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4일
카탈루냐가 낳은 천재 of 천재 :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가우디의 생애와 건축물의 예술적인 가치를 더 잘 이해하고 싶어 한국에서 미리 가우디 투어를 신청하였다. 이른 아침에 투어가 시작되었던 탓에 민박집 사장님이 챙겨주신 간식꾸러미를 챙겨 부리나케 카사 바뜨요 앞으로 향했다.
8시 20분 카사 바트요 앞에는 여러 개의 한국 투어 업체 가이드와 관광객들이 모여있었다. 다행히 투어 정원은 10명 정도. 소규모로 함께 이동하기 좋았다.
가이드님은 가우디의 작품을 키워드를 3가지로 정리하였다. 자연, 곡선, 종교.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며, 자연과 곡선을 사랑하였다. 특히 곡선을 신의 선이라 여겨 그 당시 사용되던 직선 형태의 건축 방식을 과감히 무시하고, 곡선 형태의 건축물을 지었다. (실제로 가우디의 건축물들은 모두 불법이었다고 한다.)
첫 번째 건축물 : 카사 바트요
스페인어로 카사 바트요는 '바트요의 집'을 의미한다. 가우디는 어렸을 때 몸이 좋지 않았던 탓에 인체 해부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는 곧 그의 건축물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건물의 1~2층은 사람의 갈비뼈를 발코니는 해골을 상징한다. 특히 해골은 종교적 의미도 지니고 있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건물 지붕 위의 푸른색 세라믹은 가톨릭교의 용을 상징한다는데 아쉽게도 보이지는 않았다. 건물의 외벽은 모네의 '수련'에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점은 다소 억지스러웠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이야기 (주제인 '바다'에 맞춘 푸른 계열의 그라데이션 내부, 추팝츄스에 인수당했다는 현상황, 아마트예르 저택과의 경쟁)를 들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추팝츄스 회장은 돈도 많이 벌었을 텐데, 입장료 인하나 해줬으면!
두 번째 건축물 : 카사 밀라
카사 밀라 역시 '밀라의 집'이라는 뜻으로 금수저 밀라가 부탁해서 가우디가 지은 건축물이다. 이 건축물은 비하인드 이야기가 꽤 웃프다. 가우디의 명성을 믿고 건축을 맡겼던 밀라 부부는 공사 도중 자신들이 원하는 느낌과는 전혀 다른 집을 보고 실망했다. 종교적 요소를 건축물에 많이 담고 싶었던 가우디는 성모 마리아 상을 올리고 싶었지만, 처음의 마음과 달라진 밀라는 그의 요청을 거절하고 공사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결국 둘의 싸움은 법적 공방으로 까지 이어지게 된다. 결과는?? 예상외로 가우디의 승. 한 고집하는 가우디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일화이다. 사실 이 저택은 공공 아파트 목적으로 지어졌기에 완공 후 밀라는 임대를 받았다. 그러나 감옥같이 생긴 외관 탓에 단 3가구만 입주했다. 그 3가구의 후손들은 현재까지도 카사 밀라에 거주하고 있는 중이다. 참 존버도 이런 존버가 없다.
세 번째 건축물 : 구엘 공원
20여분 정도 택시를 타고 도착한 구엘 공원에는 엄청나게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있었다. 구엘 백작은 가우디의 오랜 친구이자 후원자였다. 구엘은 가우디에게 공원 설계를 부탁했고, 가우디는 자연에 영감을 받은 동화 같은 공원을 만들었다. 옛날에 이곳은 사유지로서 지위가 높은 특권층들만 누릴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바르셀로나 시의회가 이곳을 사들였고, 지금은 모든 이가 구경할 수 있는 장소로 변모되었다.
돌기둥의 뿌리가 되는 식물들, 비둘기 집은 그가 얼마나 자연에 진심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구엘 공원 내에는 생전 가우디가 살았던 집도 있다. 화려한 명성에 비하면 밋밋할 정도로 평범한 그의 집은 그가 상당히 검소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구엘공원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장소는 공원 내에 위치한 유려한 곡선의 의자였다. 평균적인 인체 비율을 고려하여 만든 등받이와 아줄레주 느낌의 독특한 타일을 사용한 예술적 감각까지. 실용성과 심미성을 고려한 그의 작품은 혁신적이었다. 더불어 그는 물이 귀한 카탈루냐 지방의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의자 뒤에 빗물받이를 설치하였다.
가우디의 공학적인 재능은 광장 밑 기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일찍이 원근법을 계산하여 기둥의 높이를 일직선으로 맞추었다. 그리고 이 높이는 바르셀로네타 해변의 지평선과 일치한다.
앞서 벤치 뒤 빗물받이를 통해 모인 물은 이곳 3단 분수를 거치며 물의 수위를 조절한다. 어떻게 그는 그 옛날 일찍이 에코시스템을 도입한 건물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일까? 개개의 작은 조각이 모여 거대한 퍼즐 액자를 완성하듯 구엘공원 역시 작은 건축요소들이 밑바탕이 되어 거대한 하나의 시스템을 형성하였다. 그는 분명 숲(전체)을 보며 나무(개별적 요소)를 심는 스타일이었을 것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도마뱀은 분수의 상징과도 같다. 도마뱀의 손에 손을 올리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말에 재빨리 손을 올려 소원을 빌었다.
구엘 공원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사람 없이 사진을 찍기란 절대 불가능.
분수 밑에는 경비원의 숙소와 기념품 샵이 있었다. 한 번쯤 훑어보기 좋다. 건물 뒤로는 바르셀로네타 해변이 보인다. 청명한 가을 햇살 때문에 선글라스 없이는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이 시렸다. 입장료가 하나도 아깝지 않았던 동화 같은 구엘공원 투어를 마무리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였다.
꽤 오랜 시간 택시를 타서 도착한 곳은 몬주익 지구였다. 이곳은 바르셀로나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카탈루냐 미술관, 몬주익 마법의 분수, 몬주익 성, 스페인 마을 등. 관광할 곳이 생각보다 많다.
그중에서도 제일 유명한 곳은 사진 속의 몬주익 마법의 분수이다. 세계 3대 분수쇼라고 불릴 만큼 화려함을 자랑하지만, 아쉽게도 11월부터 겨울까지 운영이 중지된 상태여서 직접 볼 수는 없었다.
몬주익 지구에서 보는 바르셀로나 시내 경관을 끝으로 투어는 다소 짧게 마무리되었다. 더 자세히 둘러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자유여행이 아니니 어쩔 도리가 없다.
점심은 바르셀로네타 해변 근처 가게에서 해결하였다. 가이드님이 추천해주신 여러 맛집 중에서 국물 빠에야를 파는 집이 눈에 띄었다. 국물 빠에야는 카탈루냐 지방에만 있는 특이한 음식이다. 대부분의 빠에야는 국물이 없는데 이곳 빠에야만 국물이 존재한다.
Y와 나는 입맛이 조금씩 달랐다. 나는 현지 음식, 되도록이면 해산물 위주로 먹고 싶었으나 Y는 맛있는 음식을 원했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 수제 햄버거를 먹기로 결정하였고, 나는 paco alcalde에서 투어 사람 3분과 합석하게 되었다. 우리는 Estrella damn(스페인 대표 맥주), 깔라마레스(스페인식 오징어 튀김), 감바스, 국물 빠에야를 시켰다. 모든 메뉴가 다 기대 이상이었던 터라 남김없이 먹었다. 대화도 꽤 즐거웠다. 나를 제외한 3분은 직장인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대화의 주제나 상황, 가치관도 어른스러웠다. 물론 나도 어른이지만... 그들이 보기에 나는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휴학생 1에 불과할 테지.
점심을 먹고, 남자 2분이 Buenas migas라는 커피숍에서 커피를 사주셨다. 다정한 호의가 담긴 커피를 마시면서 문득 시간과 돈의 대립성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23살의 나는 젊지만, 돈이 없다. 그래서 여유가 있는 그들이 부럽다.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청춘을 부러워한다. 누가 더 부러운 것일까.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들도 분명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고, 나도 곧 그들처럼 늙을 것이라는 것. 그렇기에 두 가치를 비교한다는 것은 어쩌면 의미가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점심을 마무리하고, 마지막 최종 목적지로 향했다.
네 번째 건축물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가우디가 남긴 걸작 of 걸작. 죽을 때까지 그는 이 건물을 완성하지 못했다. 가우디 사후 100년을 기념하여 2026년에 완공된다는 말이 있었으나, 코로나로 인해 그것마저 늦춰질 예정이다. 처음 이 건물을 보자마자 드는 감정은 위압감. 웅장한 크기와 정교하다 못해 기괴한 조각들은 단숨에 나를 압도하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3개의 파사드와 12개의 첨탑으로 건설될 예정이다. 동쪽에 위치한 탄생의 파사드, 서쪽에 위치한 수난의 파사드는 완성된 상태이고, 남쪽의 영광의 파사드는 현재도 공사 중이다. 탄생의 파사드에는 예수가 탄생해서 성장하는 모습들이 담겨있다. 종교적인 내용은 잘 모르는 탓에 가이드의 말을 다소 흘려들었지만!
수난의 파사드는 비교적 단순하다. 예수의 죽음, 승천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십자가에 걸려있는 예수가 인상적이다.
가우디의 말년은 초라했다. 그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방치되었다. 거지 같은 남루한 차림에서 사람들은 유명한 건축가를 알아보지 못했다. 골든타임이 지나고 결국 그는 숨을 거두었다.
이후 후대 사람들은 가우디의 마지막 모습을 수난의 파사드에 새겨 놓았다. 신의 건물인 성당에 인간의 모습을 넣다니...! 독실한 가톨릭교인 그가 하늘에서 이런 결정을 반겼을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마음에 들었다. 한 천재적인 인간의 업적이 종교 이상의 가치로 인정받았다는 것은 정말이지 기념비적인 일이니까.
영광의 파사드에 대한 짧은 설명을 끝으로 가우디 투어가 마무리되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정이 든 투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는 바로 성당 내부로 들어갔다.
입장료는 다소 비싼 편이다. (인당 36유로 정도) 그러나 바르셀로나 시가 스페인 정부의 도움 없이 오로지 관광객의 입장료로만 공사를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내 돈이 이 멋진 성당의 완공에 기여한다는 생각에 저절로 흐린 눈이 되었다.
입장료에 가이드도 포함되어있기 때문에 가이드를 들으며 천천히 감상하면 된다.
가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라는 명성다웠다. 숲 속 나무기둥들이 성당을 떠받드는 천장, 성가대, 제단 뭐 하나 대충 만든 부분이 없었다. 모든 요소에는 다 저마다의 의미와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스테인글라스는 소문으로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동쪽에서 해가 들어오면 탄생을 상징하는 푸른 계열의 스테인글라스에서 빛이 투영되고, 서쪽으로 해가 지면 소멸을 상징하는 붉은 계열의 스테인글라스에서 빛이 투영된다. 투어에서 만난 30대 여자분은 나에게 한낮에 방문하지 못해 살짝 아쉽다는 반응을 건넸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이전에 방문했을 때가 한낮이었는데 그때가 되면 양쪽 스테인글라스에서 빛이 들어와 성당이 형형색색으로 물든다는 것이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해가 질 무렵이라 붉은빛의 아지랑이만이 성당을 가득 메웠다. 그러나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성당이 다 완공된 후 다시 오게 될 명분이 생겼기 때문에.
30대 여자분과 나는 마지막으로 성당의 야경을 보고 싶었지만 타이밍이 좋지 못했다. (11월 기준 대략 7시쯤 불이 들어오는 듯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택시를 타 카탈루냐 광장으로 돌아왔다. 멋진 커리어우먼 분과의 인연은 이 쯤에서 마무리되었다.
어느덧 저녁시간.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Y를 데리고, 일전에 가기로 약속한 보케리아 시장을 갔다. 확실히 대도시의 시장답게 넓고 깔끔했다. 그러나 보케리아 시장이 관광객을 타깃으로 하는 이유에서인지 가격이 다소 비쌌다. 시장이 시장이 아닌 느낌.
그래서 시장에서 저녁을 먹는 대신 맛집을 찾아갔다. 시우닷 콘달은 한국인에게도 익히 알려진 가게였는데 역시나 대기줄이 꽤 길었다. 그래도 가게 내에 테이블이 많아서 약 20분 정도 기다린 후 입장할 수 있었다.
그 유명한 꿀 대구를 시켰다. 바칼라우(대구요리)의 안 좋은 기억이 있는 Y까지도 맛이 괜찮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나름 맛있었다. 단맛이 강해서인지 대구의 비린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 외에도 추로스, 크림 브륄레도 먹었는데 무난했다. 특히 바르셀로나 추로스는 확실히 우리나라의 추로스와 비슷한 맛이 났다. 지역별로 비교해서 먹어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야무지게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기 전 잠시 카사 바트요에 들려 야경을 바라보았다. 아침과는 달리 불이 들어온 해골 발코니는 더욱 음산함을 자아낸다.
숙소로 돌아오니 Y에게 한 통의 문자가 날아왔다. 민박집 사람들이랑 맥주 한 잔 하자는 민박집 사장님의 제안. 휴식이 필요한 Y는 집에 남아있기로 하고, 나는 또 다른 추억을 만들기 위해 지친 몸을 이끌었다.
여담으로 나는 심각한 길치이다. 길치도 유전이라는 말이 있듯이 부모님도 길치이시다. 구글 지도를 보면서 가도 잘 찾지 못한다.
사장님이 공유해주신 맥주집으로 잘 찾아가고 있다 생각했지만, 전혀! 반대로 이동하고 있었다. 덕분에 숙소에서 10분 거리의 맥주집을 찾는데 40분이 소요되었다. 그래도 긍정적인 부분은 길을 잘못 들었던 바람에 가보고 싶었던 카탈루냐 음악당을 보았다는 것. 화려한 외관을 보니 내부도 궁금했으나 이미 시간은 10시였다.
모리츠는 스페인의 맥주 브랜드이다. 이곳 바르셀로나 모리츠 맥주 공장은 꽤 유명하다.
처음 본 민박집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색한 기류가 맴돌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많은 한국사람들과 대화를 하니 마음이 편해지고, 재미있었다. 스페인으로 신혼여행을 온 부부, 직장에서 7일 휴가를 받아 여행 온 남자 2분, 50여 일 혼자 유럽 여행 중인 22살의 휴학생. 전혀 일면식도 없는, 전혀 다른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스페인 여행'이라는 공통된 주제로 수많은 대화가 오고 갔다.
나는 여행에서의 이러한 낯선 만남이 여행지에서 마무리되는 것을 선호한다. 자칫 현실세계에 돌아와서 그들을 만난다면 오랫동안 간직했던 여행의 감흥이 깨질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