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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Choi 메덴코 Oct 21. 2020

덴마크에 살면 워라벨이 지켜질까

대체 워라벨의 기준이 뭔데?

도 한 달 전에는 한국에서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던 직장인이었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던 그놈의 워라벨은, 내게는 조금 어려운 주제였다. 지극히 한국인의 특성을 가진 나는, 퇴사한 지 겨우 한 달도 되지 않아 몸이 근질근질거릴 정도로 빨리 일이 벌써 하고 싶고, 지난 3년간 일에 미쳐 살던 사람이었다. 건강과 사랑을 뒷전으로 할 만큼 일을 좋아했다. 하지만 동시에 또 가끔은 "이렇게 사는 게 맞나"라는 생각의 끝자락을 오고 갔으니 말이다. 누가 내게 시키지도 않았는데 미친 듯이 치열하게 사는 게 좋으면서도 지긋지긋했고 부담스러웠다.


나의 짝꿍은, 이탈리아 소프트웨어 컨설팅 회사에서 3년 근무를 하고 얼마 전 덴마크 핀테크 스타트업 초기 멤버로 이직을 했다. 그는 큰 기업에 있으나 작은 기업에 몸 담고 있으나 변함없이 바쁘고 일에 미쳐 산다. 그에게 워라벨은 '선택'이며 온전한 '자율과 책임'이었다.


그의 덴마크인 동료들의 이야기를 가끔 듣는데, 무능한 사람은 과감히 해고를 당한다. 다만 그 이유가 업무시간이 적었거나 워라벨을 잘 지켜서가 아니었다. 그냥 지난 몇 년간 최대한의 자율을 부여받고 책임을 안 졌기 때문이다. 그의 회사는 신뢰도 주되, 온전히 성과 베이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의 짝꿍은 출퇴근 시간도 없고, 연차 제한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바뀌긴 하지만) 평균적으로 오전 7시에 출근을 하여, 오후 7시에 집에 도착한다. 그럼에도 그는 집에 와서 더 일을 하기도 하고 주말에도 일을 한다. 엄청나게 열정적이다. 그는 한국인과 비교해봐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치열하다. 하지만 그 어떠한 불만도 또는 힘들어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는 순전히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에겐 일도, 가족도 모두 그의 삶이고 굳이 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와 집에서 저녁을 먹고, 오손도손 이야기하고 드라마를 보고 운동도 한다. 그럼에도 그는 여유롭다.


반대로 한국에서의 나는 힘들었다.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면서도 나는 내 하루가 버거웠고, 번아웃이 너무 자주 왔다. 확실하게 알았던 건 이건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일과 성장에 대한 욕심은 많지만 나에겐 커리어만큼 중요한 것들이 삶에 너무나도 많았다. 모든 사람이 꼭 같은 수준의 성공을 이뤄야 하는 것은 아닌데, 마치 그러지 않으면 내가 뒤쳐지는 것 같아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물론 열심히 하면서 얻고 배운 것들은 많지만 잃은 것들이 더 많았다. 특히 건강.


그에게 질문을 했다. 왜 같은 24시간을 가졌는데 너는 평화롭고 더 여유롭냐고.. 그는 그냥 그의 손에 모든 것들이 달렸으니라고 말했다.


"내가 해야 하는 할당량을 하면 되고, 추가로 더 하면 그것에 대한 보수가 명확하니까. 그리고 나의 회사는 늘 나에게 감사해하고 내가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알고 있거든. 모든 게 투명해. 그리고 많은 선택들과 자율 그리고 책임이 함께해서 그런 거 아닐까? 난 출퇴근 시간도 없고, 연차 제한도 없어. 너랑 놀고 싶은 날은 무한대로 놀아도 내 할 일을 하면 되고 다른 날 더 많이 하면 되니까. 날씨가 안 좋거나 귀찮으면 언제든 집에서 근무하면 되는 거고. 작년에 인도네시아에서 살 때 나 일 진짜 많이 안 했거든. 그때 난 내 상사한테 말했어. 나 앞으로 4개월은 좀 천천히 하고 덴마크 돌아가면 추가로 열심히 할 예정이라고.."


그리고 그의 상사는 그러라고 했다는 것도 나에겐 신기하고 놀라웠다. 물론 그는 실력 있는 개발자에 나와 직군이 다르지만 그만큼의 자율과 책임을 그리고 신뢰를 가진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텐데 말이다. 무엇보다 그런 성숙한 태도와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랍기도 했다.


물론 이것도 회사마다, 직군마다 또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겠지만 말이다. 어떤 한 프로그램에서는 한 한국인이 덴마크에서 야근을 많이 해서 며칠 동안 쉬라고 권고받았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단면적으로 '우와~'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오히려 깊게 파보면, 이런 케이스는 롱런하기 힘들다는 것을 예측해서 권유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열심히 일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말이다. 오히려 비효율적인 시간이라 여기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치열하지 않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조금 더 똑똑하게 장기적인 관점으로 나아가자는 취지인 것 같다.


결론적으로 워라벨은 일하는 시간과 삶을 분리하는 게 아니라 삶 속에 일이 자연스레 들어와 행복한 삶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정확한 의미가 아닐까. 또는 너무 많은 이들이 원치 않는 일을 함으로써 또는 선택, 자율과 책임의 부재. 일이 아닌 다른 사회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워라벨'에 대한 정의를 잘못 이해시키는데 한 몫한 것은 아닐까.


유럽은 느리고 어쩌면 도태되어가고 있을 곳일지도 모르겠다. 치열하고 경쟁 과열된 아시아에서의 삶과는 너무나도 반대라 사실 편안하면서도 내게는 불편하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누가 누구에게 당신의 삶의 방식이, 또는 인생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것 또 한 선택일 뿐인데. 결과는 본인이 감당할 텐데. 다만 확실한 건, 나는 내가 놓치고 있던 그리고 잃어버렸던 것들을 찾아가는 시간을 얻었다는 것. 그래서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도 언젠간 덴마크 아니 유럽에서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면 어떠한 모습일까?


"You live to work. We work to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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