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6일
어제 조난사건의 피로가 가시기도 전에 새벽 5시, 지친 몸을 끌고 스타렉스에 짐을 실었다. 모래 썰매는 꼭 타보고 싶다는 의견이 반영되어 일찍 투어 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일전에 드레스코드 투표에서 하위 득표를 한 3명이 벌칙으로 썰매 2개를 끌고 갔다. (물론 나도 포함이다.)
투어사에서 소개해주는 2개의 언덕 코스 중 우리는 난도가 낮은 코스를 선택했다. 정상까지 가는데 약 20분 정도 소요된 듯하다.
신발을 신고 오르면 모래가 계속 차기도 하고, 미끄러질 수 있어서 맨발로 오르기 시작했다.(모래가 제법 거칠기 때문에 양말은 필수 착용이다.)
오르다 보니 정상 도착! 비구름이 많이 걷히진 않았지만, 살아생전 처음 보는 사막의 풍경에 들떴다.
분명 바다가 없는 몽골인데 지평선이 마치 수평선처럼 보이는 경관도 신기했다.
친구들과 모래 언덕 한 선에서 걸터앉아 불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센구르 한 캔을 나눠마셨다.
이제 시작하는 사회 초년생으로서의 고충들을 안주 삼아 꺼내며 결론은 '인생 별거 없다, 행복하자'로 끝나는 대화가 마음에 위로를 주었다.
역시 남는 건 사진이지라며 몇 천장을 찍기. 아! 몽골은 자외선이 한국에 비해 엄청 세기 때문에 꼭 선글라스를 챙겨야 한다.
등산할 때 올라갈 때에 비해 내려갈 때는 한순간이라지만, 썰매를 타면 더 빠르게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전날 홍수의 영향 탓에 모래가 딱딱하게 굳어 썰매가 계속 멈췄다. 여행 오기 전에 릴스에서 봤던 속도와 넘어져서도 폭신해 보이는 모래는 없었다. 그럼에도 서로 영상을 찍어주며, 깔깔 웃는 우리. 고비에 간다면 꼭 경험해봐야 하는 액티비티다.
모래썰매를 끝으로 고비사막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다음 장소인 바양작으로 향했다.
그런데... 또 사건이 터졌다. 고비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우리 스타렉스의 바퀴가 진흙에 빠졌다. 역시나 전날 내렸던 홍수가 그 원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를 구하려고 왔던 투어사의 추가 차량도 같이 바퀴가 빠졌다. 힘센 몽골의 성인 남자 여럿이 붙어서 아무리 밀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 투어사 관계자분이 갑자기 캠핑 의자와 도구들을 한쪽에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그냥 지나가는 다른 투어사 스타렉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전략으로 기다리는 동안, 원두커피를 대접해 주시고, 칼국수도 끓여 주심. 그냥 이 모든 상황이 웃프기도 하면서 또 우리가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겠냐며 멘탈을 잡았다. 여행 중에 가장 많이 했던 말: 오히려 좋아, 럭키비키자나~
결국 지나가는 다른 투어사 스타렉스 2대가 양쪽 끈으로 묶어서 구조해 줬다. (물론, 다른 투어사 스타렉스 한대도 바퀴가 빠진 건 안 비밀...)
진흙 늪에 무사히 빠져나오고, 드디어 땅이 마른 평지 구간에 이르렀다. 투어사 차량과 헤어질 때, 직원분이 갑자기 드론을 꺼내시더니 우리를 찍어주셨다. 몽골은 드론 높이 규정이 없어서 눈치 안 보고, 찍어도 된다. 허허벌판의 몽골의 대자연을 담고 싶다면, 그리고 드론을 가지고 있다면 당장 들고 오십시오.
일정이 지체된 탓에 오늘도 어김없이 오후 늦게 점심을 먹었다. 몽골의 대표 음식 호쇼르(고기만두)를 간단히 먹고, 다시 달리고 달려~
어느덧 오늘의 목적지 바양작에 이르렀다. 몽골의 여름은 해가 엄청 길기 때문에 해와 달이 한 번에 보이기도 한다. 핑크색과 연한 보라색의 하늘과 아무것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 넓은 평야가 가슴을 뻥 뚫리게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수평선이 아닌 지평선에서 해가 넘어가는 풍경을 본 적이 있나 싶다. 빼곡한 빌딩숲의 도시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귀중한 순간.
시간상 바양작은 내일 아침에 가기로 했지만, 오로지 낙타인형 구매를 위해 바양작 입구에 진입했다. 바양작 낙타인형이 그렇게 맛집이라는 소문을 들었는데 확실히 다른 관광지의 품질보다 퀄리티가 좋아 보였다. 그래서 나를 위한 작은 키링을 하나 구매하였건만, 고리가 금방 떨어졌다는...
바양작 근처, 진짜 낙타들이 한 줄로 서서 가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동상이었다. 밤에 보면 좀 많이 무서울 것 같다.
무사히 오늘의 게르 도착.
오늘만큼은 꼭 보드카 마시면서 별을 보자라는 생각으로 저녁을 먹고, 돗자리를 폈다. 다행히 비 온 다음날이라 그런지 하늘이 깨끗했고, 덕분에 별이 잘 보였다.
몽골에서 보는 달은 한국에서 보는 것보다 유난히 크게 보인다. 위도가 높아서 그런 걸까, 아님 미세먼지 하나 없어서일까
본격적으로 드러누워서 수다 떨며 별구경을 했다. 저 넓은 우주에 우리는 정말 작은 존재이겠지. 보드카의 알싸한 알코올 향과 약간의 쌀쌀함, 그리고 오래된 친구들과의 솔직한 대화 그 모든 부분들이 평생 기억에 남을 듯하다.
비록 홍수로 인해 조난을 당했지만, 역설적으로 홍수 덕분에 쏟아지는 별을 볼 수 있었다. 날씨가 허락한다면 꼭 돗자리나 침낭을 깔고 누워서 별구경을 해볼 것! 몽골 여행에서 게르팅(게르에서 하는 소개팅) 보다 더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