 동행이 이상한 사람이면 어떡해?' 대충 이런 반응. 처음엔 별생각 없었던 나도 출국일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온갖 걱정에 시달렸다.


걱정은 예방을 낳는다. 평소 계획성 없이 살아왔던 나는 이번 여행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몇 개월에 걸쳐 계획하고 실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얻게 된 소소한 성취감과 자기 효능감은 23살의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먹고 놀고 즐기기만 하는 것이 여행의 본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여행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진짜 자신을 알게 되는 것처럼 나 역시 이번 여행을 통해 많은 국적의 사람들과 대화하며 조금은 성숙해졌고, 나도 몰랐던 나의 새로운 모습들을 많이 찾을 수 있었다.


끝으로 유럽 여행은 생각만큼 좋았고, 생각만큼 힘들었다. 하루 2만 보가 넘을 정도로 걸었고, 아날로그적 시스템들에 진절머리가 쳐질 때도 많았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들 덕분에 나는 경험과 가치를 얻는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눈을 질끈 감고, 비행기 티켓이라도 끊어보자. 그 이후부터는 무엇을 상상하든 훨씬 쉬워질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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