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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노스 최민호 Dec 0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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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 불타는 5월의 대지   

3. 불타는 5월의 대지     


희뿌옇게 흐려 있다.      

회색이라기보다는 희고, 우윳빛이라고 하기에는 깨끗하지 못한, 요즈음의 구름 빛깔이다. 

100년 만에 처음 겪는 가뭄이 계속되고 있었다.       

작년 10월 이후 5월 말까지 강우량 합계는 제로였다.      

6월 하지를 고비로 마지막 모내기를 끝내야 할 농촌에서는 논 댈 물이 없어 관정을 뚫고, 양수기를 동원하여 실개천, 냇가, 방죽 등 물이 고여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주둥이를 밀어 넣어 보지만, 애꿎은 미꾸라지, 송사리 떼나 빨려 올라와 논바닥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있을 뿐 속절이 없었다.      


마탁소는 가뭄 속에 수목원에서 몇 개월째 나무를 돌보느라 그렇지 않아도 까무잡잡한 얼굴이 아프리카 토인처럼 되어버렸다. 

52세, 165㎝의 작달막하고 깡마른 체구, 반질반질한 피부, 양 옆의 뺨에 깊게 파인 주름살은 대 여섯 살은 더 먹어 보이게 한다.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회장조성 부장이다.      


해수욕장에서 약 1㎞정도 떨어진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는 수목원.

작은 야외음악당을 연상시키는 지형으로 박람회의 부전시장이다.      

평평한 부지에 꽃잔디와 개똥나무로 고려청자의 형상을 만들어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 느낌의 청자 자수원과, 그 옆으로 조선시대 「별서정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별서정원(別墅庭園)이란, 벼슬을 뒤로 하고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한 삶을 즐기는 선비들의 정원이었다.      

전남 담양군의 양산보(梁山甫) 소쇄원(瀟灑園), 강진군의 정약용(丁若鏞) 다산정원(茶山庭園), 그리고 완도군 보길도(甫吉島)의 윤선도(尹善道) 부용동 정원(芙蓉洞庭園)이 대표적이다.


수목원에는 또 튤립, 팬지, 메리골드, 과꽃, 페츄니아, 붓꽃, 백일홍 같은 100가지가 넘는 꽃으로 25가지 ‘빛깔의 화원’을 만들고 있었다. 


조경공사가 성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건은 말할 것도 없이 물이다. 

충분하고 끊임없이 뿌려줘야 한다. 

그런데 물이 너무나 부족한 것이다.

꽃과 나무가 말라죽기 일보직전이었다.  


비상대책으로 지하수 2개 공을 파서 스프링클러로 연신 물을 뿌리고 있으나 양도 턱없이 부족하거니와 농부들의 눈치가 여간 살펴지는 게 아니었다. 

새까맣게 탄 그의 얼굴은 더 타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오동나무가 서 있었다. 잎을 쳐다보았다. 

우리나라 수목 중에서 가장 큰 잎을 가진 나무이다. 

학명 파울로우니아 코리아나(Paulownia Coreana). 

학명에 코리아나가 붙어 있는 한국의 특산종. 

울릉도가 원산지다.


옆으로 다가갔다. 순간 마탁소는 보았다. 

오동나무 이파리들이 갑자기 부르르 떨더니 몇 장이 발밑에 떨어지는 것을.      


‘바람도 없는데, 수분 부족인가’,      


다시 한번 나뭇가지의 잎사귀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분명했다. 

이파리들이 쳐다볼 때마다 가늘게 떨고 있었다. 


조팝나무의 이파리를 살펴보았다. 아무 힘도 없이 축 쳐져 있었다. 

자식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침의 권적운도 물러가고, 파란 하늘이 눈 속 가득히 들어온다. 

눈이 부셨다. 

눈에서 눈물 두 줄기가 마부장의 주름지고 메마른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다시 한번 가늘게 떨고 있는 오동나무를 바라보았다.      


 ‘이상한 일도 다 있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전날 밤의 꿈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생각만 해도 망측스러웠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부장은 조팝나무와 오동나무 밑둥치에 조심스럽게 겨냥하여 소변을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링거액이다. 기운 좀 차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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