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9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경유하여 덴마크에 코펜하겐에 돌아왔다. 짝꿍과 10개월 만에 만났다. 사실 만나면 서로 껴안고 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너무 담담했다. 어쩌면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언제 봐도 그냥 너무 편한 사이기에 아무렇지 않았던 것 아닐까 싶다. 그래도 그의 눈가는 촉촉했고 나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코로나로 위험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그냥 그와 하루라도 빨리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단 생각으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돌아왔는데 왜 진작 더 과감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하다. 눈을 뜨면 변해버리는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무엇을 호언장담할 수 있을까? 그냥 산다는 것 자체가 로또인걸. 그래서 한치의 후회도 없이 오늘 내가 행복한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 크다. 물론 이 또한 시간이 흐르면 무감각해지고 시시해질 수 있겠지만 말이다.
75킬로가 넘는 나의 짐들을 둘이서 영차영차 끌고 집으로 돌아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우리가 떨어져 있으며 겪었던 일들, 속상하고 좋았던 일들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며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서로 떨어지지 않기로 그 어떠한 순간이 오더라도 불확실한 세상에서 선택들을 미루지 않기로 말이다. 작년 12월 말, 태국에서 우리는 한 두 달 후면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그 어떤 애틋함도 없이 인사를 하고 각자 인도네시아와 덴마크로 돌아갔었던 기억이 서로에게 상처로 남았다. 그리고 교훈이 되었던 것 같다. 늘 하루를, 주어진 매 순간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을.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조금 쉬다가 첫 번째로 간 곳은 바로 우리가 만난 곳. 함께 일했던 곳에 찾아갔다. 지금은 파산하여 다른 브랜드에 매각되어 사라졌지만, 예전에 쓰던 인테리어 용품들이 여전히 같길래 반갑고 또 그리웠다. 2015년, 그를 처음 만나게 해 준 곳이라 내겐 너무나도 감사하고 소중한 공간이라 무심히 한 번 보고 지나칠 수가 없어서 몇 번이고 서성거렸다. 사실 다음날도 또 혼자 가서 둘러보기도 했다.
덴마크는 내게 익숙한 듯, 너무나도 새롭고 많이 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또 그대로인 것들이 많았다. 그 무엇보다 많이 변한 건 나와 내 짝꿍인데 우리는 정말 많이 변했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노화도 찾아왔고, 인간적으로도 더 성숙해졌으며 경제적으로는 훨씬 안정적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20대 초중반의 우리가 이제는 어느덧 사회인이 된지도 4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결혼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와 결혼 전 다시 한번 결혼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많은 것들을 준비한 이 사람이 대단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예를 들어 3-4년 전, 마트에 가면 그렇게 싸웠다. 굳이 채소와 과일을 왜 먹냐고 싸우던 우리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그때 그게 깊이 남아 이번에 돌아와서도 함께 장을 보면서 최대한 저렴하게 꼭 필요한 것들을 담고 있었는데 그가 내 눈치를 살피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제 유기농만 사고, 사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다 사. 갖고 싶은 것도 다 사. 우리 이제 그럴 능력 되니까 걱정하지 마."
그렇게 우리의 일상이, 삶이 온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우린 정말 기본적인 것들 조차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으면서 지난 5년이 우리에게 거쳐야 할 시간이었다는 것을.
정말 결혼은 현실이라는 것을.그리고 우리는 이제 정말 준비가 된 두 명의 어른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