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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Choi 메덴코 Nov 08. 2020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에서 겪는 마음의 병.

몸은 코펜하겐에, 마음은 서울에.

나 아무래도 정신이 아직 한국에 있나 봐.

내일이면 덴마크에 온 지 오늘이 딱 한 달이 되는 날. 지긋지긋한 5년간의 롱디를 끝냈고, 앞으로의 인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며칠 전 덴마크의 한 작은 마을에서 혼인신고도 하였다. 행복과 더 가깝게 살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분명 함께하는 삶이 행복한데 '나' 스스로는 또다시 길을 잃은 느낌이다.


지인들은 그저 행복해야 할 새 신부이자, 새 가정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이곳에 이민 온 3주 내내 눈물을 적시고 있다는 말을 그 쉽게 믿어주지 않았다. 모두 의아해했고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분명 행복하긴 행복한데 이상하게 매일 밤 악몽을 꾸며 울음을 터뜨렸다. 잠은 잔 것 같지도 않고 매일 새벽에 일어나 남편을 배웅 후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앉아 어두컴컴한 창 밖을 바라본다.


참 나 답지 않는 모습에 그도 나도 놀란 것 같다. 남편은 내게 어쩌면 북유럽 겨울 날씨가 한 몫하는 것 같고, 혼인신고와 비자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아 그런 거라고 했다. 무엇보다 활발한 성격의 내가 코로나로 인하여 외출을 자제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없으니 외로워서 그런 거라며 조금만 참자고 했다.


근데 이상하게 나는 그저 아무런 의욕도 없으면서도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압박에 시달려 하루 종일 무언가를 하고 있다. 하다 힘에 부처 그만두고 나면 우울해져 또 다른 무언가를 찾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며"나는 대체 왜 이러지"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국에서 엄청난 번아웃 증상을 가지고 있었고, 소원이 제발 원 없이 잠도 자고 먹고 쉬는 것이었다. 동시에 지난 3년 간 영혼과 맞바꾼 일에 대한 애정이 지나치게 과했기에 퇴사 결정과 동시에 나의 삶의 중요한 일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 막상 덴마크에 오니, 난 너무나도 조급했다. 여태 했던 일을 또 못하게 되면 어쩌지? 내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불필요하면 어쩌지? 나는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 등을 생각하며 갑자기 자존감이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출근을 하는 남편이 부러웠고, 질투가 났다. 그는 내게 지난 3년간 제대로 쉰 적도 없는데 왜 그리 스스로를 볶느냐고 안쓰러워했고 그 와중에 나는 링크드인으로 열심히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 스웨덴에 본사를 둔 대행사에서 함께 일하고 싶다며 오퍼를 했고 너무나도 기뻐 흔쾌히 인터뷰를 보았다. 내가 예상했던 시나리오는, 코펜하겐에 있는 지사에서 근무하는 것이었다. 또는 만약 런던 지사로 갈 수 있다면 남편도 흔쾌히 또 다른 이주를 고려해보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스톡홀름 본사에서 근무하길 요청받았고, 남편과 상의를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스웨덴에 살았을 때 안 좋은 경험이 있어 결코 가고 싶지 않은 곳이란 걸 알고 있었고 나 또 한 이제야 함께하는 우리 삶을 일 때문에  또다시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정리되지 않은 혼인신고와 덴마크 내에서의 비자 문제로 사실 내가 너무 급하게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했고, 결국 기회는 물 건너갔다.


그리고 며칠간 우울해하던 나를 보며 남편이 내게 물었다.


여보, 당신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뭐야?
앞으로도 마케팅이 하고 싶어?


나는 사실 말문이 막혔다. 항상 뚜렷하게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았는데 어느 순간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현재 하는 일에 앞만 보고 달려왔기에, 지금 현재 이 갑갑한 마음이 그곳에서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나를 처음 만났던 2015년, 나의 당돌함에 반했고 세상 겁 없고 계획은 없지만 주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분명히 아는 나를 존경했다고 한다. 내가 그와의 결혼을 취소하고 한국에 돌아가 돌연 듯 마케팅을 하겠다며 취업을 했을 때도 그는 내게 박수를 쳐주었다. 그리고 그는 그때 나의 모습이 어디 갔는지, 왜 언제 무엇이 나를 이토록 바꾸었는지 물었다.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잘 알던 내가 왜 타인의 잣대에 휘둘리며 겁을 내고, 조급하게 남의 속도에 맞춰 살려고 하느냐며 함께 울어주었다.


한국에서의 지난 3년은 분명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지만, 나를 다시 한번 잃어버리게 하는 시간이었다고 감히 칭하고 싶다.


느리게 사는 법, 내 줏대로 사는 법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다 잊어버리고선, 빨리 더 빨리 그리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이곳에서 애쓰는 내 모습을 보며 나의 정신은 여전히 한국에 머물고 있구나를 깨달았다.


애가 타니까, 잘하고 싶으니 마음만 급한 채로 달리려고 하니 자꾸 삐그덕 거리며 불안감만 커지게 된 것을 스스로 알면서도 통제가 되지 않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불안하여 눈물로 밤을 지새운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나의 존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또 노력하겠다고 맹세도 해본다.


나는 다시, 내 속도에 맞춰 그리고 내 진정한 행복을 위해 살 수 있을까? 또다시 찾아온 성장통을 겪으며.



"나는, 나의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를 10번 외치고 눈을 감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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